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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한옥과 청명한 숲길”…서산에서 다시 만나는 계절의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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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한옥과 청명한 숲길”…서산에서 다시 만나는 계절의 감성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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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이제는 볼거리보다 머물고 싶은 곳, 사진보다 감정이 앞선다. 흐린 하늘 아래, 충남 서산에서 마주한 고요는 소란한 일상과 조금은 다르게 가슴 속에 오래 남는다.

 

요즘은 날씨에 맞춰 여행지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흐릿한 공기와 어울리는 고택이나 산사를 찾아 나서는 것. 서산 운산면의 유기방가옥에 들어서면 전통 한옥의 담담한 아름다움이 먼저 눈에 든다. 봄에는 수선화의 노란 물결로, 초가을에는 온화한 햇살과 가벼운 바람으로 계절이 바뀌는 순간이 자연스럽게 공간을 채운다. 넓게 펼쳐진 정원과 정돈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속도를 조절하는 심장이 느껴진다. 최근 SNS에서도 “서산 고택 산책이 주는 조용한 위로”라는 감상글이 종종 눈에 띈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간월암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간월암

숫자로도 그것을 읽을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문화재 고택·고가 방문객 수는 꾸준히 증가 추세다. 특히 30~40대는 바쁜 하루에서 잠시 쉬어갈 묵직한 여유를, 20대는 여행写真보다 ‘좋은 기분이 담긴 공간’에 더 끌린다고 전했다. 그만큼 '쉼'이 어떤 장소의 본질이 됐다.

 

오래된 산사, 개심사에서 만난 한 여행객은 “여기서는 나 스스로에게 조금 더 집중하게 된다”고 표현했다. 개심사는 651년 창건 이후 오랜 세월, 심검의 뜻이 깃든 사찰로 남아 있다. 명부전, 심검당 등 유서 깊은 전각들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였기에, 그저 바람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위안이 스며든다. 한 사찰 관계자는 “조용한 공간에서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지친 정서가 회복된다”고 조언한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요즘 여행은 액티비티보다 조용한 산책이 좋아졌다”, “사진보다 중요한 건, 한참 멍하니 고택 마루에 앉아 시간 보내는 일”이라는 글들이 많다. 직접 방문한 이들은 “자연과 공간이 하루를 길게 해준다”며 삶의 리듬을 다시 맞추는 특별함을 전한다.

 

서산 버드랜드에서 느끼는 감성도 남다르다. 볕이 들고, 바람이 불고, 천수만의 철새가 하늘을 그린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을 되새기게 된다. 철새 탐조 프로그램을 체험하며 어린이와 어른 모두 자연의 생동감을 가까이서 배우는 풍경도 펼쳐진다.

 

작고 느린 걸음, 그런 여행이 만들어내는 울림은 깊다. 오늘 서산의 흐린 하늘 아래,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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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유기방가옥#개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