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약금 문 열리자 이탈 러시"…KT, 첫날 1만명 떠났다
무단 소액결제 등 침해 사고 후폭풍이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 구도를 흔들고 있다. KT가 전 고객을 대상으로 전격 시행한 위약금 면제 조치 첫날부터 가입자 1만명 이상이 빠져나가면서, 번호이동 시장은 단숨에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업계는 지난해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로 보조금 상한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보조금 출혈 경쟁과 시장 재편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1일 통신업계 집계에 따르면 KT의 위약금 면제가 시작된 직후인 전날 이동통신 시장 전체 번호이동 건수는 3만5595건을 기록했다. 직전까지 하루 평균 1만5000여건 수준에 머물던 번호이동 규모가 하루 새 2배 이상 불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KT에서 다른 사업자로 이동한 가입자는 1만142명으로 파악됐다. KT 고객 중 5784명은 SK텔레콤으로, 1880명은 LG유플러스로, 2478명은 알뜰폰 사업자로 이동했다.

이번 수치는 KT의 위약금 면제가 소비자의 이탈 장벽을 낮추며 번호이동 수요를 단기간에 분출시켰다는 점을 보여준다. 위약금은 통상 약정 기간을 전제로 한 요금제와 단말기 보조금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장치 역할을 해왔다. KT가 침해 사고 후속 조치로 이 장벽을 일시에 해제하면서, 그동안 이탈을 미뤄왔던 고객까지 한꺼번에 움직인 것으로 해석된다.
통신 3사 중에서는 SK텔레콤이 가장 큰 반사이익을 누린 모습이다. KT에서 유출된 고객 10명 중 절반 이상이 SK텔레콤으로 이동했다. 통신 인프라 품질, 브랜드 신뢰도, 요금제 포트폴리오가 결합되며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택지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LG유플러스는 KT 고객 유치를 위해 여러 차례 지원금을 상향하며 공세에 나섰지만, 실제 유입 규모는 1880명에 그치며 알뜰폰보다도 적은 수준에 머물렀다.
LG유플러스의 이 같은 성적에는 자사 역시 해킹 의혹에 연루돼 있다는 악재가 영향을 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LG유플러스가 KT와 마찬가지로 해킹 의혹이 제기된 서버를 자체 폐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보안 리스크가 겹친 상황에서 LG유플러스가 KT의 보안 이슈를 정면으로 비교 마케팅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면서, 타사 대비 가입자 유입 탄력이 떨어졌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반면 알뜰폰 시장은 KT 사태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는 분위기다. KT 이탈 고객 중 2478명이 알뜰폰으로 이동한 것은 가격 민감도가 높은 계층이 보조금과 저가 요금제, 그리고 번호이동 과정의 자유도를 함께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알뜰폰은 자체 망 투자가 아닌 도매망 기반 구조로, 요금 경쟁력과 프로모션 중심의 마케팅이 핵심인데, 위약금이 사라진 구간에서 이러한 가격 메리트가 더욱 부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신 시장 전체 관점에서 보면 번호이동 지표는 산업의 역동성과 동시에 경쟁 강도를 가늠하는 수단이다. 하루 1만5000건 안팎으로 안정돼 있던 번호이동 규모가 3만건 중반으로 치솟은 것은 단기간에 경쟁 강도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의미다. 위약금 면제라는 비정상적 변수에 의해 촉발됐지만, 일단 시작된 이동 수요가 각사 보조금 정책과 마케팅 전략에 따라 연쇄 확대될 여지도 있다.
정부 규제 환경 변화도 경쟁 구도를 자극하는 배경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로 그동안 규제되던 보조금 상한선이 사라진 상태다. 법적 한계선이 없어지면서 통신사들이 시장 점유율 방어와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해 보조금을 공격적으로 책정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마련됐다. 이번 KT 사태로 번호이동 수요가 폭증하면, 각사가 단말기 지원금과 요금 할인 확대에 나설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현재 비수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보조금 경쟁이 본격 재점화될 경우 KT 가입자 이탈 규모가 하루 수만명대로 확대되는 번호이동 대란 가능성도 거론한다. 단기간에 대규모 이탈이 현실화하면, KT는 매출과 가입자 기반뿐 아니라 향후 5G와 6G 투자를 위한 재무 여력에도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유선망, 기업전용 회선, B2B 디지털 인프라 사업까지 신뢰 리스크가 번질 우려도 제기된다.
고객 데이터 보안과 침해 사고 대응 체계도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다. 무단 소액결제와 같은 침해 사고는 단순한 요금 분쟁을 넘어 통신사 보안 구조 전반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요인이다. 위약금 면제와 같은 단기적 보상 조치는 고객 피해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결제 시스템 구조, 제3자 서비스 연동 방식, 이상 징후 탐지 체계 등 전반적인 보안 아키텍처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해외 통신 시장에서도 보안 사고 발생 시 가입자 이탈과 요금 경쟁 심화가 반복돼 왔다. 다만 북미와 유럽에서는 대규모 침해 사고 후 통신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 보안 인증 의무 강화, 사고 보고 의무제 등 규제 장치가 빠르게 정비되는 흐름이 나타났다. 국내 역시 반복되는 통신·플랫폼 보안 사고를 계기로 통신사 보안 수준에 대한 최소 기준, 판매 보조금과 보안 투자 간 균형을 유도하는 정책 논의가 불가피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번호이동 급증과 보조금 경쟁보다, 통신 인프라 신뢰 회복을 위한 구조적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장 점유율 방어를 위한 과열 경쟁이 이어질 경우, 설비 투자와 보안 투자를 잠식해 중장기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산업계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가입자 쏠림 현상에 그칠지, 통신 시장 구조와 규제 방향을 되짚는 계기가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