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답 정해놓고 예스만 요구"…노상원, 내란 재판서 특검 수사 정면 비판
정치적 충돌 지점과 수사기관 간 공방이 다시 법정을 달궜다. 12·3 비상계엄 모의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내란 재판에 증인으로 서면서 특검 수사 방식을 강하게 비판했고, 내란특검팀은 즉각 왜곡이라며 맞섰다. 윤 전 대통령도 법정에서 직접 노 전 사령관을 두둔하고 나서면서 향후 재판과 정치권 파장을 둘러싼 긴장이 커지고 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속행 공판에는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12·3 비상계엄 당시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할 제2수사단 구성을 위해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요원의 인적 정보를 넘겨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은 그동안 여러 재판에서 관련 질문에 증언을 거부해왔지만, 이날 재판에서는 오후 들어 입장을 바꿔 자신의 자필 수첩과 수사 경과를 둘러싼 쟁점들에 관해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특히 계엄 모의 정황이 담긴 것으로 해석돼온 70쪽 분량의 자필 수첩에 대해 “계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쓴 내용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주장하며 기존 해석에 정면으로 맞섰다.
문재인 전 대통령,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정치·사회 인사들의 이름과 함께 D-1, D 등 날짜별 표기, 담화, 전 국민, 선별, 출금 조치 등의 문구가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수첩은 그동안 특검 수사의 핵심 물증 가운데 하나로 거론돼왔다. 특검팀은 이 기록들이 비상계엄 계획 수립 과정의 세부 일정과 조치를 정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노 전 사령관은 메모에 적힌 일부 단어가 일상적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두한, 차범근이란 이름이 나오는 건 TV를 보다가 적은 것”이라며 “드라마 야인시대를 보다가 김두한을 쓴 것이고, TV에 손흥민 선수가 나오길래 우리 시대 때는 차범근 선수가 잘했느냐고 하면서 쓴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상관에 보고할 때 저렇게 써서 보고하겠느냐”고 반문하며 수첩을 계엄 모의의 청사진으로 보는 해석에 선을 그었다.
수첩 작성 시점과 관련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남았다. 노 전 사령관은 “2024년 4월 총선 이전에 작성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도 “제 기억에는 총선 승리 후 법적인 기반을 구축한 후에 계엄을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계엄 발동 시점과 조건을 가정해 적어본 메모라는 취지의 설명이지만, 실제 실행 준비와의 연관성에 대한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계엄 모의 정황 자체를 묻는 질문에는 그는 증언을 거부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다만 신문 과정에서 한숨을 쉬거나 목소리를 높이며 격앙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검팀의 한 질문에 답하다가 “나머지는 귀찮으니까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말해 법정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기도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수사 과정에서 특검팀으로부터 사실상 유죄 협상 제안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수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이 사람들은 답을 정해놓고 예스 하길 원하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한 뒤, 개정 특검법 통과 이전에 플리바게닝, 즉 진술을 대가로 형벌 감면을 제안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특검팀이 윤 전 대통령 관련 진술을 조건으로 형량 감면을 시사했다고 주장하면서 “솔직히 흔들리긴 했지만 실제로 형량을 놓고 구체적으로 협상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수사 공정성과 증언 신빙성을 둘러싼 새로운 논쟁을 촉발할 소지가 크다.
그동안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침묵해온 노 전 사령관은 계엄군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침투 계획과 관련해서도 발언 수위를 조정했다. 그는 선관위 직원들을 해칠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로 설명하며, 군 개입의 실질적 목적과 범위를 축소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날 재판 말미에는 윤 전 대통령도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약 3분간 한 발언에서 “선관위에 대한 수사 이야기가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수사 계획 자체가 없는 이런 수사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단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상 노 전 사령관의 주장을 거들며 내란특검 수사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공판이 끝난 뒤에도 여파는 재판정 밖에서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기자회견을 열고 “특검의 수사가 불법이라는 사실이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고 주장하며 수사 전반을 정면 비판했다. 변호인단은 노 전 사령관이 법정에서 밝힌 수사 과정 진술을 근거로 특검의 강압 및 사전 결론 설정 의혹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내란특검팀은 즉각 반박 입장을 내고 공세에 대응했다. 특검팀은 “노 전 사령관이 허위 진술 강요 등을 운운하는 것은 실체를 왜곡하고, 공소 유지를 방해하려는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플리바게닝 제안 주장과 관련해서도 사실관계를 부인하는 취지로 선을 그으며, 향후 법정에서 구체 증거를 통해 진위를 다투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특검팀은 노 전 사령관의 수첩과 관련 진술을 토대로 계엄 준비가 2023년 10월 군 장성 인사 무렵부터 본격 진행됐다고 보고 있다. 당시 군 인사와 정치 일정이 맞물린 정황을 중시하면서 수첩 속 D데이 표기, 전 국민, 출금 조치 등 문구를 계엄 계획의 구조화된 단계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 전 사령관 측은 정치 상황에 대한 개인적 메모 성격이 강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향후 증거 능력과 해석을 둘러싼 공방이 전망된다.
한편 특검팀은 노 전 사령관이 국군정보사령부 요원 인적 정보를 넘겨받은 과정에 김 전 장관이 연루됐는지 여부도 수사 중이다. 정보사 조직과 인사 라인까지 수사가 확대될 경우, 군 내부 책임 소재와 정치권 파장이 함께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법조계에서는 이날 법정에서 폭로된 플리바게닝 제안 주장과 수첩 해석 논쟁이 재판 구도에 적지 않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 진술의 신뢰도를 둘러싼 평가가 극명하게 갈릴 경우, 재판부가 수첩의 증거가치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혐의 입증 방향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역시 특검 수사 방식과 계엄 모의 의혹에 대한 해석을 놓고 또 한 차례 격론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국회는 향후 관련 상임위와 법사위 등에서 특검 수사 공정성과 내란 혐의의 실체를 둘러싼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내란 재판은 추가 증인 신문과 증거 조사를 거치며 장기전 양상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