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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의무복무 지역의사제”…복지위 통과에 의협 반발 거세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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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의료 공백 해소를 목표로 한 이른바 10년 의무복무 지역의사제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내년 고교 3학년이 치르는 2027학년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의 일부를 지역의사 선발전형으로 전환해 학비를 지원하고, 의사면허 취득 뒤에는 지정된 지역 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의무 복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의사면허 취소까지 가능하도록 한 조항도 포함돼 의료 인력 정책의 강도 높은 전환으로 해석된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지역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는 정책 신호로 보면서도, 산업 전반의 인력 구조와 교육·수련 시스템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0일 전체회의에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수정안을 의결했다. 법안은 의과대학 입시 단계부터 지역의사 선발을 별도로 운영하고, 선발된 인원에게는 등록금 등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대신, 면허 취득 후 일정 기간 농어촌 및 의료취약지 등 정해진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규정했다. 더불어 전문의를 대상으로 특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 종사하도록 하는 계약형 지역의사제도 근거 규정을 담아, 전문의 인력의 배치까지 법적 관리 범위에 포함시켰다.

기존 지역 인센티브 중심 정책과 달리 복무 기간을 법으로 묶는 방식은 강제력이 훨씬 크다. 의사 인력 수급을 장기계획 하에 통제하겠다는 취지지만, 개별 의사의 진로 선택과 수련 과정에 상당한 제약을 가할 수 있어 의료계 반발이 커지는 양상이다. 특히 필수의료, 응급의학, 산부인과 등 인력이 부족한 전문과를 어떻게 채워 넣을지, 전공별 정원 조정과 연계된 정밀한 수급 예측이 선행되지 않을 경우 특정 지역·전문과의 공백이 되레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의사협회는 법안 처리 과정과 내용 모두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은 이날 서울 용산구 회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공청회 직후 법안소위를 통과시킨 점을 문제 삼으며 심각한 유감을 표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의협이 대한의학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와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워크숍과 입법청문회 대응을 준비해 왔다고 설명하면서, 지역의료를 살리려면 우선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고 의사들이 장기 근무할 수 있는 정주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프라와 보상체계 없이 인력만 묶어두는 방식은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김 대변인은 또 전문과별 지역 의료 인력 추계와 지역 병의원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요 예측 없이 지역의사제를 도입하면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재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지역정책수가 등 보상체계를 도입해 지역 의료 현장의 수익성과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환자가 지역 의료를 신뢰할 수 있도록 공공투자와 인프라 확충을 먼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 인력 정책이 처우와 구조 개선 없이 배치 강제에 치우치면 신규 의료인력의 수도권 쏠림 심리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았다.

 

지역의사제 논란과 별개로 의협은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 허용과 성분명 처방 의무화 입법 움직임도 강하게 비판했다. 의협은 한의사를 방사선 안전관리자 범주에 포함하려는 법안, 수급이 불안정한 의약품에 대한 성분명 처방 의무화 법안이 국민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악법이라고 규정했다. 한의사의 방사선 사용은 교육·수련 체계와 안전관리 기준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고, 성분명 처방은 실제 현장에서 약국 선택권과 약품 공급 안정성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정책·규제 측면에서 이번 지역의사제 법안 통과는 의료 인력 규제를 한 단계 강화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원격의료, AI 진단 보조 등 IT·바이오 융합 기술이 확산되는 가운데, 지역 의료 인프라와 인력 문제는 신기술 도입 속도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방 중소병원과 의원에 충분한 의사가 배치돼야 원격 모니터링, AI 판독, 데이터 기반 정밀의료 등 고도화된 서비스가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사제가 인력 확충 자체에는 기여할 수 있어도, 근무 환경과 보상 구조 개선, 디지털 인프라 투자와 연계되지 않을 경우 첨단 의료서비스 격차는 여전히 남을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농촌·취약지 의사 의무 배치 제도가 일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대체로 장학금·세제 혜택·근무 환경 개선과 결합된 형태로 설계돼 있다. 국내 지역의사제 역시 실제 시행 과정에서 인프라 투자와 디지털 헬스케어 지원, 필수의료 인력 양성 정책과 통합 운영되지 않으면 인력 확보에만 초점이 맞춰진 반쪽짜리 대책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의료계와 국회, 정부 간 추가 협의가 성과를 거둘지, 그리고 지역의사제가 IT·바이오 기반 의료 혁신과 함께 지역 의료 격차 해소에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산업계는 법안 후속 논의를 주시하고 있다.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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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지역의사제#보건복지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