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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역사와 안보 분리해야"…아미 베라, 독자 핵무장론엔 부정적 경고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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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를 둘러싼 갈등과 동맹 안보 구상이 다시 충돌 지점에 섰다. 미국 민주당의 대표적 지한파 중진 아미 베라 연방 하원의원이 한일 간 역사 문제와 안보·경제 협력을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한국 내에서 확산되는 독자 핵무장 여론에는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다.

 

베라 의원은 20일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SAIS가 한미일 3국 협력을 주제로 연 대담 행사에서 최근 한일관계 파열음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이같이 밝혔다. 그는 강경우파 성향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취임 이후 한일관계의 향배를 묻는 질의에 역사 인식 문제와 전략·경제 협력의 분리를 거듭 주문했다.

베라 의원은 한일 간 현안을 언급하며 "한일 사이에는 분명히 역사적인 문제가 있고, 그 다음에는 지정학적, 전략적, 경제 안보 이슈가 있다"고 전제한 뒤 "그들은 때때로 그것들을 서로 엮는데, 나는 그것들을 분리하도록 시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역사 갈등과 안보 협력이 얽힐수록 실질 협력이 위축된다는 우려를 드러낸 셈이다.

 

그는 최근 양국 정부의 접근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베라 의원은 "최근 한일 정부 모두 양국이 해결해야 할 역사적 문제를 안보, 경제, 전략적 문제와 분리하도록 잘 대처해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미국이 한일 간 역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한일이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여 당사자 간 조율이 핵심이라고 짚었다.

 

또한 베라 의원은 정권 교체 때마다 한일관계 기조가 크게 흔들리는 구조를 경계했다. 그는 양국관계가 정권 변화와 무관하게 유지되도록 "지속적인 입법부 차원의 대화를 통해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정부 교체와 상관없이 의회 차원의 네트워크와 합의를 쌓아야 안정적인 협력이 가능하다는 취지다.

 

최근 한일 안보 협력은 곳곳에서 마찰을 드러냈다. 독도 상공을 비행한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에 대한 일본 측의 중간 급유 지원 거부, 예정돼 있던 한일 공동 훈련과 군악대 교류 행사 취소 등으로 실무 협력에 일부 차질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베라 의원의 발언은 군사·경제 협력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자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베라 의원은 한국 국내 여론조사에서 독자적인 핵 억지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응답이 과반을 차지하는 흐름에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나는 그것이 훌륭한 생각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한국의 핵무장론이 역내 안보 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시절 마련된 핵우산 체제 강화 합의를 거론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베라 의원은 "나는 바이든 행정부때 나온 캠프 데이비드 합의와 워싱턴 선언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미국의 전략자산 운용을 통한 확장억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의 한반도 주변 순환 배치 빈도를 늘리는 등 핵우산 공약을 강화하는 방식이 "한국의 독자적 핵역량 보유보다 나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한국 사회 여론의 배경에 대해서는 이해를 표했다. 베라 의원은 "왜 한국민들이 그렇게 느끼는지 논리를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미국이 우리의 동맹인 한일에 대한 핵우산 공약을 재확인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동맹 차원의 신뢰 회복과 확장억제 신뢰성 제고가 우선 과제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이 한미동맹에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지적에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나는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현안 관련 발언이 일정한 불확실성을 만든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한국이 독자 핵역량을 확보할 경우 역내 다른 국가의 대응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라 의원은 "만약 당신이 한국의 핵 역량을 보게 된다면 일본의 핵 역량도 보게 될 것이고, 중국의 우려를 유발해 핵무기 경쟁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핵무장이 일본과 중국을 잇따라 자극해 동북아 전역에 핵 경쟁 구도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베라 의원은 미국 하원 인도·태평양 소위원회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으며, 한미관계 전담 친선기구인 하원 코리아스터디그룹 CSGK 대표단의 공동 단장으로 지난 4월 방한해 국회와 정부 관계자들을 두루 만났다. 그간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를 지지해 온 만큼, 그의 발언은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 외교 라인의 기조를 반영한 메시지로 읽힌다.

 

이에 따라 한미일 3국은 앞으로도 캠프 데이비드 합의와 워싱턴 선언을 토대로 확장억제 실행력을 높이면서, 한일 사이 역사 갈등을 관리하는 방식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과 도쿄, 서울에서 진행될 외교·국방 당국 및 의회 간 협의에서 역사·영토 문제와 안보 협력의 분리 여부, 동북아 핵질서 안정 방안 등이 핵심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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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베라#한일관계#한국독자핵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