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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라벨로 규제 효율화"…식약처, 제약 현장과 정책 재설계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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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전자 라벨과 원료의약품 등록 절차를 중심으로 한 규제 혁신 논의가 제약 현장에서 본격화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약 산업계와의 직접 소통을 전제로 정책 설계에 나서면서, 향후 의약품 정보 제공 방식과 품질관리 규제가 데이터 기반 체계로 개편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업계는 행정 부담을 줄이면서도 안전성은 강화하는 균형점을 찾는 작업이 의약품 경쟁력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민이 안심하고 현장에 힘이 되는 식의약 정책을 표방하며 경기도 과천시 경인식약청에서 식의약 정책이음 지역현장 열린마당 의약품 편을 개최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자리는 의약품 분야 정책을 산업계와 함께 설계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번 열린마당 의약품 편은 의료기기 대구, 수입식품 부산, 화장품 대전, 식품·축산물 광주, 건강기능식품 서울에 이은 여섯 번째 순회 행사다. 식약처는 각 권역별 산업 구조와 규제 이슈를 고려해 지역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주제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특히 완제의약품 업체 약 40퍼센트가 밀집한 경기·인천 지역의 제약인협의회가 대거 참여하며 의약품 산업 거점지 특성이 반영됐다. 참석자들은 의약품 안전관리 정책 전반을 놓고 자유 토론 방식으로 의견을 제시하며 현장에서 겪고 있는 규제 애로와 개선 요구를 공유했다.

 

논의의 핵심 축은 디지털 전환과 연계된 규제 효율화였다. 의약품 전자적 정보 제공 e 라벨 적용 확대 방안이 대표적이다. e 라벨은 의약품 용기나 포장에 모든 정보를 인쇄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전자적 수단을 통해 허가사항과 복약 정보를 제공하는 체계다. QR코드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면 정보 업데이트가 빨라지고 인쇄 비용과 자원 소모가 줄어드는 장점이 있어, 향후 의약품 라벨링의 디지털 인프라로 작동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에서는 e 라벨 적용 품목과 정보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혀 달라는 요구와 함께, 의료기관·약국 시스템과 연계된 표준 전자 포맷 마련 필요성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와 의료진이 모바일과 병원 전자의무기록에서 동일한 최신 정보를 조회할 수 있어야 디지털 라벨의 실효성이 커진다는 판단에서다.

 

용기·포장 표시사항 중 유효성분 규격 삭제 논의도 이뤄졌다. 유효성분 규격은 원료의 품질 기준을 의미하는데, 세부 규격을 포장에 직접 표기할 경우 허가 변경이나 규격 개정 때마다 표시 변경이 잦아지는 문제가 있다. 제약업계는 품질관리와 안전성은 허가 문서와 GMP 심사에서 충분히 검증되는 만큼, 환자와 의료진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투여량과 주의사항 중심으로 표시를 단순화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원료의약품 DMF 등록 제도 역시 쟁점이었다. DMF는 원료의약품 제조와 품질관리 정보를 당국에 사전 등록해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 제도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완제의약품 허가 때마다 반복 제출하던 자료를 줄일 수 있고, 당국은 원료 단계부터 품질을 추적 관리할 수 있어 국제 규제 수준에 부합하는 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DMF 등록 요건과 갱신 절차가 과도하게 복잡할 경우, 중소 원료업체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날 현장에서 허가·심사, 제조·품질관리기준 GMP 운영 전반에 걸친 제약업계 의견을 청취했다. 데이터 제출 형식 간소화, 심사 기간 예측 가능성 제고, GMP 실사 기준의 명확성 등 세부 논점이 함께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글로벌 규제 조화와 수출 경쟁력을 고려해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을 확보해 달라는 요청도 나왔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높은 품질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의약품이 생산·공급되기 위한 과학 기반 정책 마련에는 업계와 학계 전문가 등과의 지속적인 현장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제안된 현장의 목소리를 면밀히 검토해 향후 정책 수립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의약품 안전관리 정책 방향을 함께 고민하며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 가겠다고 덧붙였다. 제약업계로서는 정책 이음 플랫폼이 규제 방향을 사전에 공유받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상시 채널로 자리 잡을 경우, 디지털 라벨과 DMF 등 데이터 기반 규제 전환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행사에 참여한 참석자들은 제약산업 현장의 건의사항을 직접 전달하고 정책 개선을 향해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업계와 규제 당국이 현장 토론을 정례화할 경우, 향후 의약품 정보 제공 디지털화와 품질관리 제도 개편의 속도가 산업 구조 변화와 어떻게 조율될지가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논의가 실제 입법과 행정 지침 개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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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오유경#의약품전자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