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순방 때마다 이상한 얘기 안 나왔으면"…검사장 고발 놓고 여당 지도부·법사위 엇박자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문제를 둘러싸고 법조계와 여야가 충돌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대응 강도를 두고 기류 차가 표면화했다. 특히 대통령 해외 순방 기간마다 당내 이견이 분출해 외교 행보가 가려졌다는 지적이 누적된 상황에서, 또 한 번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19일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대장동 항소 포기를 둘러싼 검찰 내부 집단 반발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항명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에 나선 셈이다. 고발에는 민주당 법사위원뿐 아니라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 무소속 최혁진 의원 등 범여권 법사위원들도 동참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사전 논의가 없었다며 난감한 기류를 숨기지 않았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20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도부와 협의하지 않은 사안"이라며 "대통령께서 국익을 위한 해외 순방 중에 그 성과가 잘 드러날 수 있게 해야 하는 시점에 또 지도부와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 강경 대응 자체보다 절차와 시점에 문제를 제기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박 수석대변인은 당내 강경파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요구와 관련해선 "의원 개인 차원에서는 충분히 개진할 수 있는 의견"이라고만 언급하며 거리를 뒀다. 당 내외 파장이 큰 사안에 대해 지도부 차원의 공식 입장으로 확대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앞서 김현정 원내대변인도 이날 오전 정책조정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어제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며 "회의에서 그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원내 지도부와 상의 없이 법사위 차원에서 전격 결정됐다는 점을 재차 분명히 한 셈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김병기 원내대표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김 원내대표는 19일 저녁 국회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며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사장 고발의 취지와는 별개로, 여권 전체 정국 관리 차원에서 예측 가능한 대응이 필요했다는 불만이 묻어났다.
김 원내대표는 20일 회의에선 검사장 고발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대통령 순방 기간 돌발 정치 현안이 불거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이미 공개적으로 제기한 바 있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당 회의에서 "대통령님이 해외 나갈 때마다 꼭 당에서 이상한 얘기해서 성과가 묻히는 경우는 앞으로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당내에서는 이번 검찰 항명 대응이 그가 경계한 상황과 맞닿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과거 사례와도 연결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진행하던 시기,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을 둘러싼 청문회 의결을 지도부와 사전 상의 없이 강행한 바 있다. 당시에도 대통령 외교 일정과 분리된 법사위 단독 행보가 도마에 올랐다.
당내에서는 지금도 대장동 항소 포기를 둘러싸고 여야가 국정조사 방식과 범위를 두고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법사위의 강경 조치가 대야 협상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추가 협상 동력이 필요한 시점에 갈등 수위를 끌어올리는 메시지로 비칠 수 있어서다.
당사자인 법사위원들은 갈등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진화에 나섰다. 법사위 소속 김기표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검찰의 지나친 정치 세력화와 집단행동에 대한 대응을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고, 고발에 대해서도 치열한 찬반 논쟁이 있었다"며 내부 토론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그래도 엄단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져 고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절차 논란과 관련해 "저희가 토론할 때는 원내 지도부와 논의 여부를 확인 안 했다"며 "결론이 나면 간사나 위원장이 지도부와 교감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법사위 의사결정 과정상 통상적인 절차에 따른 판단이었다는 취지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를 상임위원회의 고유한 입법·감시 활동으로 봐야 하며, 당내 균열이나 지도부와의 정면 충돌로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친명계 중진 김영진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원내대표는 전체 정국을 관리하는 입장이기에 그런 의사를 표시한 것이고, 법사위의 고발은 그동안 다반사로 일어난 일 정도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법사위원들의 판단이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법사위는 20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이른바 법 왜곡죄, 판사·검사 퇴임 후 수임 제한 강화 법안 등에 대한 심사에 착수했다. 검찰과 법원을 대상으로 한 규율 강화를 골자로 한 법안들인 만큼, 여권은 물론 사법부와의 추가 충돌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원내 지도부는 이들 법안 처리 속도와 방식에 대해 보다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오늘 소위에 올라가는 법안은 아직 당 차원 수준으로 논의된 법안이 아니다"라며 "소위에서 논의하는 단계로, 중요 법안은 속도와 수위 등에 대한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당은 향후 국정조사 공방과 검사장 수사 진행, 사법개혁 법안 심사 과정에서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할지 지켜보며 다음 수를 고심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