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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수준 미세먼지”…국내 연구진, 전립선암 위험 인자 규명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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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수준으로 분류되는 미세먼지 농도에서도 전립선암 위험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아질 수 있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내 대기질 예보 체계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수준의 PM10 농도가 남성 비뇨기계 암 발생과 연관된 위험 인자로 제시된 것이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이번 연구가 대기오염과 암 발병 사이의 인과 고리를 추가로 보강했다는 점에서 향후 환경 기준 조정과 국민 건강관리 전략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구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 박용현 교수, 단국대학교 박지환 교수, 노미정 교수를 중심으로 한 공동 연구팀이 수행했다.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2만430명 남성을 추적 관찰했다. 2010년부터 3년 동안 거주 지역의 미세먼지 노출 수준을 산정하고, 2015년부터 최대 6년간 전립선암 발생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4071명, 약 19.9퍼센트가 전립선암을 진단받았고, 나머지 1만6359명은 비전립선암군으로 분류됐다.

미세먼지 노출 평가는 에어코리아가 제공하는 연간 평균 대기질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국내 미세먼지 예보 등급은 좋음 0에서 30마이크로그램 퍼 세제곱미터, 보통 31에서 80, 나쁨 80에서 150, 매우나쁨 151 이상 네 단계로 구분된다. 연구에서 분석된 평균 PM10 농도는 약 47마이크로그램 퍼 세제곱미터로, 제도상 ‘보통’ 범위에 해당하는 중간 수준이다.

 

연구팀은 이 평균값을 기준선으로 삼아 노출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으로 나눠 전립선암 발병 위험을 비교했다. 분석 결과 중간 수준의 PM10 농도에 많이 노출된 그룹이 적게 노출된 그룹에 비해 전립선암이 발생할 확률이 의미 있게 높게 나타났다. 기존에 초미세먼지 중심으로 축적돼 온 건강영향 연구에 비해, 규제상 보통수준으로 관리되는 PM10 농도 자체가 독립된 위험 인자 역할을 한다는 점을 통계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특히 PM2.5 농도가 세계보건기구 권고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낮은 수준인 경우에도, PM10이 중간 정도 수준에 머무르면 전립선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경향이 관찰됐다. 초미세먼지는 지름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미세입자를 의미하는데, 입자가 작아 호흡기로 깊숙이 침투해 건강에 더 유해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연구 데이터에서 PM2.5 농도가 25마이크로그램 퍼 세제곱미터 이하인 조건에서조차 PM10 중간 노출이 전립선암 발병과 연관된 패턴이 재확인되면서, 일반 미세먼지 자체의 만성 노출 영향이 다시 부각된 셈이다.

 

생활 현장에서는 중간 수준 미세먼지 경보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미정 교수는 “일반적으로 미세먼지 중간 수준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며 “국가 기준상 보통수준이라도 전립선암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평소 마스크 착용과 실내 공기 정화, 규칙적인 환기 등 일상적 관리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는 국내 대기질 기준의 엄격성 문제를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환경 기준은 연평균 50마이크로그램 퍼 세제곱미터, 24시간 평균 100마이크로그램이다. 세계보건기구 권고 기준 연평균 15, 하루평균 45에 비해 2배에서 3배 가까이 느슨한 편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박지환 교수는 “한국 미세먼지 기준이 WHO에 비해 덜 엄격한 상황”이라며 “전립선암을 포함한 장기적 암 부담과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려면, 환경 기준 상향과 더불어 대기질 관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동시에 요구된다”고 말했다.

 

전립선암은 국내 남성에게서 네 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이다. 50세 이상에서 주로 발병하며,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병이 진행되면 소변 줄기 약화, 빈뇨, 야간뇨 등 배뇨 장애와 함께 소변이나 정액에 피가 섞여 나오는 혈뇨가 나타날 수 있다.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5년 생존율이 99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예후가 좋지만, 척추나 골반 등 주변 뼈와 림프절로 전이되면 치료가 어렵다. 대한비뇨학회는 증상이 없어도 50세 이상 남성, 가족력이 있는 경우 40에서 45세 이후 매년 전립선암 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해왔다.

 

그동안 전립선암의 대표적 위험 요인으로는 유전적 소인, 비만, 흡연, 남성호르몬 이상, 서구화된 식습관 등이 꼽혀왔다. 이번 연구는 여기에 중간 수준 미세먼지 노출이라는 환경 요인을 추가해, 환경과 생활습관이 함께 암 위험을 조정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하위그룹 분석을 통해 일주일 걷기 빈도, 흡연과 음주 여부, 고혈압, 비만 여부 등과 전립선암 발병의 상관성을 다시 점검했다.

 

분석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 번도 걷지 않는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전립선암 발병 위험이 약 1.2배 높았다. 체질량지수 기준 비만한 그룹은 정상 체중 그룹보다 위험이 약 1.8배 상승했다. 흡연과 고혈압, 음주 역시 발병과 통계적 연관을 보였다. 대기오염 노출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개별 생활습관과 결합될 때 암 발생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박용현 교수는 “생활습관 관리를 통해 대기오염과 연관된 암 발병률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적정 체중 유지와 규칙적인 운동, 금연과 같은 기본적인 건강 습관이 전립선암 예방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환경요인 자체를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더라도, 개인 차원에서 조정 가능한 위험 요인을 관리하면 복합적인 노출 부담을 줄일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는 미세먼지와 비뇨기계암의 상관성을 보고한 이전 국내 논문의 연장선상에서, 특정 환경 기준 범위 내 농도에서조차 위험 증가 신호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단일 코호트 기반의 관찰 연구라는 한계상 절대적인 인과관계 규명까진 이르지 못하지만, 정책 당국의 대기질 기준 재검토와 장기 건강영향 평가 설계에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국제적으로도 대기오염과 암 발생 사이의 연관성을 탐색하는 역학 연구는 늘어나는 추세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디젤 배기가스를 비롯한 대기오염을 인체 발암물질로 분류해 왔고, 유럽과 북미에서는 초미세먼지와 폐암, 방광암 등과의 통계적 관련성을 보고해 왔다. 그러나 전립선암을 비롯한 남성 생식기계 암과의 관계를 국내 대규모 건강보험 데이터와 국가 대기질 데이터를 연동해 분석한 사례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연구팀은 향후 미세먼지 입자 크기, 성분 특성, 노출 기간과 강도에 따른 세분화 연구와 함께, 유전 정보와 생활습관 데이터를 결합한 정밀의료 관점의 분석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오염 관련 빅데이터와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연계한 분석 인프라 구축이 뒷받침되면, 질환별 취약집단을 더 정교하게 규명해 예방 전략을 고도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번 연구 논문은 최근 국제 공중보건 분야 학술지 공중보건 프론티어에 게재됐다. 국내에서는 환경 기준과 건강영향 연구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후속 연구와 정책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산업계와 의료계, 정책 당국은 보통수준으로 여겨지던 미세먼지 농도 관리가 중장기 암 부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시하고 있다.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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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암#미세먼지#서울성모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