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N11로 CNS 전이 막는다…보로노이, 1상 데이터로 EGFR 시장 정조준
차세대 EGFR 표적 폐암치료제가 중추신경계 전이 억제와 약물 전달 효율을 앞세워 난치성 비소세포폐암 공략에 나섰다. 기존 3세대 표적치료제의 한계로 지적돼온 뇌전이 문제와 초기 치료 선택지 부족을 동시에 겨냥한 전략으로, 업계는 글로벌 EGFR 폐암 1차 치료제 주도권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에 주목하고 있다.
바이오기업 보로노이는 5일부터 7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린 ESMO 아시아 총회 2025에서 자체 개발 중인 차세대 EGFR 폐암 표적치료제 VRN11의 임상 1상 결과를 공개했다고 8일 밝혔다. VRN11은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차단해 종양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소분자 표적항암제로, 타그리소 이후 세대 EGFR 저해제로 포지셔닝된 파이프라인이다.

임상 1상 구두 발표를 맡은 안명주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VRN11 320밀리그램 투여 기준으로 “기존 3세대 EGFR 폐암 표적치료제인 타그리소 대비 4배 높은 타겟 인게이지먼트를 확인했다”며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에서 1차 치료 옵션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충분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타겟 인게이지먼트는 약물이 표적 단백질과 실제로 결합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지표로, 같은 용량에서 수치가 높을수록 항종양 효과와 내성 발현 지연에 유리한 것으로 해석된다.
보로노이는 이번 1상에서 안전성과 약동학, 초기 효능 데이터를 토대로 권장용량을 설정했고, 다음 단계로 치료 경험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후속 임상에 진입할 계획이다. 업계는 향후 2상과 3상에서 VRN11이 초기 치료에서의 객관적 반응률과 진행 무진행 생존기간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파트너링 및 상용화 전략이 결정될 것으로 본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주목된 부분은 중추신경계 전이 억제 효과다. 발표된 임상 1상 데이터에 따르면 VRN11 투약군 중 160밀리그램 이상 용량에서 CNS 전이 진행 사례가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에서 기존 표적치료제 사용 중에도 뇌전이가 빈번하게 발생해 온 점을 고려하면, 고용량 구간에서의 무전이 결과는 뇌 보호 능력 측면에서 의미 있는 신호로 해석된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CNS 전이는 뇌와 척수를 포함한 중추신경계로 암이 번지는 현상으로, 증상 악화와 예후 악화의 주요 원인이다. EGFR 표적치료제의 경우 혈뇌장벽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과하는지가 임상 효능의 관건으로 꼽혀 왔다. 보로노이는 VRN11이 구조 설계 단계에서부터 뇌 투과성을 강화한 설계를 적용해 기존 약물의 한계를 보완했다고 소개했다.
타그리소 글로벌 승인 과정에서 주요 임상 연구자로 참여한 국립대만대학교 종양학 James Chih-Hsin Yang 교수도 VRN11의 약물 전달 특성에 주목했다. Yang 교수는 “VRN11은 비임상 원숭이 모델에서 뇌 내 약물 농도가 혈중 농도 대비 1.7배에서 2.6배 수준으로 측정됐다”며 “임상 1상에서도 혈중 농도 대비 약 2배 수준의 CNS 투과율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혈중보다 뇌 조직에서 약물 농도가 더 높게 유지된다는 점은 뇌전이 병변에 대한 직접 타깃 효과를 기대하게 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Yang 교수는 이어 “세포 실험, 동물 모델, 임상 초기 단계까지 CNS 투과성과 표적 결합에 대한 데이터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며 “이 같은 정합성 높은 데이터는 VRN11의 향후 임상 개발 전략과 적응증 확장 방향을 설정하는 데 강력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VRN11이 향후 뇌전이 고위험 EGFR 변이 환자군이나 이미 CNS 전이가 발생한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별도 코호트 연구로 확장될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EGFR 표적치료제 시장은 타그리소가 3세대 약물로 사실상 글로벌 표준 치료로 자리잡은 가운데, 후발 주자들이 CNS 효능, 내성 돌연변이 극복, 안전성 개선 등을 무기로 차세대 시장을 노리는 구도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이미 복수의 신약 후보가 2상과 3상 단계에 진입해 있으며, CNS 전이 억제와 전이 병변 수축 데이터를 앞세운 마케팅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으로 전해진다.
국내에서는 VRN11처럼 CNS 투과율을 전면에 내세운 EGFR 표적치료제가 드문 만큼, 향후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 개발이나 라이선스 아웃 협상에서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실제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식약처와 FDA 등 규제 당국이 요구하는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을 통해 생존 이득과 안전성 우위를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VRN11이 초기 1상에서 CNS 전이 억제 신호와 높은 타겟 인게이지먼트라는 두 가지 데이터를 동시에 확보한 만큼, 후속 임상 설계 단계에서 뇌전이 위험이 높은 환자층을 선별하는 정밀 전략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VRN11이 향후 EGFR 폐암 1차 치료 시장에 실제로 안착하며 타그리소 중심의 구도를 흔들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