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수속구리 2배속 회수…KIST, 재배캡슐로 자원순환 가속
산업폐수 속에 포함된 구리 등을 효율적으로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자원 안보와 환경규제 강화에 맞물려 빨라지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구리 이온을 두 배 이상 빠르게 모으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전할 수 있는 흡착 캡슐 기술을 제시해 주목된다. 기존 공정은 설비가 크고 비용이 높아 대규모 현장 적용에 제약이 있었던 만큼, 업계에서는 이번 성과를 폐수 자원화 경쟁의 분기점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국연구재단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 최재우 박사 연구팀이 산업폐수에서 구리를 효과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새로운 흡착제를 개발했다고 20일 밝혔다. 연구팀이 개발한 소재는 쌀알 크기의 캡슐 구조를 갖고 있어 산업 현장 배관이나 처리조에 투입해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용화 적용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핵심은 구리 이온이 2차원 표면에 붙는 수준을 넘어 캡슐 내부에서 3차원 결정으로 자라나도록 유도한 설계다. 연구팀은 구리 이온이 표면에서 핵을 형성한 뒤 입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기초 연구를 통해 규명하고, 이 성장 메커니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내부 구조를 재구성했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기존 흡착제가 표면에만 금속을 붙여 한계 용량이 빠르게 포화되던 문제를 정면으로 공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구체적으로 캡슐 내부에는 방사형 형태의 3차원 구조가 다층적으로 배치됐다. 방사형 구조는 중심에서 바깥 방향으로 뻗은 나뭇가지 같은 골조를 말하며, 이 골조 사이 공간이 구리 이온이 머무르며 결정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일종의 미세 반응실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이러한 설계 덕분에 구리 이온이 캡슐 표면에 빠르게 흡착된 뒤 내부로 이동해 결정으로 자라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성능 수치도 눈에 띈다. 검증 시험에서 재배 캡슐은 기존 흡착 소재 대비 약 2배 수준으로 향상된 1602.3밀리그램 매 그램 흡착용량을 기록했다. 같은 양의 흡착제로 더 많은 구리를 회수할 수 있어 처리 설비 규모를 줄이거나 운전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의미다. 고농도 폐수에서는 회수 속도를 끌어올리는 효과도 기대된다.
내구성 역시 현장 활용을 염두에 두고 검증됐다. 연구팀은 동일한 캡슐을 7회 반복 사용한 뒤에도 성능 저하가 6.4퍼센트 이내에 머무르는 것을 확인했다. 또 50일 동안 연속 운전하는 장기 실험에서도 구조적 붕괴나 기능성 저하가 관찰되지 않았다. 금속 흡착제 상용화에서 걸림돌이었던 잦은 교체와 소재 폐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구리는 전기전도성이 높고 내식성이 뛰어나 전선, 배터리, 전자기기, 재생에너지 설비 등 전방 산업 전반에 폭넓게 사용된다. 전기차,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와 함께 글로벌 구리 수요는 크게 늘어나는 반면, 신규 광산 개발은 환경 갈등과 규제에 막혀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저농도 폐수에 포함된 구리를 고효율로 회수해 재활용하는 기술은 자원 확보와 환경 부하 저감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수단으로 각국에서 주목받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온교환 수지, 막 분리, 전기화학 회수 등 다양한 기술이 개발돼 있지만, 장비가 복잡하거나 에너지 비용이 높고, 특정 pH 등 까다로운 운전 조건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KIST 연구팀의 재배 캡슐은 구조적으로 단순한 흡착 기반 기술에 3차원 결정 성장 개념을 접목한 만큼, 기존 설비에 상대적으로 쉽게 도입할 수 있는 점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특히 고가의 전해 회수 설비를 갖추기 어려운 중소형 도금 공장, 전자부품 제조업체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옵션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구팀은 구리 회수에 그치지 않고, 회수된 금속의 활용도까지 고려해 기술을 설계했다. 캡슐 내부에서 성장한 구리 결정은 순도와 입자 형상이 제어돼 촉매, 전극 등 고부가가치 소재로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는 단순 오염 제거 공정을 넘어, 폐수를 새로운 자원 공급원으로 전환하는 순환 경제 모델의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책 측면에서 보면, 국내외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금속을 포함한 산업폐수 처리 기준은 갈수록 엄격해지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방류수 중 금속 농도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폐수 처리 과정에서의 금속 회수 효율은 기업 입장에서 비용과 규제 대응 모두에 직결된다. 회수된 금속을 다시 공정에 투입할 수 있다면 원재료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탄소 배출까지 줄일 수 있어, 각국이 강조하는 녹색 산업 전환 목표와도 맞물린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재료화학 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컴퍼지트 앤 하이브리드 머티리얼즈 10월호에 게재됐다. 학술지에 정식으로 보고됐다는 점에서 소재 구조 설계와 성능 데이터에 대한 국제 검증도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다. 다만 실제 상용화까지는 산업별 폐수 특성에 따른 맞춤 설계, 대량 생산 공정 개발, 장기 운전 시 스케일업 검증 등 추가 과제가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재우 박사는 캡슐 내부에서 성장한 순도 높은 구리 결정은 촉매와 전극 같은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재활용될 수 있어, 오염 제거를 넘어 폐수를 자원으로 전환하는 친환경 순환 시스템 구축에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실제 공정에 안착해 자원 확보와 환경 규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