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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기한 참고값 2037개…식약처, 데이터로 식품안전 높인다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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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기한 표기가 유통기한을 대체하는 새 기준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데이터 기반 소비기한 설정 지원이 확대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2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축적한 소비기한 참고값을 식품 영업자에게 제공하면서, 영세 업체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소비기한을 정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표준 데이터를 활용한 소비기한 산정 체계가 정착될 경우 식품 폐기 감소와 식품 안전 신뢰도 제고라는 두 가지 효과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8일 발표를 통해 2022년부터 올해까지 총 204개 식품유형 2037개 품목에 대한 소비기한 참고값을 마련해 각종 식품 영업자에게 제공해 왔다고 밝혔다.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본격 시행된 이후 소비기한 설정에 부담을 느끼는 업체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축적한 실험 데이터를 통해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구조다.

소비기한 참고값은 식약처가 품목별로 소비기한 설정 실험을 수행한 뒤, 과학적 검증을 거쳐 제시하는 잠정 소비기한이다. 실제 실험 과정에서는 제품 특성, 미생물 증식 정도, 품질 변화, 보존 온도 등 여러 변수를 통합적으로 검토해 제품이 안전하고 품질을 유지하는 기간을 도출한다. 기존에 감에 의존하거나 보수적으로 설정하던 방식과 비교하면, 데이터 기반으로 안전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고려한 셈이다.

 

영업자는 자사 제품의 성분 조성, 제조 공정, 포장 형태, 유통 환경 등을 분석한 뒤, 식약처가 제공한 설정보고서에 수록된 품목 중 특성이 가장 유사한 품목을 선택해 그 범위 내에서 소비기한을 설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일한 식품유형에 속하고 비슷한 포장재와 보존 온도를 사용하는 제품의 경우, 해당 참고값을 기초로 자사 소비기한을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어 초기 실험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법적 근거도 마련돼 있다. 식품, 식품첨가물, 축산물, 건강기능식품의 소비기한 설정 기준을 규정한 식약처 고시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소비기한 설정 실험을 수행해야 하지만, 동일한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기존 연구보고서를 인용해 소비기한을 설정하는 것도 허용된다. 이번에 축적된 소비기한 참고값과 설정보고서는 사실상 공인 연구자료 역할을 하며, 특히 연구 인프라가 부족한 중소 규모 업체에게 규제 준수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소비기한 참고값의 접근성도 높였다. 식약처는 소비기한 설정보고서와 소비기한 참고값 검색 서비스를 통해 식품유형, 포장방법, 보존·유통온도 등 세부 조건을 기준으로 자사 제품과 유사한 품목을 검색해 참고값을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구조적으로는 데이터베이스 기반 검색 시스템 형태로 운영되며, 업체는 제품 개발 단계부터 해당 정보를 인용해 라벨링 전략과 유통기한 관리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식약처는 영업자가 직접 소비기한을 산정할 수 있는 디지털 도구도 제공한다. 식품안전나라와 한국식품산업협회 누리집을 통해 배포되는 가속실험 결과산출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업체가 자체 실시한 가속실험 데이터를 입력하면 품질 안전한계기간 등 소비기한 산정에 필요한 핵심 지표를 자동 계산해 준다. 가속실험은 실제 보관·유통 조건보다 더 높은 온도 등 가혹한 환경에서 단기간 제품을 보관하며 품질 변화를 측정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정상 조건에서의 소비기한을 예측하는 통계적 예측 실험이다. 소비기한이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긴 제품에서도 비교적 단기간 내에 예측값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산출 프로그램과 결합될 경우 중소기업의 R&D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는 도구로 평가된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소비기한 제도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높이는 작업도 병행되고 있다. 식약처는 소비기한이 단순한 날짜 변경이 아니라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안전 기간 설정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소비기한 산정 원리, 실험 방법, 올바른 식품 보관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홍보 영상을 제작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와 함께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냉장·냉동 보관 온도 준수 여부에 따라 실제 섭취 가능한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등, 소비자 행동과 연결된 정보도 포함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개념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고,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표시 전환이 식품 폐기물 저감 정책과 연계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경우, 제조사는 여유 있는 소비기한 설정을 통해 재고 관리 효율을 높이고, 유통·소비 단계에서는 불필요한 폐기를 줄여 환경적·경제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식약처는 앞으로도 소비기한 참고값 데이터베이스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가속실험 도구와 검색 서비스 고도화를 병행해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도록 지원을 이어갈 방침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업계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소비기한을 설정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식품 소비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식품 산업계에서는 데이터와 제도가 맞물려 작동할 경우, 소비기한 제도가 식품 안전 정책과 자원 효율화 전략의 접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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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소비기한참고값#가속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