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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손재주 구현 피지컬AI”…리얼월드, AWS 앞세워 로봇현장 투입 예고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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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수준의 손재주를 구현하는 피지컬 AI가 제조와 물류, 서비스 산업의 노동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 일본을 거점으로 한 스타트업 리얼월드는 손과 팔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로봇 지능을 개발해 실제 사업 현장에 투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른바 피지컬 AI 파운데이션 모델이 현실 세계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새로운 경쟁 축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얼월드는 12월 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아마존웹서비스 리인벤트 2025에서 자사가 개발 중인 로봇 지능과 사업 전략을 공개했다.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는 행사 현장에서 “인간 수준의 손재주를 구사할 수 있는 지능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며 “5년 안에 현장 적용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얼월드는 로봇의 팔과 손을 세밀하게 제어하는 기반 모델 리얼덱스를 개발하고 있다. 리얼덱스는 복잡한 물체 조작을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파운데이션 모델로, 로봇이 우유병 뚜껑을 직접 열고 우유를 따르는 시연 장면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기존 산업용 로봇이 정해진 경로를 반복 수행하는 데 최적화돼 있었다면, 리얼덱스는 주변 상황을 보고 이해한 뒤 어떤 동작을 할지 스스로 결정하도록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핵심은 현실 작업 환경에서 축적한 4D플러스 데이터다. 리얼월드는 공장과 물류센터, 서비스 현장 등에서 사람과 로봇의 움직임, 물체의 위치와 시간에 따른 변화, 접촉 과정에서 발생하는 힘과 촉각 정보를 정밀하게 수집하고 있다. 여기에 영상 기반 시각 정보, 관절과 몸의 위치를 감지하는 운동감각, 손끝 압력과 마찰을 감지하는 촉각 정보를 결합해 멀티모달 학습 구조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런 구조가 구현되면 로봇은 같은 물체라도 위치, 무게, 마찰 조건이 매번 달라지는 상황에서 미세하게 힘을 조절하고 동작을 변경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로봇 제어를 위한 개별 알고리즘 개발이 아니라, 다양한 작업과 환경에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피지컬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하는 전략으로 이어진다. 언어 모델이 다양한 텍스트 작업을 하나의 모델로 처리하듯, 리얼월드는 하나의 기반 모델이 포장, 피킹, 조립, 정리 등 서로 다른 물리 작업을 학습해 전이할 수 있는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리얼월드의 기술은 제조, 물류, 서비스 산업 등 고강도 반복 작업이 많은 분야를 1차 타깃으로 하고 있다. CJ대한통운과 같은 물류 기업, 일본 KDDI와 같은 통신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실제 현장 데이터를 확보하고 시범 적용을 진행하는 것도 이런 수요를 겨냥한 행보다. 회사는 장기적으로 로봇이 특정 공장이나 센터에 고정되는 형태를 넘어, 주문형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서비스형 노동 모델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AWS는 이런 시도를 주목하고 있다. 리얼월드는 지난 10월 AWS 2025 생성형 AI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전 세계 40개 선정 기업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이 프로그램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복잡한 산업 문제를 풀려는 초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8주간의 집약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선정 기업은 최대 100만달러 상당의 AWS 크레딧, 아키텍처와 모델 설계를 돕는 기술 가이드, 멘토링, 시장 진출 지원 등을 지원받는다. 국내에서는 리얼월드를 포함한 두 곳만이 참여 기업 명단에 올랐다.

 

류 대표는 “이메일을 보내면 바로 회신이 오고, 필요한 비디오 회의를 즉시 연결해주며, 공유한 기술 이슈를 함께 풀어가는 경험을 했다”며 “형식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피지컬 AI 파운데이션 모델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실제로 키우려는 의지가 읽혔다”고 말했다.

 

리얼월드는 리얼덱스 고도화에 AWS의 GPU 인프라를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생성형 AI와 로봇 학습에 필요한 고성능 GPU는 글로벌 공급 부족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류 대표는 “다양한 형태의 엔비디아 GPU를 상황에 맞게 적정 가격과 사양으로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클라우드 환경은 많지 않다”며 “GPU 품귀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온디맨드 방식으로 필요한 자원을 풀어주는 인프라는 AWS가 가장 최적이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AWS 베드록을 통한 배포 전략도 병행된다. 베드록은 다양한 생성형 AI 모델을 올려 테스트하고, 파트너사와 고객이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관리형 서비스다. 리얼월드는 리얼덱스를 베드록과 같은 플랫폼에 올려 글로벌 기업들이 손쉽게 평가하고 도입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류 대표는 “스타트업이 모델을 만들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시장에서 알려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베드록에 탑재되면 AWS 생태계 안에서 글로벌 고객과 파트너의 주목을 받을 여지가 커진다”고 말했다.

 

경쟁 구도 측면에서 피지컬 AI는 아직 초기 시장 단계에 가깝지만, 미국과 유럽, 중국에서도 유사한 방향의 시도가 빠르게 늘고 있다. 대형 AI 기업과 로봇 기업들은 대규모 언어 모델과 시각 모델을 결합한 로봇 제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일부는 창고 피킹, 실내 이동, 단순 조립 작업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리얼월드는 손 조작과 촉각 중심의 세밀한 작업에 초점을 맞추면서 차별화 포지션을 노리는 모습이다.

 

규제와 표준 측면에서는 아직 본격적인 제도 논의가 진행 중은 아니지만, 사람과 함께 일하는 로봇의 안전 기준, 작업 중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의 개인정보와 현장 근로자 감시 이슈 등이 향후 쟁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손동작과 작업 패턴을 대규모로 수집하는 과정에서 작업자의 동의와 활용 범위 설정, 데이터 익명화 수준이 논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리얼월드는 앞으로 5년을 상용화의 분기점으로 잡고 있다. 류 대표는 “다양한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현장 데이터를 모을 여건이 충분하다”며 “모델 성능뿐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 하드웨어의 발전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조, 서비스, 물류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모델 적용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피지컬 AI 파운데이션 모델이 실제 사업 현장에서 자리잡기까지는 로봇 가격, 유지보수 체계, 작업자와의 협업 방식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노동력 부족과 고강도 단순 작업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제조와 물류 현장에서 수요는 꾸준히 커질 여지도 있다. 산업계는 리얼월드와 같은 피지컬 AI 기업들이 5년 안에 인간 수준 손재주를 가진 로봇을 실제 시장에 안착시킬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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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월드#aws#류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