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내수 주도·완화 기조 유지”…중국, 내년에도 완화적 통화정책 속 무역 ‘투쟁’ 예고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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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8일, 중국 베이징(BEIJING)에서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주재로 중앙정치국 회의가 열려 내년 경제운용 방향이 제시됐다. 회의는 내수 확대와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는 한편, 국제 경제·무역 환경에서는 ‘투쟁정신’을 강조하며 무역 전략의 긴장 수위를 높이는 기조를 분명히 했다. 이 같은 방침은 성장 둔화와 대외 갈등이 겹친 상황에서 중국이 어떻게 경제·안보를 연계해 나가려 하는지 보여주며, 주변국과 글로벌 공급망에도 파장을 낳고 있다.

 

중앙정치국은 이날 회의에서 내년에도 ‘고품질 발전’과 ‘온중구진(안정 속에서 전진)’을 기본 기조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현지시각 기준 8일 오전 베이징에서 열린 회의는 내년 경제 공작을 분석·연구하는 자리로, 국내 경제정책 방향과 대외 경제·무역 전략을 동시에 조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회의는 국내 경제 공작과 국제 경제·무역에서의 투쟁을 더 잘 통합하고, 발전과 안보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내년에도 내수 확대·완화적 통화정책 유지…무역은 ‘투쟁정신’ 강조
중국, 내년에도 내수 확대·완화적 통화정책 유지…무역은 ‘투쟁정신’ 강조

중국공산당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거시정책을 시행하겠다며, 정책의 선견성·지향성·협동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거시정책 아래 내수 확대와 공급 측면의 최적화를 지속 추진하고, 특히 ‘내수 주도’ 전략을 고수해 ‘강대한 국내 시장’을 육성하는 데 정책의 무게를 두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최근 수년간 중국 정부는 소비 진작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지만, 소비 회복에서 뚜렷한 반등 신호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홍콩(HONG KONG)의 중국 전문 컨설팅업체 ‘게이브칼 드래고노믹스’의 허웨이는 블룸버그통신에 “현재의 정책 설정을 지속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라며 “지금은 노선 수정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구조개혁보다 기존 완화 기조의 연속에 방점이 찍혔다는 해석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국제 경제·무역 환경과 관련해 ‘투쟁’이라는 표현을 공식 문구에 사용해, 대외 전략의 방향성을 명확히 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중국 담당 수석 쑤웨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내년의 국제 경제·무역을 ‘투쟁’이라고 묘사한 것은 무역 안정이 당의 핵심 우선순위 중 하나로 격상됐다는 점을 부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이 표현이 미국(USA)과의 관계를 넘어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 관계 유지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해석했다.

 

쑤웨는 이어 “투쟁 정신이 등장한 것은 중국이 외부 무역 환경이 계속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동시에 중국이 일시적인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큰 양보를 할 가능성이 작다는 의미도 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인식은 미중 전략 경쟁과 주요국의 대중 견제 정책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이 무역 마찰과 제재, 공급망 재편 압력에 보다 공세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회의는 ‘신품질 생산력’ 육성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각 지역이 자체 사정과 특성에 맞게 신품질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전국 통일 대시장 건설을 심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이는 첨단 제조, 디지털 경제, 신에너지 등 전략 산업을 지역 맞춤형으로 육성해, 내수와 수출 모두에서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동시에 회의는 지방정부 부채 등 중점 영역의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예방·해소하고, 취업과 기업, 시장, 기대를 안정시키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경기 둔화와 지방재정 악화가 복합적인 리스크로 남아 있는 가운데, 사회 안정과 고용 안정을 전면에 내세워 ‘질적인 유효 성장’과 ‘양적인 합리적 성장’을 모두 달성해야 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거시정책 방향과 관련해 중앙정치국은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적절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중국공산당은 경기 하방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역주기조절과 과주기조절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역주기조절은 경기 둔화 국면에서 정책 완화를 통해 충격을 완화하는 단기 대응을 뜻하고, 과주기조절은 단기 경기 대응과 함께 중장기적인 구조개혁과 성장 전략을 함께 고려하는 접근법으로 설명된다.

 

블룸버그통신은 ‘과주기조절’이라는 표현이 2023년 12월 이후 정치국 발표문에 처음 등장했다며, 중국이 단기 부양책을 넘어 장기적 관점의 정책 운용을 강조하고 있다고 짚었다. 적극 재정과 완화 통화의 병행은 성장률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하면 추가 부양에 나설 여지가 여전히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민생 안정도 이번 회의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뤄졌다. 회의는 연말을 맞아 민생과 직결된 주요 상품의 공급을 보장하고, 기업의 대금 결제와 농민공(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해 일하는 노동자) 임금 체불 문제 해결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기 둔화 국면에서 체불과 소비 위축이 결합할 경우 사회 불만이 확대될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내년 경제정책 기조는 이날 중앙정치국 회의 결과를 토대로 이달 열릴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최종 확정될 전망이다. 내년은 2026∼2030년을 포괄하는 ‘15차 5개년 계획’이 새로 시작되는 출발점이 되는 해로, 향후 5년간의 성장 전략과 산업 구조 조정 방안이 함께 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률 목표와 관련해 시장에서는 중국이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를 올해와 비슷한 5% 안팎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정치 리스크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중국 이사 왕단은 블룸버그에 “중국이 내년 목표를 약 5% 성장으로 설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중국이 수출 부문에서 양호한 모멘텀을 확보할 경우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도한 재정 부양책을 동원할 필요는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시진핑 총서기는 내년 경제정책 방향과 15차 5개년 계획 수립을 둘러싼 의견 수렴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총서기는 지난 3일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민주당파, 전국공상연합회, 무당파 등 당외 인사들과 좌담회를 열었다. 시 총서기는 이 자리에서 “올해는 매우 평범하지 않은 해였다”며 “중앙당이 단결해 난관을 돌파하고 전력을 다해 싸웠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참석자들에게 15차 5개년 계획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심층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실질적인 가치와 무게를 지닌 의견과 건의를 제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외 여론 수렴을 통해 정책 정당성과 실행 가능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투쟁’ 기조가 이미 악화된 미중 관계와 서방의 견제 속에서 통상 마찰 장기화를 예고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공급망 디커플링과 첨단 기술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내수 확대와 신품질 생산력 육성으로 대외 충격을 흡수하면서도 무역 전선에서는 양보를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을 취할 경우, 글로벌 교역 질서의 긴장 상태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완화적 통화정책과 적극 재정으로 성장 방어에 나서면서 동시에 무역에서 투쟁적 태도를 견지할 경우, 아시아를 비롯한 주요 교역국들이 대중 수출 의존도와 공급망 전략을 재조정해야 하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내년 경제 운용이 향후 지역 및 글로벌 경제 질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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