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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료 교육 플랫폼 부상…서울아산, 중동 연계로 정밀의료 확산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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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수술과 이식 의료 기술이 중동 의료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이 지난 10년간 중동 중증환자 수만 명을 국내로 유치하고, 현지 의학자에게 고난도 술기를 체계적으로 전수하면서다. 간·췌장 로봇수술과 생체간이식, 통합형 소화기 전문병원 모델까지 전파되며, 한국 K의료가 중동 정밀의료 인프라 구축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병원 중심 의료 수출이 단순 진료를 넘어, 의료 시스템과 교육 플랫폼을 결합한 새로운 헬스케어 시장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최근 10년간 중동에서 온 중증환자 3만5000명을 치료하고, 중동 의학자 600명에게 선진 의료 기술을 전수했다고 20일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오만 등 걸프협력회의 국가 정부 및 대학과 연수 협약을 맺고, 간이식과 신장이식, 췌장암·간암 로봇수술, 태아 내시경 치료 등 고난도 중증 질환 분야를 중심으로 교육과 진료 협력을 병행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간담췌 외과 전문의가 서울아산병원에서 소형 이식편을 이용한 간이식, 진행성 췌장암에서의 혈관 절제술, 로봇 수술 등 고난도 수술 술기를 집중적으로 연수 중이다. 연수 의료진은 귀국 후 자국 내 생체간이식 확대와 로봇 수술 도입에 직접 나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연수 프로그램이 단일 병원 차원을 넘어 현지 치료 패턴을 바꾸는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아산병원은 2014년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오만 등과 의학자 연수 협약을 체결하며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했다. 2015년부터 올해 9월까지 사우디 478명, 오만 50명, 쿠웨이트 31명, 아랍에미리트 30명, 카타르 8명, 바레인 2명 등 약 600명의 중동 의학자가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연수를 받았다. 이들은 장기이식, 미세재건수술, 암 로봇수술, 태아 내시경 등 현지에서 접하기 어려운 고난도 수술 환경을 직접 경험했다.

 

기술적 측면에서 서울아산병원은 생체간이식, 간·췌장 종양 로봇수술, 복강경 내분비 수술 등 고난도 최소침습 수술 노하우를 체계적인 교육 커리큘럼으로 정리해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복강경 후복막 후부신절제술과 복강경 경액와 갑상선 절제술과 같이 고난도 내분비외과 수술은 최소 절개로 합병증과 회복 기간을 줄이는 술기다. 전통적인 개복 수술 대비 출혈과 입원 기간을 줄이고, 수술 후 합병증 발생률을 낮추는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정밀 수술 역량이 중동 의료진 교육에 핵심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해외 현장 기술 전수도 병행된다. 이승규 석좌교수는 2016년 카타르 최초의 성인 생체 간이식을 집도해 현지 의료진에게 이식술 전 과정을 교육했다. 내분비외과 의료진은 2023년 쿠웨이트에서 복강경 기반 고난도 수술을 직접 시연하며 술기 표준을 공유했다. 단순 강의가 아닌 현지 환자 수술을 함께 진행하는 방식이어서, 중동 의료진이 실제 사례 기반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 효과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환자 치료 측면에서는 중동 내에서 해결이 어려운 중증 질환이 집중적으로 한국으로 유입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중동 환자는 아랍에미리트 2만2445명, 사우디아라비아 9440명, 쿠웨이트 1551명, 카타르 889명, 오만 739명, 바레인 81명 등 3만5000여 명이다. 암과 심장질환, 장기이식 같이 고난도 술기가 필요한 영역이 주 진료 분야로, 이들 사례는 향후 중동 내 정밀의료 인프라 설계에도 참고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병원 단일 기관 차원의 협력을 넘어, 시스템 수출과 현지 병원 설립 단계로 확장하고 있다. 2023년 아랍에미리트 보건의료 정부기관인 에미리트 보건서비스와 업무 협약을 맺고, 중증환자 의뢰와 진료 협력을 강화했다. 이어 아랍에미리트에 걸프협력회의 국가 최초 통합형 소화기 전문병원인 UAE아산소화기병원을 착공했다. 2026년 개원을 목표로 하는 이 병원은 소화기암과 간이식 관리, 고도비만수술 같은 고난도 치료를 현지에서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모델은 단순 의료진 파견이 아니라 진료 프로토콜, 교육 프로그램, 질 관리 시스템을 패키지로 이전하는 방식이다. 중동 환자들이 타국으로 이동하지 않고도 고난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면, 의료 접근성과 삶의 질이 개선되는 동시에 현지 정부 입장에서는 의료비 역외 유출을 줄일 수 있는 효과도 기대된다.

 

카타르에서는 APEX 헬스가 운영하는 코리안 메디컬 센터와의 자문 계약을 통해 검진센터와 척추관절센터, 난임센터 등에 대한 의료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KMC의 진료 프로세스 설계와 품질 관리, 현지 환자 의뢰와 방문 진료를 지원해 의료 서비스 전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관여하고 있다. 이러한 자문형 협력은 중동 병원이 K의료 기준에 맞춘 진료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지속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글로벌 의료 경쟁 구도에서 보면, 미국과 유럽 상위권 병원들이 주도해 온 의료 관광과 교육 시장에 한국 병원이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양상이다. 서울아산병원은 뉴스위크가 발표한 2025 세계 최고 병원 평가에서 국내 병원 가운데 가장 높은 세계 25위를 기록했고, 2026 임상분야별 세계 최고 병원 평가에서 암, 소화기, 내분비, 신경, 비뇨기, 정형 등 6개 분야가 세계 10위 안에 들었다. 중동 정부와 환자 입장에서는 글로벌 톱 티어 병원의 진료와 교육을 보다 비용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정책과 제도 측면에서도 중동 각국은 자국 내 중증환자 치료 역량을 키우기 위해 해외 선진 병원과의 전략적 제휴를 확대하는 추세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 차원에서 정밀의료, 암센터, 장기이식 인프라 구축 계획을 추진 중으로, 한국 병원의 수술 기술과 교육 역량이 여기에 맞물리면서 협력이 심화되는 구조다. 국내에서는 의료 해외진출 지원 정책과 함께 의료 데이터 활용, 원격 자문 등 디지털 헬스케어와의 융합도 논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아산병원 사례가 향후 디지털 병리, 영상 AI 판독, 원격 협진 플랫폼 등 IT 기반 정밀의료 기술과 결합할 여지가 크다고 본다. 고난도 수술과 이식 역량을 기반으로, 환자 데이터 축적과 인공지능 진단 지원 시스템이 붙으면 K의료 모델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아우르는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승일 병원장은 현지에서 치료가 어려운 해외 중증환자를 치료하고 의료진 연수를 통해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 세계 의료 수준 향상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도 중동을 비롯한 각국에 의료 기술과 시스템을 전파해 글로벌 병원으로서 국제적 위상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서울아산병원의 중동 협력이 단일 기관 성과에 그칠지, 한국 의료 전체의 수출 모델로 확산될지 주시하고 있다.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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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중동의료#정밀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