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 부정행위 어디까지”…가상외도, 이혼 분수령 되나
온라인게임 속 관계 맺기가 현실 세계의 혼인 관계까지 흔들고 있다. 게임 내 음성 채팅과 커플 닉네임, 가상 결혼 시스템이 일반화되면서, 배우자가 게임 속 이성 유저와 정서적 유대와 경제적 지출을 반복할 경우 법적 외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분쟁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상호작용이 실제 생활의 갈등과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면서, 법조계와 IT 업계 모두 온라인 행동의 책임 경계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온라인 상호작용이 기존 혼인관계법제의 새로운 해석을 촉발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한 상담 프로그램에 소개된 사례에서, 사연자 A씨의 남편은 돌 지난 아이의 육아와 가사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으면서, 밤새 온라인게임에 접속해 여성 이용자들과 커플 아이디를 맞추고 음성 채팅을 즐겼다. 게임 화면 속 남편은 특정 여성 유저를 상대로 와이프, 자기, 여보 등의 호칭을 쓰며 다정한 대화를 이어갔고, “이번엔 내가 지켜줄게”와 같은 발언과 함께 고가의 유료 아이템을 선물해 왔다.

A씨는 이를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명백한 외도로 받아들였고, 남편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남편은 현실과 게임은 다르다며 “그저 게임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고, 과민 반응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결국 A씨는 온라인 상에서의 애정 표현과 경제적 지출이 민법상 이혼 사유가 되는 부정행위에 해당하는지 법률 상담까지 고려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법조계에서는 온라인 게임 공간에서 이뤄지는 관계라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부정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법무법인 신세계로의 박경내 변호사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가족 관계를 맺는 게임이나 가상 결혼 콘텐츠가 존재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단순한 놀이를 넘어 외간 이성과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고 정서적 유대와 친밀감을 지속적으로 쌓는다면 민법 제840조 1호가 규정하는 부정행위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면 접촉이나 성적 관계가 없더라도, 혼인 신의를 저버릴 정도의 친밀성과 반복성이 입증될 경우 법원이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모든 온라인 상호작용이 곧바로 외도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다. 박 변호사는 다수 이용자가 참여하는 공개 채팅에서 일시적으로 역할극을 하는 수준, 특정인과의 지속적 교감이나 사적 연락이 거의 없는 경우 등은 의미 없는 놀이로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결국 구체적인 대화 내용, 접속 패턴, 경제적 지출 규모 등 객관적 증거를 바탕으로 전문가 상담을 거쳐야 현실과 가상을 구분한 법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례에서 A씨가 문제 삼은 또 하나의 축은 게임 아이템 구매 등 과도한 결제였다. 온라인게임은 확률형 아이템, 스킨, 장비 업그레이드 등 다양한 결제 구조를 통해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일부 이용자는 특정 유저에게 아이템을 선물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금전적 애정 공세를 펼친다. 박 변호사는 가정 경제를 흔들 정도의 지출이 이뤄졌거나, 장기간에 걸쳐 재산 형성을 방해한 기록이 확인될 경우 이혼 시 재산 분할 과정에서 해당 배우자의 기여도를 낮게 평가하는 요소로 반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온라인게임 결제가 단순 소비를 넘어 혼인 관계의 재산 구조에 영향을 준다면 법원이 이를 책임 소재 판단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 여성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도 쟁점으로 떠오른다. 변호사들은 게임 속 관계가 부정행위로 인정될 정도의 강도와 지속성을 갖추고, 상대 여성 역시 상대방이 기혼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교류를 이어갔다는 점이 입증되면, 이른바 가상 외도 상대에게도 위자료 청구가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닉네임과 아바타 중심의 플랫폼 구조상 상대 계정의 실명과 신원을 특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입증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IT 플랫폼 구조를 고려하면 증거 수집 방식도 중요해진다. 박 변호사는 법원을 통한 사실조회 신청을 통해 게임사에 접속 기록, 결제 내역, 특정 계정 간 거래 이력 등을 요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스크린샷, 대화 로그, 음성 채팅 기록 등이 결합되면 온라인 상의 행위 패턴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 규제와 서비스 약관, 데이터 보관 기간 한계가 존재해, 초기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기록을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게임과 메타버스, 소셜 VR 플랫폼 등 가상공간이 생활 영역으로 들어온 상황에서, 부부 간 게임 사용 규칙과 결제 한도, 이성 유저와의 교류 범위를 사전에 합의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AI 음성 채팅, 실시간 스트리밍, 가상 아바타 커스터마이징 등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는 만큼, 정서적 외도의 범위를 둘러싼 갈등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온라인상 부정행위를 둘러싼 판례가 축적되면, 향후 법원의 판단 기준이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IT 업계 역시 게임과 플랫폼 설계 과정에서 결제 구조와 익명성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따라 이용자 관계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어, 책임 있는 서비스 운영 방안이 요구된다. 산업계와 법조계는 결국 가상공간에서의 행위가 현실 세계의 혼인과 재산,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제도와 문화가 마련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