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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보 고속도로…서울아산, 의료데이터 마이데이터 전환 가속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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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마이데이터가 병원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구체적인 서비스 형태로 확대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이 국가 단위 의료데이터 연계 사업의 거점 역할을 맡아, 환자가 스스로 진료기록을 관리하고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를 본격 가동했다. 업계에서는 의료데이터를 둘러싼 플랫폼 경쟁이 시작되는 신호로 보면서도, 보안과 표준 정착이 사업 성패를 가를 변수로 꼽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11일 병원 동관 1층에 건강정보 고속도로 사업 홍보 부스를 마련하고 서비스 개시를 알렸다고 12일 밝혔다. 건강정보 고속도로는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이 추진하는 국가 차원의 의료 마이데이터 인프라로, 여러 의료기관에 분산돼 있는 환자 진료기록을 본인이 하나의 채널에서 열람하고 필요에 따라 제3자에게 전송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사업에는 2023년 9월부터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전국 의료기관이 단계적으로 합류해 왔으며, 현재 47개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해 총 1269개 기관이 의료데이터 제공기관으로 참여 중이다. 참여 의료기관이 늘어날수록 환자는 진료를 받는 병원과 관계없이 자신의 의료 이력과 검사 결과를 통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단순 참여를 넘어 2024년 7월부터 건강정보 고속도로의 거점 저장소이자 주관 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거점 저장소는 각 의료기관에서 생성된 진료데이터를 국제전송기술표준인 FHIR에 맞춰 수집하고, 이를 안전하게 전달하는 핵심 인프라다. 서울아산병원은 이에 맞춰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을 구축해 데이터 포맷 통합, 암호화 저장, 전송권한 검증 등 기술적 요건을 정비해 왔다.

 

FHIR는 의료정보 교류를 위한 국제 표준으로, 진단명, 검사 결과, 처방 정보 등을 공통 구조로 정의해 서로 다른 병원 정보시스템 간 호환성을 높여준다. 국내 대형병원이 국가 사업에서 FHIR 기반 클라우드 인프라를 주도적으로 구축한 사례로, 향후 병원 정보시스템의 표준화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지점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번 인프라는 환자 앱과 병원 전산 시스템을 매개하는 중간 계층 역할을 하면서, 의료데이터가 병원 내부에만 머무르던 기존 구조의 한계를 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환자는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이 제공하는 나의 건강기록 앱을 통해 서비스에 접근한다. 앱을 내려받은 뒤 본인 인증을 거치고, 데이터 제공에 동의하면 각 의료기관에 분산돼 있던 자신의 정보를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다. 조회 가능한 정보에는 환자 기본 정보와 의료기관 정보뿐 아니라 내원 이력과 진단 내역, 약물 처방 내역, 진단검사와 영상, 병리 검사결과, 수술 내역 등이 포함된다. 환자는 이 정보를 스마트폰에 저장하거나, 재진료나 타 병원 방문 시 의료진에게 직접 제시해 중복 검사와 불필요한 처방을 줄일 수 있다.

 

건강정보 고속도로 구조를 활용하면 의료기관 측도 진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환자 동의를 전제로 다른 병원에서 생성된 진료기록을 참고해 과거 진단과 치료 반응을 파악하고, 겹치는 검사나 영상 촬영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병원과 지방 병원 간 의뢰 진료, 만성질환 장기 추적 관찰, 암 환자의 다기관 치료 등에서 데이터 연계의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국외에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자의무기록 상호운용성 확보 경쟁이 이미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은 HITECH 법 이후 병원 간 데이터 교류를 촉진하는 헬스 정보 교환망을 확장해 왔고, 최근에는 환자가 선택한 앱으로 데이터를 내려받는 환경이 자리잡는 추세다. 유럽연합도 국가 간 의료데이터 교환을 목표로 공통 프레임워크를 추진 중이다. 한국의 건강정보 고속도로 사업은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전국 단위 병원 네트워크를 하나의 마이데이터 인프라로 묶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의료데이터 특성상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은 가장 큰 과제로 남아 있다. 데이터 전송은 원칙적으로 환자의 자발적 동의와 본인 인증을 전제로 이뤄지지만, 어느 수준까지 데이터를 세분화해 공유할지, 민감 정보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논의는 진행 중이다. 또 앱을 통한 접근이 기본 전제가 되면서 디지털 취약계층에게 동등한 서비스가 제공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검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서울아산병원 디지털정보혁신본부장 김영학 교수는 환자가 의료데이터의 주체로 전환되는 점에 주목한다. 김 교수는 환자도 본인 의료데이터의 주체가 돼 건강 증진과 질병 예방을 위해 의료데이터를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의료진 또한 건강정보 고속도로를 통해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받은 진료기록을 참조하고 환자 상태에 맞는 치료를 제공할 수 있어 의료의 질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건강정보 고속도로 사업을 계기로 보험, 제약, 디지털 치료제 등 인접 산업에서의 데이터 활용 모델이 잇따를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구체적인 2차 활용 범위와 규제 체계가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의료 마이데이터가 단순 열람 서비스에 머물지, 새로운 헬스케어 플랫폼의 토대가 될지가 갈릴 전망이다. 산업계는 이번 인프라가 실제 임상 현장과 환자 삶에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제도와 기술이 어떻게 균형을 맞출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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