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이차전지로 한계돌파"…과기정통부, 민관 성과전략 공유
차세대 이차전지 기술이 미래 모빌리티와 인공지능 로봇 산업의 판도를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글로벌 선두권에 올라 있지만, 에너지 밀도와 충전 속도, 안전성의 물리적 한계에 직면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민관 협의체를 중심으로 올해 연구개발 성과를 점검하고 후속 전략을 정비한 것은, 이 같은 한계를 넘어 차세대 시장 선점을 노린 기술·인력·국제협력 종합 점검으로 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논의가 2030년 글로벌 차세대 이차전지 경쟁 구도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1월 26일 서울 마포 호텔나루에서 차세대 이차전지 민관 협의체와 함께 성과 공유회를 열고, 올해 추진한 주요 연구개발 사업의 성과와 향후 추진 방향을 논의했다. 행사에는 배터리 제조사, 소재 기업, 대학, 출연연 등 산학연 전문가 200여 명이 참석해 차세대 이차전지 기술 현황을 공유하고 정책·투자 필요 조건을 점검했다. 이번에 성과를 공유한 과기정통부의 차세대 이차전지 사업에는 한계돌파형 4대 차세대 이차전지 핵심원천 기술개발, 차세대 이차전지 전문인력양성, 리튬메탈음극범용적 활용 모듈형 LEA 핵심기술개발, 이차전지 국제공동연구 등이 포함된다.

과기정통부가 말하는 한계돌파형 차세대 이차전지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가 가진 구조적 제약을 근본적으로 넘어서는 기술을 지칭한다. 대표적으로 리튬메탈 음극, 전고체 전해질, 고니켈 양극, 차세대 실리콘 복합 음극 등이 꼽힌다. 리튬메탈 음극은 이론상 에너지 밀도가 현재 상용 리튬이온 대비 2배 이상까지 기대되지만, 충방전 과정에서 수지상 결정이 자라나는 덴드라이트 문제로 안전성과 수명 확보가 관건이다. LEA 모듈형 플랫폼은 이런 리튬메탈 음극을 다양한 응용 배터리 구조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공정·안전 패키지를 표준화하는 접근으로, 성공 시 차세대 전지의 설계 기간을 크게 줄이고 양산 전환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과공유회에 앞서 김성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실장 주재로 열린 차세대 이차전지 민관 협의체 회의에서는 글로벌 배터리 산업 환경 변화를 반영한 미래 경쟁력 전략이 집중 논의됐다. 회의에서 산학연관 참석자들은 무인 모빌리티, 인공지능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우주 탐사체, 도심항공 교통과 같은 고도화된 미래 신산업이 공통적으로 초고성능 에너지 저장장치를 요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무인이동체와 UAM은 고에너지 밀도와 경량화가 핵심이고, AI 로봇과 우주 분야는 극저온·진동·방사선 등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배터리가 필수라는 점에서, 응용 분야별 맞춤형 차세대 이차전지 플랫폼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번 논의에서 핵심 화두는 기존 이차전지의 물리적·경제적 한계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에 맞춰졌다. 참여자들은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고에너지 밀도, 더 빠르게 충전 가능한 고출력 특성, 화재와 열폭주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춘 안전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차세대 이차전지 원천기술 확보 방안을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전고체 전지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을 사용해 누액과 화재 위험을 줄일 수 있어 유력한 대안으로 꼽히지만, 이온전도도 저하와 계면저항, 대량 생산 공정 문제를 해결해야 상용화 속도가 붙을 수 있다. 리튬메탈과 전고체를 결합하면 셀당 에너지 밀도를 현재 전기차용 리튬이온 대비 30퍼센트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는 평가도 있어, 정부·업계가 중점 투자 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차세대 이차전지를 둘러싼 기술 경쟁이 본격화돼 있다. 미국과 유럽은 리튬메탈과 전고체 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고, 일본은 전고체 전지를 중심으로 자동차 업체와 소재 기업이 공동 개발을 강화하는 추세다. 중국은 LFP 계열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데 이어 망간계와 나트륨이온 배터리까지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원재료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을 펴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형 배터리 3사를 중심으로 자체 전고체 파일럿 라인 구축과 리튬메탈·실리콘 음극 개발이 병행되는 가운데, 과기정통부의 이번 민관 협의체는 기업별 전략과 국가 차원의 원천기술 로드맵을 어떻게 정렬할지 논의하는 장으로 기능한 셈이다.
정책·제도 측면에서 차세대 이차전지는 에너지·환경·안전 규제와도 맞물려 있다. 전기차 온실가스 규제 강화와 탄소중립 목표, 전력계통 안정성 이슈가 겹치면서 고에너지 밀도와 긴 수명을 갖춘 중대형 저장장치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배터리 화재 사고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면서, 새로운 소재와 구조를 적용한 차세대 전지에 대해서도 안전성 검증 기준과 시험 규격을 어느 수준으로 설정할지 논의가 필요하다. 과기정통부가 국제공동연구 사업을 병행하는 이유도, 향후 국제 표준화와 인증 체계를 선제적으로 반영해 국내 기술이 글로벌 시장 진입 장벽에 막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차세대 이차전지 전문인력양성 사업 역시 주목할 지점이다. 전고체, 리튬메탈, 차세대 전해질, 고체계 인터페이스 등은 전통적인 전기화학, 재료공학뿐 아니라 공정 시뮬레이션, 인공지능 기반 설계, 공장 자동화 기술이 결합된 융합 분야다. 업계에서는 연구개발과 양산을 동시에 이해하는 인력 부족이 향후 상용화의 병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가 산학 협력 교육과 현장 실습을 결합한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확대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개발 기간 단축과 초기 양산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성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실장은 행사에서 올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후속 연구를 고민하는 자리가 미래 이차전지 기술의 핵심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2030년까지 글로벌 차세대 이차전지 분야에서 확실한 주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민관 협의체를 축으로 연구개발과 인력, 국제협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정부와 민간이 수립하는 이번 로드맵이 실제 투자와 규제 개선으로 이어져, 차세대 이차전지 기술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