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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출신 CEO 복귀”…KT, AI 전환·신뢰 회복 시험대

조보라 기자
입력

KT가 내부 출신 최고경영자 체제로 회귀한다. 차기 수장으로 내정된 박윤영 전 사장이 3월 주주총회에서 공식 취임하면, 30년 넘게 조직에 몸담아 온 이른바 KT맨이 다시 회사를 이끌게 된다. 최근 대규모 해킹 사고로 인한 신뢰 훼손과 통신 시장 성장 한계 속에서, 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 전략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켜야 하는 복합 과제를 떠안은 상황이라 업계의 시선이 쏠린다. 일각에선 이번 선택을 두고 KT의 AI 전환과 지배구조 리셋을 가늠할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KT 이사회는 18일 박윤영 전 사장을 차기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1992년 한국통신 연구직으로 입사한 그는 B2B 사업을 총괄하는 기업부문장(사장)을 지낸 인물로, 통신 인프라부터 기업 대상 디지털 전환 사업까지 전통 사업과 신성장 영역을 모두 경험했다. 외부 낙하산 논란이 반복되며 피로감이 커진 상황에서, 이해관계와 조직 문화를 잘 아는 내부 인사를 선택해 경영 불확실성을 줄이겠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박 내정자는 재직 당시 합리적 리더십과 전략 기획 역량을 앞세워 임직원들 사이에서 덕장으로 불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KT 노조도 성명을 통해 “조직과 사업 구조를 속속들이 아는 내부 출신 후보가 KT를 이끌 경우, 시스템과 현장 정서를 파악하느라 소모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외부 출신 CEO가 부임할 때마다 인위적인 인적 쇄신이나 고강도 구조조정이 뒤따랐던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인선은 최소한 단기적인 혼란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다만 내부 승진 CEO가 가진 구조적 딜레마도 동시에 제기된다. 그동안 KT를 포함한 통신업계에선 내부 출신 수장이 비용 효율화와 조직 관리에는 강점을 보이는 대신, 판을 뒤집는 신사업 발굴에는 보수적으로 움직였다는 평가가 반복됐다. 외부 영입 인사가 구독형 플랫폼, 콘텐츠,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등 비통신 영역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면, 내부 출신은 기존 사업의 수익 방어와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우려다. 이번 인사가 조직 안정과 혁신 동력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을지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는 배경이다.

 

KT 이사회는 박 내정자의 AI 기반 디지털 전환 역량에 무게를 뒀다. 이사회는 “KT 사업 경험과 기술 기반의 경영 역량을 바탕으로 DX와 B2B 분야에서 성과를 거둔 인물”이라며 “주주와 시장과의 약속을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현안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이동통신을 넘어 기업용 네트워크, 클라우드, 데이터, 인공지능을 아우르는 B2B 사업이 통신사의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박 내정자가 과거 기업부문에서 축적한 계약 구조 설계와 솔루션 패키징 경험을 어떻게 재해석할지가 관건으로 떠오른다.

 

박 내정자가 당면한 첫 번째 과제는 보안 리스크 관리와 신뢰 회복이다. 최근 KT는 주요 인프라가 해킹 공격을 받으면서 통신망 기반 서비스의 보안성과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에 직면했다. 통신망은 클라우드, 금융 결제, 공공 행정, 병원 시스템 등 디지털 경제 전반의 기반 인프라다. 기본 인프라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상황에서 AI 콜센터, AI 네트워크 자동화, 데이터 기반 기업 솔루션 등 신사업을 논하는 것은 설계 단계부터 리스크를 내재하는 셈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대규모 보안 투자와 제로 트러스트 아키텍처 같은 최신 보안 프레임워크 도입 여부가 AI 전환 전략의 신뢰도를 가르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두 번째 과제는 정체된 통신 본업의 성장 공식을 다시 짜는 일이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이미 포화 단계에 진입했다. 5G 가입자 비중은 꾸준히 늘었지만, 가입자 수 자체의 성장 여력은 제한적이다. 주파수 재할당과 요금 인하 압박, 상호접속료 등 정부 규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구조에서 통신사들이 요금 인상으로 수익을 높이기 어려운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데이터 사용량 증가와 콘텐츠 소비 확대에도 불구하고, 네트워크 투자는 계속 늘고 수익성은 정체되는 이른바 네트워크 투자 역설이 통신업계 공통 고민으로 떠오른 상태다. AI 기반 네트워크 효율화와 트래픽 예측, 에너지 소비 최적화 같은 기술이 실제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세 번째는 AICT 전략의 실질성과 수익성을 입증하는 일이다. 김영섭 현 대표가 내세운 AICT 전략은 통신 인프라에 인공지능을 접목해 초개인화 서비스, 스마트팩토리, 스마트시티, 산업용 사물인터넷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청사진에 가깝다. 마이크로소프트, 팔란티어 등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은 AI 모델 개발과 클라우드 인프라, 데이터 분석 솔루션 측면에서 잠재력을 인정받았지만, 실제 실적에서 AI 관련 매출 기여분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시장 평가가 엇갈린다. 최근 실적 개선이 부동산 자산 활용과 일회성 요인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 박 내정자는 AI 전략을 항목별로 분해해 수익 모델이 검증된 사업과 실험 단계 사업을 구분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국내외 통신사들은 이미 비슷한 전환 전략을 실행 중이다. 미국 통신사들은 클라우드 기반 엣지 컴퓨팅, 네트워크 슬라이싱, 데이터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B2B 매출 비중을 키우려 하고 있으며, 일본과 유럽 주요 사업자들도 인공지능 기반 자율 네트워크와 기업용 보안 서비스로 수익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AI 인프라 확보 경쟁과 데이터센터 투자가 본격화된 상황이어서, KT가 어느 영역에 선택과 집중을 할지에 따라 투자 효율성과 시장 포지셔닝이 갈릴 수 있다.

 

네 번째 과제는 CEO 승계 시스템 복원이다. KT는 이번에 퇴임했던 내부 인사를 다시 불러들이는 선택을 했다. 이는 장기적인 리더십 육성과 검증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승계 프로세스는 통신처럼 투자 회수 기간이 긴 인프라 산업에서 전략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로 꼽힌다. 후계자 후보군 발굴과 리더십 육성, 이사회와 사외이사의 검증 프로세스를 정교하게 설계하지 못할 경우, 향후에도 올드보이 복귀나 외부 낙하산 논란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내정자의 최근 행보는 조심스럽다. 내정 이후 별도의 대외 메시지보다는 내부 보고와 현안 점검, 인수인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통신 본업의 성장 정체와 AI 전환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동시에 안은 상황에서, 성급한 비전 제시보다 사업 포트폴리오와 투자 우선순위를 차분히 재정렬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업계 관계자는 “박 내정자가 취임 전부터 존재감을 과하게 드러내기보다 내부 현안 파악에 집중하는 기조”라며 “향후 네트워크 안정화, AI 사업 선택과 집중, 후계 구조 정비가 그의 첫 임기 성적표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업계 안팎에서는 KT가 내부 출신 CEO 체제 속에서 조직 안정과 디지털 전환, 거버넌스 혁신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리더십 교체가 AI 기반 통신 기업으로의 실질적인 도약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비용 효율화 중심의 방어전으로 귀결될지를 지켜보고 있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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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박윤영#aict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