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상 간암도 CT가 답했다…서울대병원, 면역항암 예후지표 제시
면역항암치료가 간세포암 치료의 표준 옵션으로 자리 잡는 가운데, 겉으로 증상이 전혀 없는 환자에서도 CT 컴퓨터단층촬영 상 나타나는 경미한 면역 관련 영상 변화가 생존율과 치료 반응을 가르는 핵심 지표로 부상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절제 불가능 간세포암 환자 198명을 분석한 결과, 환자가 불편을 느끼지 않더라도 폐 주변 미세 염증 음영, 대장벽 비후 등 영상에서만 보이는 변화가 있을 때 전체 생존기간과 무진행생존기간이 가장 길게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면역항암 시대 간암 치료 전략 수립과 임상 모니터링 방식이 달라지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유수종 교수와 박제연 진료교수, 영상의학과 이동호 교수 연구팀은 2020년 10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 병합요법 AteBeva를 받은 절제 불가능 간세포암 환자 198명을 대상으로, 치료 과정에서 발생한 면역 관련 이상반응과 환자 예후의 상관관계를 후향적으로 분석했다고 25일 밝혔다. AteBeva는 면역관문억제제와 혈관신생억제제를 함께 투여해 종양 주변 미세환경을 바꾸고 면역세포 공격력을 높이는 대표적인 간세포암 1차 치료 병합요법이다.

간세포암은 B형·C형 간염과 간경변 등 만성 간질환을 배경으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원발성 간암으로, 초기 자각 증상이 거의 없어 진행된 단계에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면역항암제가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치료 옵션으로 자리 잡았지만, 치료 중 나타나는 면역 관련 이상반응이 예후에 미치는 영향, 특히 환자는 무증상인데 영상검사에서만 관찰되는 미세 변화의 임상적 의미는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면역항암치료 과정에서 관찰된 이상반응 양상에 따라 환자를 세 그룹으로 분류했다. 이상반응이 전혀 없는 무이상반응군 130명, 임상 증상이나 혈액검사 이상을 동반한 증상성 이상반응군 증상군 56명, 그리고 증상은 없지만 CT에서 폐 주변부 미세 염증성 음영, 일시적 대장벽 비후, 장간막 염증, 반응성 림프절 종대 등 면역반응으로 해석되는 변화만 관찰된 무증상 영상 이상반응군 무증상 영상군 12명이다. 기존에는 이런 영상 변화가 단순한 비특이적 이상 소견이나 일시적 부작용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세 그룹의 전체 생존기간 OS, 무진행생존기간 PFS, 객관적 반응률 ORR, 질병조절률 DCR을 비교 분석한 결과, 무증상 영상군에서 가장 뚜렷한 예후 개선이 확인됐다. 6개월, 12개월, 18개월, 24개월 시점 전체 생존율을 비교하면 무증상 영상군은 각각 100.0, 82.5, 82.5, 82.5로 가장 높았다. 증상군은 89.1, 64.1, 41.7, 40.5였고, 무이상반응군은 72.3, 48.3, 31.3, 19.4로 가장 낮았다. 치료 중 증상은 없지만 영상에서 면역 반응 신호를 보이는 환자일수록 장기 생존 경향이 뚜렷해진 셈이다.
연구팀은 교란변수를 통제하기 위해 전체 표본을 대상으로 역확률가중법 IPTW을 적용한 시간 종속 Cox 회귀 분석도 수행했다. 분석 결과 무증상 영상군은 무이상반응군 대비 사망 위험이 약 81 퍼센트 낮았고, 증상군 역시 약 58 퍼센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 군 모두 사망 위험 감소 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해, 면역 관련 이상반응 자체가 예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영상에서만 관찰되는 변화가 예후 개선과 연관된다는 점은 CT 기반 모니터링의 임상적 가치를 크게 높이는 결과로 해석된다.
질병 진행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는 무진행생존기간 PFS도 무증상 영상군과 증상군에서 더 길게 유지됐다. 연구팀은 다변량 분석을 통해 무증상 영상군 여부가 PFS를 결정하는 독립 예후 인자로 작용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즉, 환자가 자각 증상을 호소하지 않더라도 정기 CT에서 나타나는 작은 면역 반응 신호만으로 향후 질병 진행 속도와 치료 경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다.
치료 반응률에서도 세 군 간 차이는 분명했다. 무증상 영상군의 객관적 반응률 ORR은 41.7, 질병조절률 DCR은 100으로 가장 높았다. 증상군 ORR과 DCR은 각각 26.8, 92.9였으며 무이상반응군은 13.8, 60.0로 가장 낮았다. ORR은 종양 크기가 의미 있게 감소한 환자의 비율, DCR은 종양이 줄어들었거나 최소한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억제된 환자의 비율을 뜻한다. 이번 결과는 CT에서 보이는 경미한 면역 관련 영상 변화가 장기 생존뿐 아니라 초기 치료 반응이 좋은 환자를 조기에 구분하는 생체표지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이번 연구는 면역항암제의 이중적 모습을 정량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면역 관련 이상반응은 피부 발진이나 장염, 폐렴처럼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으로 인식돼 왔지만, 한편으로는 면역계가 강하게 활성화돼 종양을 공격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의 결과는 중증 독성으로 진행하지 않는 경미한 면역 반응일 때 오히려 예후가 좋아지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데이터로 제시했다. 다만 연구팀은 장기 입원이나 치료 중단을 유발하는 중증 면역 관련 이상반응은 예후 악화와 연결될 수 있어 별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분석은 단일 기관 후향 연구로, 표본 수가 제한적인 무증상 영상군 12명을 포함해 집단 규모에 차이가 있다는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AteBeva처럼 글로벌 기준 1차 요법으로 자리 잡은 면역항암 병합치료에서, 증상 유무와 무관하게 영상 소견을 체계적으로 분류해 예후와 연결했다는 점에서 향후 다기관 검증 연구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개념의 면역 관련 영상지표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어, 국제적 표준 분류체계와 연계될 여지도 열려 있다.
유수종 교수는 환자가 불편을 호소하지 않는다고 해서 영상에서 발견되는 미세 변화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가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않더라도 영상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변화에는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을 수 있다며 정기적인 영상검사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면 환자의 상태를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고 치료 전략을 보다 안전하게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간암 치료 현장에서는 정밀 영상 판독과 면역 관련 소견의 체계적 기록이 향후 맞춤형 면역항암 전략 수립의 핵심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간세포암 분야에서는 유전체 분석과 액체생검, 인공지능 기반 영상 판독 등 정밀 의료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는 가운데, 이번 연구처럼 정기 CT에서 얻는 구조적 정보만으로도 예후를 가늠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가 제시되면서 의료현장의 데이터 활용 범위가 더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앞으로 면역항암제 개발과 임상 설계 단계에서 이러한 영상 기반 예후지표를 반영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