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 상징 숲이 흉물로 남아"...독립기념관 밀레니엄숲 예산난에 방치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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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부족과 행정 관심 이탈이 맞물리며 통일을 상징하던 독립기념관 내 밀레니엄숲이 방치 상태에 놓였다. 과거 남북통일과 민족 화합의 염원을 담아 조성된 공간이 지금은 흉물로 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과 천안시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독립기념관 부지 5.5헥타르에 한반도 모형을 형상화한 밀레니엄숲을 조성했다. 민족의 화합과 통일, 안정과 번영을 상징하는 숲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추진된 사업이었다.

밀레니엄숲은 독립기념관 내 단풍나무길 끝자락에 위치한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 위쪽에 자리 잡았다. 2000년 4월 5일 제55회 식목일 기념식수 행사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휘호 여사를 포함해 300여명이 참석해 조성 취지를 공유했다.

 

당시 정부와 독립기념관은 함경도와 경상도를 포함한 전국 팔도를 상징하는 수목 45종 2만3천696그루와 우리 꽃 32종 1만4천200본을 식재했다. 또 숲 내부 백두대간 구간에는 420미터 길이의 철도 레일을 놓고 통일 열차를 전시해 남북을 잇는 상징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조성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밀레니엄숲은 점차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독립기념관 안내 리플릿에 관련 내용이 수록돼 있으나, 현장에는 숲으로 향하는 별도 안내 표지판이 거의 없어 관람객이 찾아가기 쉽지 않은 상태다.

 

숲의 핵심 상징물인 통일 열차는 관리 부실이 노출된 대표 사례로 꼽힌다. 기관차 1량과 객차 2량으로 구성된 이 열차는 심한 부식으로 외부 도색이 대부분 벗겨졌고, 차체 곳곳에서 변색과 훼손이 확인됐다. 객차 일부 유리창은 깨져 있으며, 내부에는 두껍게 먼지가 쌓여 오랜 기간 방치돼 온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관람객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독립기념관 측에는 주로 깨진 유리창과 훼손된 외관에 대한 민원이 접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 상징 공간이 오히려 관람객에게 불쾌감을 주는 시설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통화에서 "처음 숲이 조성되고 몇 년간은 관리가 이뤄졌는데 어느 때부터 관련 예산이 줄면서 현재의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유지관리 예산은 관람객 주 동선을 우선으로 하는 실정이며 철거나 폐기처분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혀 재정 압박의 현실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열차 관리에 필요한 예산은 3천만원가량"이라며 "예산만 지원되면 제대로 보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상징물 자체의 복원 의지는 있으나 독립기념관 자체 재원만으로는 손질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김대중 정부 시기 조성된 통일 상징 공간이 관리 공백으로 훼손되면서, 국가 차원의 기념시설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역할 재정립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가 독립기념관 예산 구조와 통일 관련 상징 시설 관리 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올 전망이다.

 

독립기념관은 향후 재정 여건과 관계 기관 협의를 거쳐 통일 열차 보수와 밀레니엄숲 안내 체계 정비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 역시 내년도 예산 심사 과정에서 국가 기념시설 관리 예산을 둘러싼 논의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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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밀레니엄숲#통일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