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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1α 분해해 p53 깨운다…핀테라퓨틱스, 첫 환자 투약 착수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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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분해 기술이 항암제 개발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국내 바이오텍 핀테라퓨틱스가 CK1α 선택적 분해제의 임상 단계에 본격 진입했다. p53 경로를 인위적으로 깨워 암세포를 사멸시키겠다는 전략으로, 기존 치료 수단이 거의 없는 희귀암을 시작으로 고형암과 혈액암으로 적응증을 확장하려는 행보다. 업계는 단백질 분해 기반 표적치료 시장에서 국산 파이프라인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시험대로 보고 있다.

 

핀테라퓨틱스는 CK1α 선택적 분해제 PIN-5018의 임상 1상에서 첫 번째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임상은 경구용 저분자 분해제의 초기 안전성과 약동학을 확인하는 단계로, 선양낭성암으로 불리는 희귀암 ACC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CK1α는 세포 성장과 사멸을 조절하는 다양한 신호전달 경로에 관여하는 단백질로, 과도한 활성이나 비정상적인 조절이 암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표적 중 하나로 꼽힌다.

PIN-5018의 개발은 p53 경로를 다시 작동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Synthetic activation of p53이라는 생물학적 가설에 기반한다. p53은 일명 게놈의 수호자로 불리는 종양억제 단백질로, 손상된 DNA를 가진 세포의 증식을 막거나 세포사멸을 유도하는 핵심 조절자다. 많은 암에서 p53 자체의 유전자 변이뿐 아니라 상위 조절 단백질의 이상으로 p53 기능이 차단되는데, 핀테라퓨틱스는 CK1α를 선택적으로 분해해 p53 억제 회로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종양억제 기능을 회복시키겠다는 전략을 택했다.

 

단백질 분해제는 표적 단백질의 활성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기존 저분자 억제제와 달리, 유비퀴틴 프로테아좀 경로를 활용해 표적 단백질 자체를 세포 내에서 제거하도록 설계된 약물 플랫폼이다. 이 방식은 결합 부위가 제한적인 난공략 표적이나, 저농도에서도 단백질 수준을 장기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크다. PIN-5018은 CK1α를 표적하는 리간드와 분해를 유도하는 요소를 결합한 구조를 통해 CK1α를 정밀하게 분해하도록 설계됐고, 경구 투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 특징으로 알려졌다.

 

이번 1상 시험에서 핀테라퓨틱스는 용량을 단계적으로 늘리는 용량 증량 설계를 통해 안전성과 내약성, 체내 농도 변화를 나타내는 약동학 특성, 그리고 CK1α 타깃 결합과 분해 정도에 따른 약물작용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계획이다. 특히 종양 조직이나 말초혈액에서 CK1α 분해 수준과 p53 경로 활성화 지표를 함께 측정해 기전 기반 바이오마커를 확보하려는 시도로도 해석된다. 단독 요법뿐 아니라 향후 면역항암제나 기존 세포독성 항암제와의 병용 전략도 병행 개발 중이다.

 

핀테라퓨틱스는 ACC를 시작으로 메르켈세포암, 신경모세포종 같은 고형암과 급성골수성백혈병, 골수이형성증후군 등 혈액암으로 개발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이들 적응증은 재발·전이 시 승인된 표준치료가 제한적이거나 예후가 매우 불량한 질환군으로, 새로운 작용기전의 약물 등장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크다. CK1α 분해를 통한 p53 활성화 전략이 초기 안전성과 신호포착에 성공할 경우, 희귀암을 중심으로 한 적응증 추가와 고위험 환자군으로의 확대 가능성도 거론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PROTAC 등 단백질 분해 플랫폼을 활용한 항암제 개발 경쟁이 심화되는 추세다. 미국과 유럽의 다수 기업이 호르몬 수용체, 키나아제, 전사인자 등 다양한 표적에 대한 분해제를 임상 단계에서 평가 중이며, 일부 파이프라인은 후기 임상으로 진입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CK1α를 표적으로 설정하고 p53 합성적 활성화를 전면에 내세운 핀테라퓨틱스의 전략은 차별적 포지셔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실제 시판까지는 독성 프로파일, 장기 투여 시 안전성, 표적 선택성에서의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 p53 경로를 전신적으로 강하게 자극할 경우 정상 세포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적정 용량 설정과 병용 전략 설계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향후 개발 과정에서 주요 보건당국의 임상 설계 기준과 바이오마커 활용 요구가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핀테라퓨틱스 관계자는 혁신적인 분해 모달리티와 새로운 생물학적 가설을 바탕으로 기존 치료 옵션이 없거나 제한적인 암 환자에게 실질적 치료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며 PIN-5018이 다양한 암종에서 의미 있는 임상적 가치를 입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CK1α 분해제가 초기 임상에서 안전성과 기전 기반 효능 신호를 확보해 단백질 분해 항암제 시장 확대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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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라퓨틱스#pin-5018#ck1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