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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혁신으로 새 질서 만들자”…이재명, 카이로에서 대중동 외교전략 제시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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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질서 재편과 안보 불확실성이 맞물린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중동을 향한 새로운 외교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국과 중동의 협력 방향을 평화와 번영, 문화라는 세 축으로 재정의하며, 경제·안보·인적교류 전반을 아우르는 외교 다변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0일 현지시간 이집트 공식 방문 일정으로 카이로 대학에서 연설을 진행하고, 이른바 카이로 구상의 핵심인 샤인 SHINE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SHINE은 안정 Stability, 조화 Harmony, 혁신 Innovation, 네트워크 Network, 교육 Education을 뜻한다. 이 대통령은 한국과 중동이 이 다섯 축을 토대로 미래 협력의 청사진을 함께 그려가자고 제안했다.

평화 분야에서 이 대통령은 한반도와 중동의 안보 현실을 연결고리로 삼았다. 그는 연설에서 “안정과 조화 stability and harmony 에 기반한 한반도와 중동의 평화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에는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뜻”이라며 “전쟁의 포화를 겪은 대한민국 국민은 분쟁으로 위협받는 이들의 눈물에 누구보다 깊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한국과 중동이 함께 할 평화의 여정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고 강조해 양 지역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연대의 당위성을 공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번영 전략의 키워드는 혁신이다. 이 대통령은 에너지·건설 분야에서 이미 진행 중인 협력을 한층 공고히 하되, 인공지능과 수소 등 미래 혁신 분야로 협력의 지평을 넓이겠다고 밝혔다. 그는 “에너지·건설 분야 협력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인공지능, 수소 등 미래 혁신 분야로 협력의 지평을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통 산업과 첨단 산업을 결합해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장기간 윈윈할 수 있는 경제 협력 구조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화 협력에서는 네트워크와 교육이 핵심 축으로 제시됐다. 이 대통령은 “네트워크와 교육으로 교류와 협력의 외연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최근 중동에서 확산되는 K 콘텐츠 열기를 인적교류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특히 청년 세대 간 교류 확대를 통해 문화 협력의 지속성을 확보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청년 간 교류야말로 가장 빠르고 강한 연결고리”라며 “한강의 기적과 나일강의 기적을 하나로 잇고 세계를 향해 도약할 미래의 주인공은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청년들”이라고 말해 현지 청년층을 직접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카이로 구상을 통해 대중동 전략을 체계화한 배경에는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당장의 통상 불확실성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주요국 간 무역전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경제동맹의 외연을 넓히는 과제가 부상하고 있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중동 국가들과의 전략적 협력은 새로운 시장 개척과 투자·에너지 협력 확대를 통해 한국 경제에 활력을 더할 수 있는 카드로 평가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14일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의 중동·아프리카 4개국 순방과 관련해 “국익중심 실용 외교를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지역으로 다각화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미국·유럽에 집중된 기존 외교·경제 네트워크를 중동과 아프리카 등으로 확장해, 외교 다변화와 경제 안전망을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읽힌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적 지지 기반을 넓히려는 의도도 분명히 드러났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집트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이고, 한반도 역시 열강의 각축이 벌어지던 곳”이라며 “평화에 대한 오랜 열망의 역사 앞에서 양국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동이 상시적인 분쟁 위험에 노출된 지역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외교적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서는 향후 이 구상이 대중동 방산·에너지·인프라 수주전과 북핵·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중동에서의 외교 공간이 넓어질 경우, 국제무대에서 한반도 현안을 설명하고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무대도 함께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뒤따른다.

 

이날 카이로 대학 연설로 윤곽을 드러낸 카이로 구상은 앞으로 중동 각국과의 정상외교와 경제사절단 활동, 청년·문화 교류 프로그램 등 구체 사업으로 연계될 전망이다. 정부는 향후 중동과의 고위급 교류를 이어가며 SHINE 이니셔티브에 부합하는 협력 과제를 발굴하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 여론을 확장하는 외교 행보를 계속할 계획이다.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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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카이로구상#shine이니셔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