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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Not Eat" 실리카겔…약사, 약병 속 동거 권고에 주목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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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병 속에 함께 들어 있는 작은 봉지 실리카겔이 처방약 보관의 핵심 장치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습도 관리가 약효 유지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그간 단순 포장재로 취급되던 건조제의 역할이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미국 약사가 SNS를 통해 실리카겔 봉지를 버리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조언한 뒤, 약의 안정성 관리와 비용 절감 효과를 둘러싼 논의도 확산되는 모습이다.

 

11일 미국 생활 정보 매체 더쿨다운은 의약품 정보를 다루는 SNS 계정을 운영하는 약사 킴벌리 화이트가 최근 공개한 영상을 소개했다. 영상에서 화이트는 처방약 병 안에 들어 있는 실리카겔 봉지에 적힌 섭취 금지 문구를 가리키며, 이 작은 봉지가 약효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통 과정과 가정 보관 단계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습기를 흡수해 약을 건조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실리카겔의 핵심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실리카겔은 이산화규소를 주성분으로 한 다공성 흡습제로,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많아 주변 공기 중의 수분을 물리적으로 끌어당겨 붙잡는다. 이 덕분에 약병 내부 상대습도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춰 정제나 캡슐이 눅눅해지는 현상을 막는다. 수분에 민감한 항생제, 일부 심혈관계 약물, 수용성 비타민 제제 등은 습기에 노출될 경우 분해가 빨라져 유효 성분 농도가 떨어지거나 물성이 변할 수 있는데, 실리카겔이 이 같은 화학적·물리적 변화를 지연시키는 장치로 작동하는 셈이다.

 

화이트는 영상에서 습기에 장기간 노출된 약은 외관 변화가 없어도 효능이 저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특히 욕실이나 주방처럼 온도와 습도 변화가 큰 환경에서 보관할 경우 약병 내부까지 수분이 스며들 수 있어, 제조 단계에서 넣어둔 실리카겔 봉지가 실질적인 일차 방어선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약 성분이 분해되면 효과 감소뿐 아니라 불순물 생성 위험도 커지기 때문에, 약학 분야에서는 적정 온도·습도 관리가 품질 유지의 기본 조건으로 여겨진다.

 

다만 실리카겔 봉지는 섭취 금지 대상이라는 점도 다시 한 번 강조됐다. 더쿨다운에 따르면 화이트는 경고 문구를 무시하고 실리카겔을 삼키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당부했으며, 특히 어린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할 것을 권고했다. 일반적인 실리카겔은 체내 흡수되지 않는 비활성 물질로 알려져 있지만, 삼킬 경우 질식이나 소화기계 자극을 유발할 수 있고, 다른 흡착제와 혼동해 다량 섭취하는 사고로 번질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에서는 독성 자체보다는 포장 형태와 오섭취 가능성을 위험 요인으로 본다.

 

약과 실리카겔을 함께 보관하는 것이 경제적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더쿨다운은 건조제가 약의 보존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효능 저하로 인한 재처방이나 약 교체 요구가 줄어들 수 있다고 전했다. 약병 안의 미세 환경만 잘 관리해도 환자가 남은 약을 끝까지 쓸 수 있게 돼, 개인과 보험 시스템이 부담하는 비용을 동시에 낮추는 효과가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미국 의약품 정보 사이트 굿알엑스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미국 내 처방약 비용은 37퍼센트 상승했다. 2024년 기준 미국인들이 처방약 구매를 위해 본인 부담으로 지출한 금액은 610억 달러, 한화 약 90조 665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첨단 제제 기술과 안정화 코팅, 고가 포장재 도입이 품질 확보 수단이지만, 실제 소비자 관점에서는 약병 속 실리카겔 유지처럼 비용 부담이 적은 관리 요소가 체감 효용을 좌우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

 

국제 제약 업계에서는 이미 제형 특성에 맞춰 다양한 형태의 흡습제를 활용하고 있다. 정제 사이에 끼워 넣는 패드형, 병마개 내부에 삽입하는 캡형, 병벽에 부착하는 스티커형 등 구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습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지시제를 실리카겔과 함께 넣어, 사용자가 보관 상태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제품도 등장했다. 미국과 유럽 약전 기준은 각 제제별 허용 수분 함량 범위를 제시하고 있어, 제약사는 안정성 시험을 통해 최적의 흡습제 용량과 배치를 설계하는 추세다.

 

다만 소비자 인식 측면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뚜렷하다. 포장재나 불필요한 부속품으로 오해해 약병을 개봉하자마자 실리카겔부터 제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재활용을 위해 내용물을 비우는 과정에서 봉지를 꺼내 별도 폐기하는 습관도 품질 저하 요인으로 지적된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실리카겔을 생활용품 건조에 재활용하는 팁이 공유되지만, 전문가들은 의약품 포장에 쓰인 건조제를 다른 용도로 돌릴 경우 원래 의도된 약 안정성 기능이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내외 규제 기관은 포장재 설계와 표시 기준을 통해 일정 부분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과 유럽 의약품청은 경구용 제제의 경우 포장에 사용된 건조제가 섭취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크기와 문구, 배치를 설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실리카겔과 같은 흡습제에 섭취 금지 문구와 주의 사항을 명확히 표기하도록 관리하고 있으며, 제조사가 독성 물질이 아닌 소재를 우선 채택하도록 유도하는 흐름이다.

 

전문가들은 약의 효능과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실리카겔 봉지를 약병 안에 그대로 둔 채 보관하되, 어린이와 반려동물의 오섭취 위험을 줄이기 위한 안내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약학계에서는 약국과 병원 차원에서 보관법을 설명하는 교육이 병행될 경우, 불필요한 폐기와 재처방을 줄여 의료비 부담 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작은 봉지 하나가 약효, 안전, 비용 사이 균형을 지탱하는 미세한 요소가 됐다는 점에 주목하며, 소비자 교육과 포장 기술 개선 속도가 그 효과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한다. 산업계는 이번 논의가 일상적 의약품 보관 관행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될지 주시하고 있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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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벌리화이트#실리카겔#더쿨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