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 아래 걷는다”…거창 여행, 자연과 일상이 만드는 사계절의 감성
여행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이제는 빼곡한 일정보다, 한적한 마을의 흐린 풍경 속 조용한 산책이 마음을 이끈다. 그런 정서에 닿는 곳, 바로 경상남도 거창군이다.
요즘은 거창 읍내 전통시장에서 지역 농산물을 구경하고, 소박한 로컬 카페에서 넉넉한 오후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SNS에서도 “거창은 기대 없이 갔다가 편안하게 머물다 온다”고 적는 글들이 보인다. 실제로 기자가 찾은 10월 중순의 거창은 기온 17도, 90%를 넘는 습도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감돌았다. 덕유산과 가야산 자락에 안긴 듯,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마을이었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경남 대표 시장인 거창전통시장은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인파로 북적인다. 거창군은 야시장, 비가림 시설 등 작은 배려로 시장 환경을 개선하며, 여행객과 지역민 모두의 쉼터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 두드러진 트렌드라면 ‘팜카페’ 방문이다. 가지리의 이수미팜베리 농가레스토랑&카페, 해플스 팜사이더리에서는 자연이 품은 베리나 사과를 직접 맛보고, 언덕 위 풍경과 야경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느린 여행’이라고 부른다. 지역 라이프스타일 연구자인 김지선 씨는 “빠르게 지나쳐가는 여행이 아닌, 모호한 날씨와 계절 변화까지 감각하는 여행에 마음이 쏠린다”며 “이런 경험은 도시에서 지친 감정을 정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느꼈다. 거창창포원, 민들레울 등 자연 생태 공간이 차곡차곡 늘어나면서 계절마다 새로운 풍경 속 산책을 즐기는 가족 방문객, 반려동물과 함께 온 여행자도 흔히 보인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비 오면 오히려 더 좋은 곳”, “창포원 산책로는 부모님과 걷기 딱 좋아요” 등, 거창의 속도와 분위기에 익숙해졌다는 목소리가 많다. 작디작은 변화지만, 어디를 가도 자연스럽게 머물고 싶은 곳으로 거창을 떠올린다는 이들이 늘고 있었다.
단순한 여행지는 아니었다. 거창은 전통과 계절, 자연의 호흡을 누구나 안심하고 누릴 수 있는 라이프의 배경으로 남아 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