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센과 치히로 3만 좌석 매진→환상의 무대, 한국 관객의 기다림이 빚은 영혼의 싹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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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진 가을 오후,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 채워진 화면에는 소녀 치히로가 낯선 세계로 발을 내딛는 모습이 떠오른다. 추억의 스코어가 흐르고,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한국 무대에서 펼쳐질 환상적인 서사의 막이 오른다. 수만 명의 관객이 한날한시에 예매 대기열에 몰렸던, 그 꿈처럼 아득한 순간이 현실이 됐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선사한 첫 티켓 오픈의 기록은 그 자체로 시대의 문화적 현상이었다. 3만 좌석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고, 12만 명 넘는 이들이 컴퓨터 앞에서 자신만의 미지의 세계를 기다렸다. 지브리의 영혼을 웅변하는 이 무대는, 도쿄와 런던, 상하이의 열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으며 한국 공연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글로벌 흥행 이어 한국 공연도 대기열 12만 명(출처=CJ ENM)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글로벌 흥행 이어 한국 공연도 대기열 12만 명(출처=CJ ENM)

이번 공연에서는 영화의 정수를 무대에 다시 불러온 거장 존 케어드의 연출이 돋보인다. 작품 속 배경과 분위기는 오케스트라가 직접 연주하는 히사이시 조의 원작 OST로 풍성하게 살아나며, 관객 각자의 어린 시절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도쿄 제국극장 초연 이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5주 연장, 30만 관객을 돌파하며 거둔 성공 뒤엔 배우 카미시라이시 모네와 카와에이 리나 등 오리지널 투어팀의 혼이 서린 연기가 있다.

 

이번 한국 공연을 고대해온 팬들은, “어린 시절 꿈의 한 조각이 현실이 됐다. 센과 치히로를 실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설렌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화려한 시각효과와 더불어, ‘치히로’가 금지된 신들의 세계를 지나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우리 모두의 기억 저편 영혼을 조용히 두드린다.

 

신들의 세계에서 길을 잃은 치히로가 성장의 의지를 깨닫고 결국 스스로로 돌아오는 과정, 그 여운은 관객 각자에게도 잠든 희망의 싹으로 남는다. 생생한 오케스트라 연주와 원작 배우진의 내면 연기, 그리고 무대 위에 재현된 환상적 공간이 어우러질 때, 현실과 꿈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오는 2026년 1월 7일부터 3월 2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어지는 이번 공연은, 나날의 반복 너머 자신만의 세계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잔잔한 빛과 용기를 건넨다. 시간 속에 녹아든 한 편의 서정, 그 여운은 오래도록 문화 속에 남아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질 것이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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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치히로의행방불명#카미시라이시모네#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