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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3대강국 뒷받침”…과기정통부, 공무원 근무환경 손본다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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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 정책을 총괄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조직의 인사와 근무환경을 손질하기 위한 노사 협의에 나섰다. 글로벌 AI 3대 강국 도약, 초격차 전략기술 육성, 국가 R&D 예산 조정 등 과기정통부의 역할이 커지면서 주말과 야간을 가리지 않는 고강도 업무가 일상화된 데 따른 대응이다. 기술 패권 경쟁의 전면에서는 AI·반도체·유전체 전략이 논의되지만, 이를 설계하고 집행하는 공무원의 피로 누적이 정책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변수로 부상한 셈이다. 업계와 공공 연구계에서는 이번 논의가 과기·정보통신 거버넌스의 인적 기반을 재정비하는 분기점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공무원노동조합은 16일,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2025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사협의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협의회에는 배 부총리와 함께 정현석 과기정통부 공무원노동조합 노측대표 위원장, 송영섭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과기정통부지부 위원장, 서영중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우정사업본부 위원 등 노측 위원, 그리고 강상욱 과기정통부 기획조정실장, 권석민 국립중앙과학관 관장, 정창림 국립전파연구원 원장 등 고위 공무원들이 참여해 인사와 복무 제도 전반을 논의했다.

과기정통부는 AI 3대 강국 도약 전략, 데이터 인프라 구축, 국가 연구개발 사업 기획과 평가, 디지털 규제 정책 등을 아우르는 중앙 부처다. 초고성능 AI 인프라 구축, 반도체 공급망 정책, 연구기관 R&D 평가 체계 개편 등 기간산업과 직결된 과제가 동시에 추진되면서 실무진의 업무량과 책임이 급증한 상태다. 특히 예산 편성과 법·제도 정비 일정이 겹치는 시기에는 주말과 야간에도 긴급 보고와 대면 회의가 이어진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배 부총리는 지난달 26일 과중한 업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무자급 담당자 300여 명을 대상으로 직접 타운홀미팅을 진행했다. 이후 즉시 조직문화 개선 조치를 발표해 주말과 야간 메신저를 통한 업무 지시를 자제하고, 보고서는 핵심이 담긴 1페이지 중심으로 작성하도록 했다. 월요일 회의는 오후 시간대로 조정하고, 상하 직급을 드러내는 수직적 호칭을 생략하는 등 수평적 소통을 확대하는 방안도 병행해 시행하고 있다.

 

이번 노사협의회에서는 노조가 제시한 11개 안건을 토대로 제도 개선 방향을 구체화했다. 인사 제도 측면에서는 5급 이하 직원 승급 시 적용돼 온 1호봉 감봉 제도 개선, 본부와 소속기관 간 교류 인사 시 직급과 업무 강도에 부합하는 인사 기준 마련, 5급·7급·9급 등 직급별 공개채용·특별채용 공무원 간 선입견과 차별을 줄이는 방안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다. 인사 구조를 합리화하지 않으면 정책의 전문성과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복무 제도와 관련해서는 유연근무제를 보다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 조성, 현업기관 소속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초과근무 제도 개선, 장관표창 수상자에게 1일 포상휴가를 부여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과도한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 체계와 인센티브를 정비해 유능한 인력이 과기·ICT 정책 분야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공유됐다.

 

업무 환경 전반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문화행사 확대, 청사 냉난방 시스템 점검, 과 단위 운영비 현실화, 과학기술공제회 가입 확대 등 사무 공간과 복리후생 측면의 개선 요구가 테이블에 올랐다. AI 인프라나 연구 장비 투자뿐 아니라 정책 담당자의 워크·라이프 밸런스와 건강 관리가 장기적으로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에 직결된다는 관점이 반영된 요구들이다.

 

정현석 노측대표 위원장은 과기정통부 소속 공무원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술 확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후속 조치, 대기업 개인정보 유출 사고 대응 등 국가적 현안에 전력 대응해 온 점을 강조했다. 동시에 범부처 과학기술 정책과 국가 R&D 예산을 총괄하는 업무까지 수행하면서 직원들의 업무 스트레스가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노사협의회가 현장의 애로를 제도 개선으로 연결하는 가교가 돼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고 공직사회 전반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가 차원의 AI·바이오·반도체 전략은 장기간의 정책 일관성과 축적된 전문성이 요구된다. 정부 부처의 인력 구조와 근무 환경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야근과 초과근무에 의존하는 단기 대응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산업계와 연구계에서는 과기정통부의 이번 시도가 실제 규정과 예산 배분에까지 반영될지, 그리고 다른 기술 부처와 공공 연구기관으로 얼마나 확산될지 지켜보는 분위기다. 산업계는 이번 조직문화와 제도 개선 논의가 과학기술 정책의 실행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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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공무원노동조합#배경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