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500억달러 대미투자”...산업부, 美에 서한 전달하며 관세 인하 관보게재 요청
관세 인하를 둘러싼 통상 현안과 대규모 대미 투자가 맞물리며 한미 경제 협력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미국에 대규모 투자 이행을 위한 국내 특별법 발의 사실을 통보하고, 자동차 관세 인하를 위한 연방 관보 게재를 서둘러 달라고 요청하면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6일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직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명의 서한을 미국 상무부 장관 앞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서한에서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에 따라 한국 국회에 법안이 같은 날 오전 발의됐다는 점을 알리고,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 인하 조치를 미국 연방 관보에 조속히 게재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앞서 한국과 미국은 14일 서명한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에서, 양해각서 이행을 위한 법안이 한국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1일자로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관세 인하를 소급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현재 25%가 적용되는 해당 품목의 미국 수입 관세는 11월 1일자로 15%까지 낮춰지고, 소급 인하도 추진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법안 발의로 양해각서가 요구하는 요건을 갖춘 만큼, 조만간 미국이 연방 관보 게재 등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특별법은 총 3천500억달러, 약 51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한 금융·제도 인프라를 구축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법안에 따르면 한미전략투자기금이 설치되고, 이를 관리·운용할 주체로 한미전략투자공사가 설립된다.
한미전략투자공사는 법정 자본금 3조원 규모로 조성되며 정부 출자로 설립된다. 공사의 존속 기간은 20년으로 한정했다. 공사의 구체 업무는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투자공사 등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정책금융기관이 보유한 해외투자·프로젝트 파이낸싱 전문성을 활용해 대규모 대미 투자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기금을 투명하게 운용하기 위한 국회 통제 장치도 포함됐다. 공사는 연 1회 이상 기금의 관리·운용 상황을 국회에 보고해야 하며, 국회 운영위원회가 공사의 업무 전반에 대한 감독권을 갖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입법 과정에서 국회와의 협의도 병행한다는 입장이다.
한미전략투자기금의 재원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위탁하는 외환보유액 운용 수익, 해외에서의 정부 보증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조달된다. 이렇게 마련된 재원은 양해각서에서 합의한 연 200억달러, 약 29조원의 투자 한도 내에서 집행된다. 투자 대상은 미국 내 전략 산업 투자와 조선 분야 협력 투자 등으로, 대미 투자 2천억달러와 조선 협력 투자 1천500억달러 지원 계정을 분리해 관리하도록 했다.
투자 과정 전반에는 복수의 심의·협의 단계가 설치됐다. 대미 투자 관련 최종 의사결정 기구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한미전략투자공사 운영위원회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사업관리위원회는 투자 후보 사업의 1차 검토 역할을 담당한다.
미국 측 미국 투자위원회가 대미 투자 사업 후보를 제안하면, 한국 측 사업관리위원회가 먼저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과 전략적·법적 고려 사항을 점검한다. 이후 사업관리위원회가 운영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면, 운영위원회가 기금 재무 상황과 상업적 합리성 검토 결과를 종합해 투자 여부를 심의·의결하는 구조다.
운영위원회 심의 결과를 토대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한미 협의위원회를 통해 대미 투자 사업 추진에 대한 한국 측 입장을 미국과 협의하게 된다. 한미 협의위원회 논의를 거쳐 미국 투자위원회가 미국 대통령에게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투자로 추천하고 투자처가 최종 선정되면, 한국 운영위원회가 다시 투자 자금 집행을 심의·의결한다.
한국 측이 자체적으로 투자 후보 사업을 발굴하는 경우에도 같은 절차가 적용된다. 사업관리위원회의 상업적 합리성 검토, 운영위원회의 종합 심의·의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대미 협의, 미국 측 투자처 선정, 한국 운영위원회의 최종 집행 심의·의결 순서다. 정부는 이 같은 다중 절차를 통해 재정·외환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특별법에는 한미 양해각서에 명시된 대미 투자 관련 안전장치가 법 조문으로 옮겨졌다. 먼저 연간 송금 한도는 200억달러로 규정하고, 개별 사업의 진척 정도를 반영해 송금 규모와 시점을 정하도록 했다. 외환시장 불안 가능성이 제기되는 경우에는 투자 집행 시기와 금액을 조정하도록 산업통상자원부와 관계 부처가 미국 측과 협의를 요청할 수 있게 했다.
투자 대상 사업은 상업적 합리성이 확보된 경우로 제한된다. 사업관리위원회는 국내법과의 상충 여부, 전략적 필요성, 법적 리스크 등을 면밀히 검토해 미국 측에 전달하고, 이러한 요건을 충족한 사업만이 미국 투자위원회의 추천 대상이 되도록 하는 구조를 특별법에 담았다.
국내 산업 생태계와 연계하기 위한 조항도 포함됐다. 사업에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할 벤더와 공급업체, 프로젝트 매니저를 정하는 과정에서 가급적 한국 기업 또는 한국인이 선정될 수 있도록 미국 측에 추천하고 협의하도록 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 기업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대미 투자가 국내 일자리와 기술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사업 추진에 필요한 미국 정부 차원의 지원 사항도 협의 대상으로 명시됐다. 미국 연방 토지 임대, 용수·전력·에너지 공급, 구매 계약 주선, 규제 절차 가속화 등이 주요 검토 항목이다. 정부는 대규모 제조·에너지 프로젝트 특성상 인허가와 인프라 확보 문제가 사업 성패에 직결되는 만큼, 한미 정부 간 공식 협의 틀을 통해 해결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20년 내 개별 대미 투자 사업의 투자금 회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현금 흐름 배분 비율을 미국 측과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장기·대규모 프로젝트 특성을 고려해 수익 구조를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는 여지를 둔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서한 전달을 계기로 미국 정부와의 협의를 본격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회의 특별법 심의와 병행해 미국과 관세 인하 및 투자 프로젝트 구체화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국회는 앞으로 상임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표결을 통해 법안 처리 여부를 결정하게 되며, 한미 간 관세 인하와 3천500억달러 대미 투자의 향배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