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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위한 사법제도" 대법, 3일간 공청회…재판제도·대법관 증원 논의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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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제도 개편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대법원이 공론장을 열었다. 사법개혁 법안 논의가 여당 중심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사법부와 학계, 법조계가 한자리에 모여 재판제도 전반을 놓고 정면 토론에 나선다.

 

대법원 소속 사법행정기구인 법원행정처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법률신문과 함께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공청회를 연다. 공청회는 대법원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된다.

법원행정처는 최근 국회에서 여당 주도로 상고제도 개편과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의제가 논의되는 상황을 배경으로, 법원 내부는 물론 학계, 변호사업계, 시민사회 등 외부 인사를 폭넓게 초청했다. 보수와 진보 성향을 아우르는 발표자와 토론자를 배치해 각 진영의 시각을 동시에 드러내겠다는 취지다.

 

첫날 행사는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겸 대법관의 개회사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축사로 시작한다. 천대엽 처장은 사전 발언에서 공청회 취지와 관련해 국민 의견 수렴과 정책 반영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여러분께서 주시는 의견 하나하나가 바람직한 사법제도를 만들어 가는 길을 밝혀 주고, 국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정책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사법부 안팎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깊이 새겨 국민을 위한 사법부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사법제도 개편 방향과 관련해 국민 중심 원칙을 부각했다. 그는 축사에서 “모든 제도는 시대와 환경을 반영해 변화하기 마련”이라며 “그 변화 속에서도 제도의 중심에는 국민이 있어야 한다. 사법제도의 설계와 운용에 있어서 국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국민이 요구하는 개선과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또 “정본청원이라는 옛말이 있다. 근본을 바로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이라며 “국민의 의견을 널리 수렴하고, 토론과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제도를 정립해 나간다면,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가 굳건히 뿌리내릴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첫날 제1세션 주제는 우리 재판의 현황과 문제점이다. 국민 실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재판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국민 입장에서 개선 필요 지점을 짚어본 뒤 개편 방향을 설정하는 자리다. 발표는 기우종 서울고등법원 고법판사가 맡는다. 기 판사는 사법연수원 26기 출신으로,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을 지낸 바 있다.

 

기우종 판사는 사전 배포한 발표문에서 법조환경 변화 속 사법제도 개편 필요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최근의 시대적 변화뿐만 아니라 법조환경 변화에 따른 사법개혁 요청 속에서 앞으로 100년을 좌우할 사법제도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며 “사법제도 변경은 사법서비스 수요자인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만큼 다양한 의견을 광범위하게 듣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과거 성공적으로 이뤄진 사법개혁 또한 그리 추진했다”고 밝혔다.

 

또 “사법부도 공청회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사법제도를 만들어나가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개편 방향으로 신속한 재판 실현, 충실하고 공정한 재판 실현과 사법의 투명성 강화, 국민의 사법참여 확대, 형사절차 인권보장 강화, 상고제도 개편과 대법관 증원 논의를 제시했다. 토론에는 공두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학계 인사가 참여해 각 분야 시각을 덧붙인다.

 

제2세션에서는 사법의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 방안이 다뤄진다. 증거수집절차, 판결서 공개, 재판 중계 등 민감한 현안이 논의 대상이다. 발표는 이준범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유아람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맡는다. 공판 과정의 투명한 기록과 공개 범위, 국민 알권리와 피고인의 인권 보장 사이의 균형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제3세션에서는 국민의 사법참여 확대 방안을 논의한다. 노동사건 전담 법원의 설치, 국민참여재판 범위 조정과 활성화 등이 주요 의제로 오른다. 발표자로는 이종길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와 권오성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나선다. 노동분쟁 전담법원 도입 여부는 노사·노동전문 법원 논의와 맞물려 사회적 파장을 낳을 수 있는 사안으로, 토론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둘째 날인 10일에는 국민의 인권보장과 상고제도 개편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제4세션은 압수수색, 인신구속, 재정신청 제도 등 형사사법 절차에서의 인권 문제를 짚는다. 발표는 조은경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부장판사와 윤동호 국민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맡는다. 과도한 압수수색 논란, 영장 발부 기준, 기소 여부에 대한 통제 장치가 핵심 논의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5세션은 상고제도 개편 방안을 놓고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한다. 상고심 과부하 해소와 대법원의 법률심 기능 강화 요구가 맞물려 제도 개편 논의가 이어져온 만큼, 국회의 입법 논의와도 직접 연결되는 부분이다. 발표는 사법연수원 교수와 부장판사를 지낸 뒤 최근 상고제도론 연구서를 펴낸 법무법인 동인 소속 오용규 변호사가 맡는다. 상고심절차법 개정, 중간심 도입 여부, 상고허가제 강화 등 여러 시나리오가 비교 검토될 전망이다.

 

제6세션에서는 대법관 증원안을 놓고 의견을 교환한다. 재판건수 폭증을 이유로 한 증원 필요론과, 사법부 규모 확대가 사법독립과 책임성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시각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대법관 수 증원은 입법 사안인 만큼, 공청회 논의는 향후 국회 논의에도 참고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 날인 11일에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나아갈 길을 주제로 2시간 동안 종합토론이 이어진다. 좌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냈고 대법관을 역임한 김선수 사법연수원 석좌교수가 맡는다. 토론에는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 박은정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이자 전 국민권익위원장, 법조기자 출신인 심석태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조재연 전 대법관이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사법개혁 논의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차병직 클라스한결 변호사 등이 참여한다.

 

보수와 진보, 재야와 관료, 학계와 언론계를 망라한 인사들이 토론에 나서는 만큼, 사법개혁 방향을 둘러싼 이견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법원행정처는 공청회를 일방적인 입장 표명이 아닌 의견 수렴의 장으로 운영하겠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법부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자리가 아닌,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청취·수렴해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의 바람직한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공론의 장으로 마련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국회와 정치권에서는 상고제도 개편, 대법관 증원, 국민참여재판 확대 등 쟁점을 놓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려 있다. 사법부가 별도의 공청회를 통해 방향과 원칙을 제시하면, 향후 입법과정에서 여야 공방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특히 형사절차 인권보장과 재판 투명성 강화는 정치적 이해를 넘어선 국민적 관심사여서, 공청회에서 제시되는 제도 개선안이 여론 형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사흘간 이어지는 논의를 통해 정리되는 결론과 제안은 법원 내부 논의와 정부·국회 협의에 참고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사법부와 법무부, 국회가 각기 추진해 온 사법개혁 논의가 충돌하지 않고 조율될지에 따라 향후 입법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정치권은 공청회 결과를 지켜본 뒤 다음 회기에서 상고제도와 대법관 증원 법안 등 사법개혁 입법을 두고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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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천대엽#정성호법무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