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출입권은 영토 주권 문제"…통일부, 유엔사 반대 속 DMZ법 추진 고집
비무장지대 출입권을 둘러싸고 통일부와 국방부·외교부, 유엔군사령부가 정면 충돌했다. DMZ의 평화적 이용을 내세운 법안 추진에 외교안보 라인과 유엔사가 제동을 걸면서, 정전체제와 영토 주권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12일 통일부와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이재강 의원과 한정애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법률안은 비군사적이고 평화적인 활용 목적에 한해 DMZ 출입 승인 권한을 한국 정부가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DMZ 출입은 정전협정을 근거로 유엔군사령부가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이재강 의원 등은 정전협정 서문이 정전협정을 "순전히 비군사적인 성질에 속한다"고 규정한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민간인과 종교계, 시민사회 인사의 비군사적 출입까지 유엔군사령부가 결정하는 구조는 과도한 통제라는 주장이다.
통일부는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했다. 통일부는 이들 법안에 대해 "입법 취지에 동의한다"고 공식 입장을 내고, 비군사적 목적의 DMZ 이용은 우리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최근 유흥식 추기경과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의 DMZ 출입이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불허된 사례를 거론하며 "영토 주권 차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방부와 외교부는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다. 국방부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유엔군사령부와 사전 협의 없이 비무장지대의 출입 등 이용을 국내 법률로 규정하면 정전체제 관리에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정전협정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면 한미관계와 유엔사 회원국들과 국제적 신뢰 및 안보협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외교부 역시 비슷한 기류를 보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유엔군사령부 및 유관부처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추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며, 입법 추진 속도 조절 필요성을 강조했다. DMZ 출입권 문제를 둘러싸고 정전협정 체제와 한미동맹, 유엔사 회원국과의 협력관계가 교차하는 만큼, 일방적 법제화는 부담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관계부처 간 이견이 뚜렷해지자 더불어민주당이 중재에 나섰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정책실은 다음 주 DMZ의 비군사적·평화적 이용에 관한 제정법안을 놓고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 기후환경에너지부, 법제처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실무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법안 소관 부처는 통일부지만, 안보·외교·환경 영역이 모두 얽혀 있어 범정부 차원의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한 여당 관계자는 "워낙 민감함 사안이라 부처 간 입장 차가 꽤 있는 것 같다"며 "정부 내 의견이 조율돼야 국회의 신속 처리 논의도 탄력을 받을 것이므로 내주 실무간담회를 통해 관계부처의 입장을 직접 들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모두 정전체제와 한미동맹에 미칠 파장을 의식하면서도, DMZ의 평화적 이용 확대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장 큰 난제는 유엔군사령부의 강한 반대 기류다. 유엔군사령부는 출입 목적과 관계없이 현재와 같이 자신들이 DMZ 출입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군사령부는 연합뉴스 질의에 "정전협정은 민간과 군사적 출입 모두를 규율하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체제"라며 "이 체제를 지탱하는 것이 안전과 운영의 명료성, 70년 이상 유지된 정전의 안정을 보장하는 데 결정적"이라고 답했다. 민간과 군사 목적을 법률로 구분하면 정전관리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논리다.
조원철 법제처장은 지난 8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을 비공개로 만나 DMZ법 관련 의견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서 유엔군사령부 측은 정전협정이 규율하는 출입 권한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가 독자적인 출입 승인 권한을 국내법에 명시하면, 정전협정과 충돌하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핵심인 것으로 전해졌다.
DMZ법 논의는 향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도 맞물릴 전망이다. 통일부는 비무장지대를 평화·생태·관광 공간으로 활용하는 구상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반면 군 당국과 외교부, 유엔군사령부는 정전체제 유지가 최우선이라는 점을 앞세우며 속도 조절을 요구하고 있다. 법제화 방향에 따라 DMZ 관리권과 주권, 동맹 구조에 대한 해석이 재정립될 수 있는 만큼 정치적 파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관계부처 실무간담회에서 정부 입장을 종합적으로 청취한 뒤, 외교통일위원회를 중심으로 DMZ법 처리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는 유엔군사령부와의 추가 협의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크고, 국회는 다음 회기에서 DMZ의 평화적 이용과 정전체제 유지 사이 균형점을 찾기 위한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