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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유래 유산균 등재 추진…식약처·농진청, K발효 산업 키운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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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장류에서 유래한 토착 유산균을 공식 식품원료로 등록해 K발효 산업 저변을 넓히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농촌진흥청이 우리 전통발효식품에서 분리한 유산균 2종을 식품원료 목록에 올리는 절차에 착수하면서, 국내 발효식품 기업들의 스타터 균주 선택 폭이 넓어지고 글로벌 시장 공략 전략도 다층화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토착 미생물 기반 발효바이오 경쟁의 분기점으로 해석하며, 후속 미생물 자원 발굴과 규제 정비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30일 농촌진흥청과 협력해 김치, 장류 등 전통발효식품에서 분리한 루코노스톡 락티스와 페디오코커스 이노피나투스 2종을 식품원료 목록에 등재하는 절차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두 균주는 정부 차원의 산학관 협의체 검증을 통해 안전성과 식용 근거를 확보했으며, 향후 산업계가 다양한 발효제품에 활용할 수 있는 공식 균주 자원으로 편입된다.  

대상 유산균은 루코노스톡 락티스와 페디오코커스 이노피나투스다. 두 균주는 모두 김치에서 반복적으로 분리돼 왔고, 전통 장류와 식해류 등 한국형 발효식품의 숙성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을 분해해 젖산과 초산, 이산화탄소 등 유기산·가스를 생성하면서 산도와 향미, 조직감을 결정하는 미생물이라는 점에서 산업적 활용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는 올해 전통발효식품 미생물을 체계적으로 발굴·평가하기 위해 전통발효식품 미생물 산학관 협의체를 운영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식량과학원과 국립농업과학원,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 세계김치연구소, 한국식품연구원과 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전통발효식품에서 분리되는 각종 유산균의 식용 근거, 안전성, 국내외 연구 및 관리 현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검토의 핵심 기준은 세 가지였다. 첫째 두 유산균에 대해 우리 국민이 김치, 된장, 고추장, 간장, 식해 등 전통발효식품을 통해 오랜 기간 섭취해 온 경험이 축적돼 있는지 여부다. 장기간 섭취 이력은 인체 독성이나 급성 위해성이 낮다는 간접 지표로 활용된다. 둘째 생물안전등급, 병원성, 독소 생성, 항생제 내성 등 미생물 안전성 지표다. 평가 결과 두 균주는 식품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안전성을 갖춘 것으로 결론났다. 셋째 국제 공인 기관의 인정 여부다. 국제낙농연맹과 유럽식품안전청 등 해외 기관에서 이미 식품원료로 인정하고 있는 점이 등재 추진에 힘을 실었다.  

 

생물안전등급은 미생물의 인체·환경 위해 정도에 따라 1에서 4까지 나눈 분류 체계로, 등급이 낮을수록 위해성이 적다. 등급에 따라 필요한 안전관리 수준과 실험실 조건이 달라지는데, 식품용 미생물은 대체로 낮은 등급에 속한다. 정부는 두 균주의 생물안전등급과 병원성 데이터, 독소 생성 여부, 항생제 내성 보유 여부 등을 종합 검토해 식품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루코노스톡 락티스는 김치를 비롯해 메주, 된장, 고추장, 간장 등 다양한 장류에 널리 분포하는 대표적인 발효 유산균이다. 발효 과정에서 젖산뿐 아니라 초산, 이산화탄소 등 다양한 발효 부산물을 생성해 특유의 산미와 탄산감, 향을 형성하며, 발효 속도와 향기 성분 프로파일을 조절하는 데 관여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스타터 균주로 사용될 경우 김치와 장류의 맛 균질화, 저장성 향상, 가스 생성에 따른 조직감 변화 등 제품 품질 설계에 활용될 수 있다.  

 

페디오코커스 이노피나투스는 김치와 가재미식해 등에서 발견되는 발효 미생물로, 주로 젖산 생성에 특화돼 있다. 특히 장기간 숙성된 묵은지에서 우세하게 분포하는 균주로 보고돼 묵은지 특유의 깊은 산미와 향을 좌우하는 핵심 미생물로 꼽힌다. 발효 후반부 산도와 풍미를 결정하는 역할이 커 맞춤형 숙성 발효제품 개발에 적합한 균주로 평가된다.  

 

두 유산균은 기존 전통발효식품에 머물지 않고 치즈, 버터 등 유제품 발효와 맥주, 와인 등 주류 발효까지 확장 가능한 토착 미생물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동일 균주를 발효 스타터로 활용하면 발효 속도, 산 생산량, 향기 물질 조성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어 제품별로 차별화된 풍미 설계가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맥주와 와인에서는 산미와 향의 새로운 조합을 만들고, 치즈와 버터에서는 숙성 중 생성되는 풍미 성분을 보다 정교하게 설계할 여지가 생긴다.  

 

글로벌 발효식품 시장에서는 이미 특정 유산균·효모를 국가 브랜드와 연계해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유럽과 일본은 자국 치즈, 요거트, 된장 등에 사용되는 전통 미생물 균주를 국가 차원에서 수집·은행화하고, 산업계에 스타터로 공급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이번 김치 유래 유산균 등재 추진은 한국도 토착 미생물을 발효바이오 핵심 자산으로 보고 체계적으로 제도권에 편입시키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산업계 관점에서 식품원료 등재는 연구실 단계에 머물던 미생물을 상용 제품에 투입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의미한다. 식품기업과 스타트업은 별도 인체적용시험 없이도 공인된 미생물 스타터를 활용해 기능성 발효식품, 프리미엄 김치와 장류, 수출용 발효 음료 등을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특히 한류 확산에 발맞춰 김치와 된장, 막걸리 등 발효식품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국가 공인 토착 균주를 활용한 제품 콘셉트는 차별화 포인트로 작용할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농촌진흥청은 이번 조치가 K전통발효식품 산업의 성장 기반을 확대하고, 국제 시장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기관은 향후에도 협력을 이어가 전통발효식품에서 유래한 다양한 미생물 자원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안전성 검증과 원료 등재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산업계에서는 토착 발효 미생물에 대한 제도권 편입 속도와 함께, 이들 균주가 실제 시장에서 어떤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로 구현될지 주시하고 있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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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농촌진흥청#김치유래유산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