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NA로 신약 포트폴리오 재편…국내 제약, 백신 넘어 암까지 겨냥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효능과 속도를 동시에 입증한 mRNA 메신저 리보핵산 기술이 백신을 넘어 암과 희귀질환 치료로 확장되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mRNA를 빠른 설계와 대량 생산이 가능한 차세대 모달리티 치료 접근법로 정의하고, 감염병 예방 백신은 물론 항암 면역치료제와 유전자 치료 영역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다. 정부가 mRNA 백신 국산화 시점을 제시한 가운데, 업계는 이번 기술 내재화를 팬데믹 대응 능력과 글로벌 경쟁력 재편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mRNA 기반 의약품은 표적 바이러스나 암세포의 유전체 정보만 확보되면, 해당 정보를 염기서열로 설계해 짧은 시간 안에 후보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기존 단백질 재조합 백신이나 불활화 백신이 세포 배양, 정제 공정을 거쳐야 하는 것과 달리, mRNA는 설계 후 합성과 정제, 제형화 단계가 비교적 단순하다. 여기에 LNP 지질 나노입자 전달체를 결합하면 체내에서 보호와 세포 내 전달 효율을 높일 수 있어, 플랫폼화와 대량생산 체계 구축에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GC녹십자는 mRNA LNP 플랫폼을 기반으로 감염병 백신, 항암 백신, 희귀질환 치료제, 유전자 편집, CAR T 세포치료 등 다각적 파이프라인을 설계하고 있다. 2019년부터 플랫폼 연구를 시작해 설계, 합성, 정제, 제형, 품질평가 등 mRNA 의약품 개발 전 공정을 자체 수행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보했다. 회사는 임상에서 플랫폼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면, 새로운 팬데믹이 발생할 경우 유전체 정보 확보 후 100일 내 후보 백신을 임상 단계로 올릴 수 있는 대응 체계 구축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플랫폼 검증의 첫 시험대는 코로나19 mRNA 백신 후보 GC4006A다. GC녹십자는 지난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해당 물질에 대한 1상 임상시험계획서 IND를 제출했다. 초기 임상에서 안전성과 면역원성이 확보되면, 동일 플랫폼으로 독감, 호흡기 감염병, 변이 대응 백신 등으로 확장하는 전략도 유력하다. 질병관리청이 2028년까지 mRNA 백신 국산화를 목표로 세운 가운데, GC녹십자는 관련 인력과 설비 투입을 확대하며 선점 효과를 노리고 있다.
국내 코로나19 mRNA 백신 라인업은 점차 다변화되고 있다. 유바이오로직스는 지난달 코로나19 변이 대응 mRNA 백신 mCOV의 1상 IND를 식약처에 신청하며 임상 진입을 준비 중이다. 같은 달 아이진 컨소시엄도 변이 표적 예방 백신 BMI2012의 1상 IND를 제출했다. 두 프로젝트 모두 변이주에 맞춘 항원 서열을 빠르게 교체할 수 있는 mRNA의 특성을 활용해, 상용화 시 계절성 부스터 접종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기존 단백질 재조합 백신 경험을 바탕으로 mRNA 플랫폼 역량을 추가 확보하는 전략을 택했다. 현재 일본뇌염을 타깃으로 한 mRNA 백신의 글로벌 1 2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연내 주요 중간 결과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는 일본뇌염 프로젝트를 통해 mRNA 생산 공정, LNP 제형 기술, 콜드체인 물류 등 전주기 노하우를 내재화하고, 이후 RSV, 독감, 범용 코로나 등 신규 백신 파이프라인으로 확장하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암 치료 영역에서는 한미약품이 mRNA를 활용한 차세대 면역항암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STING mRNA 항암 신약은 선천면역 경로의 핵심인 STING 자극 인자 유전자 정보를 mRNA 형태로 전달해, 종양 미세환경 내에서 STING 단백질을 직접 발현시키는 방식이다. 기존 STING 소분자 작용제가 갖고 있던 전신 독성, 국소 전달 한계 등을 mRNA를 통해 보완하고, 종양 조직에서 강력한 인터페론 매개 항암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 목표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국제 암 학술대회 AACR NCI EORTC에서 대장암 및 폐암 동물 모델 데이터를 공개했다. 발표에 따르면 STING mRNA 단독 투여만으로도 의미 있는 종양 성장 억제 효과가 관찰됐고, 전신 독성 측면에서도 수용 가능한 안전성 프로파일을 보였다. 회사는 이 데이터를 토대로 용량 조절, 병용 전략을 정교화해 임상 전 개발을 마무리한 뒤, 고형암을 중심으로 초기 임상 진입 시점을 검토하고 있다.
같은 플랫폼에서 개발 중인 p53 mRNA 항암 신약은 대표적 종양억제 유전자인 p53의 정상 유전자를 암세포에 전달해 단백질을 다시 발현시키는 전략이다. 많은 암에서 p53 기능 상실이 관찰되는 만큼, p53 mRNA를 세포 내에 공급해 자멸사 프로그램을 재가동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기존 바이러스 벡터 유전자 치료제가 가진 면역원성, 삽입 돌연변이 우려를 줄이면서, 반복 투여와 용량 조절이 수월하다는 점에서 mRNA 기반 접근이 차별성을 가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플랫폼 결합형 협력도 활성화되고 있다. 차백신연구소는 지난 9월 SML바이오팜과 mRNA 기반 백신 및 면역치료제 공동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차백신연구소의 면역증강제 및 백신 설계 기술과 SML바이오팜의 mRNA LNP 플랫폼을 결합해, 감염병과 암을 아우르는 차세대 파이프라인을 공동 발굴하는 전략이다. 이는 독자 개발이 어려운 LNP 제형과 생산 기술을 파트너십으로 보완하려는 국내 업계 전반의 흐름과도 맞물린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mRNA 플랫폼 경쟁이 다음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선두 주자인 다국적 제약사들은 코로나19 백신 이후 독감, RSV, 결핵 등 감염병 영역과 더불어 개인 맞춤형 암 백신, 희귀 유전질환용 단일 유전자 교정 치료제 개발을 병행 중이다. 특히 동일 생산 인프라에서 여러 질환으로 빠르게 파이프라인을 확장하는 전략이 본격화되면서, 플랫폼 검증 속도가 곧 시장 점유율과 직결되는 구도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국내에서는 규제와 인허가 체계가 상용화 속도의 변수로 꼽힌다. 식약처는 mRNA 백신과 치료제를 생물학제제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범주에서 관리하며 비임상 독성, 면역원성, 품질관리 자료 요구 수준을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변이 대응 백신처럼 항원 서열만 교체하는 경우, 어느 수준까지 축약 평가를 허용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 정립이 중요 과제로 지목된다. mRNA를 유전자 치료 범주로 볼지, 백신 및 단백질 대체요법으로 볼지에 따른 심사 틀 차이도 향후 논의 대상이다.
데이터와 생산 인프라 역시 관건이다. mRNA 설계에는 병원과 연구기관으로부터 확보한 임상 유전체 데이터와 바이러스 서열 데이터가 중요해, 개인정보 보호와 연구 활용 간 균형을 두고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초저온 콜드체인을 비롯한 생산·물류 인프라 투자와 국산 LNP 원료, 효소·캡핑 시약 등 핵심 소재 국산화 여부도 장기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mRNA 기술은 백신을 넘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며 단일 제품이 아니라 플랫폼이라는 특성을 살려 감염병, 암, 희귀질환 전반에서 혁신 치료제 개발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들이 실제 임상과 시장에 안착해 글로벌 경쟁에서 의미 있는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