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로 공장 효율 높인다"…정부, 스마트제조혁신 확산 드라이브
인공지능과 디지털트윈을 접목한 스마트제조 기술이 중소 제조업 현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숙련 인력 감소와 글로벌 제조강국의 디지털 전환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정부가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일 핵심 해법으로 피지컬 AI와 데이터 기반 공정 혁신을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성과 공유가 중소 제조기업의 AI 도입 확산을 앞당기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26일 오전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스마트제조혁신 기술개발 사업 성과공유회를 열고 우수 사례를 발표했다. 행사는 정보통신기획평가원과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관련 산학연 전문가 등 약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며,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 표창과 중기부 장관 표창이 수여된다.

스마트제조혁신 기술개발 사업은 2022년부터 추진 중인 중소기업 대상 디지털 전환 지원 프로그램이다. 디지털트윈과 5G 등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공정 최적화, 제조데이터 축적과 활용, 공장 운영 효율화 등을 목표로 한다. 정부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숙련노동자 감소, 글로벌 제조 강국의 AI 도입 가속을 감안할 때 중소 제조기업의 AI 전환이 경쟁력 유지의 관건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장관 표창을 받은 성과 중 가장 주목받는 기술은 섬유 원단 결함을 AI로 자동 탐지하는 솔루션이다. 조기창 디월드 대표는 제품별 다양한 섬유 원단의 정상과 불량 이미지 데이터를 구축해 딥러닝 모델과 결합함으로써, 기존 육안 검사에 의존하던 공정을 자동화하고 정밀도를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패턴과 소재가 제각각인 섬유 품목 특성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데이터셋을 세분화한 점이 특징으로, 불량 검출 정확도가 기존 수작업 대비 크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된다.
품질관리뿐 아니라 공장 전체를 디지털로 복제해 시뮬레이션하는 디지털트윈 기술도 성과로 제시됐다. 손지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지능·제조융합연구실장은 AI와 디지털트윈을 활용해 공정별 부하율과 공장 전체 생산성을 실시간 분석하는 제조 디지털트윈 프레임워크를 구축했다. 공정 병목 구간과 설비 가동률을 가상 환경에서 먼저 검증해 실제 설비 조정에 나설 수 있어, 공정 변경에 따른 비용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점이 강점이다.
환경 규제와 운영비 절감이 중요한 폐수처리 분야에서는 설비 상태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이상 징후를 예측하는 자동화 시스템이 소개됐다. 김지영 온메이커스 상무는 제조 현장의 폐수처리 시설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해, AI 기반 예측 모델로 이상 현상을 조기에 감지하고 운영 조건을 최적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센서 데이터와 공정 운전 이력을 동시에 분석해 오염 부하 증가나 설비 고장 위험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구조로, 환경 안전성과 공정 연속성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는 평가다.
생산계획 수립 분야에서는 클라우드 기반 고급 생산계획 솔루션이 가시화됐다. 김병희 브이엠에스솔루션스 대표는 다양한 제조업종별 특성을 반영해 생산 업무의 배분과 관리, 일정 조정을 지원하는 클라우드 APS 서비스를 개발했다. 공정 제약 조건과 납기, 설비 가동 가능 시간 등을 동시에 고려해 계획을 자동 생성하는 방식으로, 중소기업이 자체 시스템 구축 없이도 웹 기반으로 계획 최적화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국내 중소 제조현장은 그동안 숙련 인력 의존형 품질검사와 경험 기반 공정 운영에 머물러 글로벌 스마트팩토리 경쟁에서 뒤처져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에 공개된 사례들은 AI 영상 인식, 시뮬레이션, 예측 분석, 최적화 알고리즘 등 정보통신기술을 실제 공장 환경에 접목했다는 점에서, 현장의 수요를 반영한 실증형 기술로 평가된다. 특히 섬유 원단 불량 탐지처럼 패턴이 비정형적이고 품목이 다변화된 영역에서 딥러닝 기술이 상용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에 업계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이러한 기술들이 제조 공정 데이터화와 피지컬 AI 확산의 기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피지컬 AI는 실제 설비와 공정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물리적 행위를 최적화하는 인공지능으로, 디지털 환경의 소프트웨어 AI를 실제 공장 자동화와 연결하는 기술 축으로 여겨진다. 데이터 수집과 정제, 공정 모델링, 시뮬레이션 검증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번 사업은 공정별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실험장이 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제조업의 AI 전환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의 제조 기업들은 공장 전체를 디지털트윈으로 구현해 설비 투자 결정과 생산라인 재배치를 시뮬레이션하고 있고, 중국과 동남아 지역도 대규모 생산공장에 AI 기반 품질검사 시스템을 도입하며 인건비 상승 압력을 상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기업이 스마트팩토리 고도화를 선도해왔으나, 중소기업은 초기 투자 부담과 기술 인력 부족으로 도입 속도가 더딘 편이었다.
규제와 표준 측면에서도 과제가 남아 있다. 제조 공정 데이터의 표준화, 설비 간 인터페이스 규격, 데이터 보안 요건 등을 둘러싸고 국내외 기준 정비가 진행 중이다. 특히 중소 제조기업의 공장 데이터가 외부 클라우드로 전송돼 분석되는 구조에서 정보보호와 영업기밀 유출 방지 대책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향후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제조 데이터 표준과 보안 지침을 단계적으로 정비해 나갈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박태완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산업정책관은 피지컬 AI를 제조 현장 생산성 혁신의 핵심 해법으로 규정하며, 현장의 암묵지를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하는 파이프라인 구축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물리법칙을 이해하고 현실 적용을 검증하는 월드모델 기반기술 확보도 병행한다는 구상이다. 월드모델은 공장 설비와 공정의 동작 원리를 수학적 모델로 표현해 AI가 실제 환경을 학습하도록 돕는 기술로, 디지털트윈의 정확도와 활용도를 높이는 기반으로 주목받고 있다.
권순재 중기부 지역기업정책관은 국내 제조 현장에 AI와 데이터 기반 생산 방식을 안착시키기 위해 후속 연구개발과 비연구개발 지원을 병행하겠다고 언급했다. 장비 투자와 기술 인력 지원, 컨설팅, 교육 등 인프라 구축을 포함한 종합 패키지 지원이 검토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계는 이번 스마트제조혁신 사업 성과가 실제 중소 공장들로 얼마나 빠르게 확산될지, 그리고 피지컬 AI와 디지털트윈이 비용 대비 효과를 입증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