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미리 크리스마스”…11월의 화순, 공원과 시장이 겨울 놀이터로 변신한다
요즘 크리스마스를 한 달 넘게 앞당겨 즐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연말 며칠만의 이벤트 같았지만, 이제는 11월부터 공원과 시장을 채우는 ‘겨울 시작의 풍경’이 됐다. 반짝이는 전구 아래를 걷는 일은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작은 의식처럼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이 준비한 ‘2025 미리미리 크리스마스 Vol. 2’는 이런 분위기를 대표하는 축제다. 11월 21일부터 23일까지 화순읍 진각로 85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 축제는 화순 남산공원과 고인돌 전통시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화순군과 화순군문화관광재단이 함께 꾸린 이 사전 크리스마스 축제는, 주말 저녁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가족과 연인, 친구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불러 모은다.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축제의 중심 공간인 ‘미리미리 크리스마켓’이다. 남산공원 산책로를 따라 크리스마스 소품과 장식, 공예품이 가득한 부스가 이어진다. 수공예 작가들이 만든 오너먼트와 작은 트리, 겨울 감성을 담은 굿즈들이 노란 조명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난다. 푸드트럭과 겨울 간식존에서는 김이 오르는 음료와 달콤한 간식이 손을 데울 만큼 따뜻한 온기를 건네고, 사람들은 컵을 쥔 채 천천히 마켓을 돌며 마음에 드는 선물을 고른다. 12월을 기다리는 준비 과정 자체가 하나의 놀이처럼 바뀐 셈이다.
공연 프로그램은 축제 분위기를 한층 더 무르게 만든다. 재즈 공연이 부드러운 리듬으로 공기를 흔들고, 공원을 가득 채우는 오케스트라 선율이 초겨울 저녁 공기와 섞이며 색다른 공간감을 만든다. 여기에 서커스 공연이 더해지면서 아이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어른들은 오랜만에 떠오른 동심을 조용히 떠올린다. 남산공원은 그동안 동네 주민들이 산책하던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이 기간만큼은 음악과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작은 겨울 야외극장으로 변신한다.
거리 전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건 크리스마스 마칭밴드 퍼레이드다. 장식된 악기를 멘 연주자들이 캐럴과 경쾌한 곡을 연주하며 골목과 광장을 행진하면,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행렬 뒤를 따라 걷게 된다. 화순읍 중심부를 가르는 이 행렬은 눈과 귀를 동시에 자극하면서, 골목 구석구석에 축제의 기분을 옮겨 심는다. 평소엔 차가 지나가던 길이 이 시기만큼은 사람들이 걷고 머무는 ‘산책로’가 되는 셈이다.
고인돌 전통시장으로 자리를 옮기면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와글와글 밤시장 Ⅲ’가 열리는 시장 안쪽은 밝은 조명과 사람들의 대화로 한층 더 뜨거워진다. 여러 종류의 길거리 음식이 한 번에 펼쳐지고, 플리마켓에서는 핸드메이드 소품과 일상 소품들이 손을 기다린다. 상인과 손님이 건네는 짧은 인사가 오가는 사이, 전통시장은 단순한 장보기 장소를 넘어 화순의 저녁을 대표하는 소셜 공간으로 얼굴을 바꾸고 있다. 방문객들이 화순의 맛과 정서를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화순에서 처음 선보이는 클래식 회전목마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의 발걸음도 멈추게 한다. 전통적인 목마 모양과 장식으로 꾸며진 회전목마가 조명 속에서 천천히 돌아가면, 짧은 한 바퀴 동안 관람객들은 동화 속 장면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낀다. 말에 올라탄 아이들은 환하게 웃고,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들은 사진으로 그 순간을 붙잡는다. 회전목마 주변에는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지면서, 축제의 상징적인 배경이 돼 준다.
체험 프로그램은 가족 단위 방문객을 세심하게 고려해 구성됐다. 트리 만들기 코너에서는 각자 고른 작은 장식을 매달며 나만의 미니 트리를 완성한다. 쿠키 만들기 체험장에선 달콤한 냄새 속에서 반죽을 밀고 모양을 찍어내는 시간이 이어지고, 구워진 쿠키를 꾸미는 작업에서 아이들의 상상력이 마음껏 펼쳐진다. 카드 만들기 코너에서는 손글씨와 그림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며,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아날로그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종이 한 장에 적힌 짧은 문장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을 조용히 정리해 준다.
축제장 곳곳을 연결하는 장치로는 스탬프 투어가 준비됐다. 남산공원과 고인돌 전통시장에 배치된 스탬프 지점을 찾아다니며 하나씩 도장을 찍다 보면, 어느새 축제 전 구간을 자연스럽게 둘러보게 된다. 모든 지점을 완주한 사람에게는 소소한 기념품이 주어진다. 손바닥만 한 스탬프지만, 그 과정을 통해 관람객들은 화순의 거리와 공원, 시장을 천천히 걷고 머무는 경험을 쌓는다.
‘2025 미리미리 크리스마스 Vol. 2’는 크리스마스라는 계절 행사를 특정 공간의 이벤트로 두지 않고, 화순의 일상 풍경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게 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공원은 공연장이 되고, 전통시장은 야시장과 마켓으로 새 옷을 입는다. 사람들은 장식품을 고르고, 간식을 나누고, 음악을 들으며 바쁜 일상 속에서 서로의 온기를 다시 확인한다. 크지 않은 선택처럼 보이지만, 이런 저녁 한 번이 겨울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바꿔 놓는다. 이 변화는 화려한 여행지가 아닌, 동네 공원과 시장에서도 충분히 따뜻한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는 ‘나의 이야기’에 가까운 풍경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