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상 성사 시 대러 제재 완화 기대”…국제유가 하락, 공급 확대 전망에 눌려
현지시각 기준 21일, 미국(USA)의 우크라이나(Ukraine)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협상안 압박 속에 뉴욕과 런던 원유시장에서 국제유가가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미국이 제시한 평화계획이 러시아(Russia)에 대한 제재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면서, 글로벌 석유 공급 증가 전망이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 전쟁 장기화 속에서 첫 구체적 평화안이 등장한 가운데, 전쟁 당사국과 국제 에너지 시장이 동시에 출렁이는 양상이다.
현지시각 21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58.06달러에 마감해 전장 대비 1.6% 떨어졌다. 같은 날 ICE선물거래소에서 내년 1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배럴당 62.56달러로 전날보다 1.3% 내렸다. 두 벤치마크 모두 종가 기준으로 지난달 21일 이후 약 한 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시장 참가자들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평화협상안에 합의할 경우 대러시아 제재가 단계적으로 철회되고, 그동안 묶여 있던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의 수출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을 주요 하락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목표로 한 28개항 평화계획 초안을 양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7일까지 협상안에 합의하라는 시한을 제시하며 수용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획에는 우크라이나가 일부 영토를 양보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그 수용 여부가 최대 변수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의 정치적 부담이 상당한 만큼 실제 합의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영토 보전과 주권 수호를 최우선 원칙으로 내세워 왔다. 과거 여러 차례 평화 협상이나 휴전 논의에서도 영토 양보와 관련된 제안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미국 주도 평화안에 대한 반응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은 우크라이나가 미국 정부로부터 이전 그 어떤 평화협상 국면보다 강한 압력을 받고 있다고 전하며, 이번 협상이 키이우의 외교·안보 전략에 중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 측으로부터 우크라이나 평화 계획을 전달받았다고 공개하고, 해당 계획이 양국 간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제안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협상 국면 전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서방의 제재 완화와 에너지 수출 정상화가 경제 회복의 핵심 과제로 꼽혀 온 만큼, 미국발 평화안에 일정 수준 호응하는 모습이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뒤따르고 있다.
국제 원유시장은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러시아는 글로벌 원유 수출국 상위권에 위치한 만큼, 대러 제재가 완화될 경우 유럽(Europe)을 포함한 주요 소비국에 향하는 공급 물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즉각 가격에 반영됐다. 이 같은 조치는 주변 산유국의 생산 전략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유가 부양을 위해 감산을 이어 온 일부 산유국이 향후 감산 폭 조정이나 정책 재검토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은 투자자 노트에서 평화계획 합의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시장이 최근 발표된 러시아의 두 대형 에너지 기업을 겨냥한 서방의 추가 제재가 실제로 어느 수준까지 이행될지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제재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와 평화협상 진전 기대가 맞물리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중장기적 공급 확대 가능성이 선반영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제 금융·에너지 전문 매체들은 이번 유가 하락을 단순한 가격 조정이 아닌 지정학 리스크 프리미엄의 후퇴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유가 하락은 주요국 통화정책과 성장 전망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에너지 시장을 넘어 글로벌 거시경제 전반에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가 시장에 더 많이 유입될 경우, 산유국 카르텔의 가격 결정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향후 유가 흐름은 미국 평화협상안의 실제 수용 여부와 협상 진전 속도에 좌우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의 정치·안보 계산과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 미국의 국내 정치 요인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합의 도출까지는 상당한 변수가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협상 국면이 본격화될 경우 국제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국제사회가 이번 평화계획의 실질적 이행과 그에 따른 제재 완화 수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