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CDMO법 통과…수출제조업 등록제 도입으로 규제혁신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분야에 대한 별도 규제지원 체계가 처음으로 법제화되며 국내 CDMO 산업의 수출 경쟁력이 한 단계 격상될 전망이다. 국회가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기업 등의 규제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키며 바이오의약품 수출제조업 등록제와 GMP 적합인증 근거가 마련됐다. 동시에 GMO 완전표시제, 화장품 안전성 평가자료 의무화, 의료기기 심사기관 갱신제 등 식품의약품 안전 전반을 아우르는 법령 손질이 이뤄져 규제는 정교해지고 산업 지원은 강화되는 방향으로 재편되는 흐름으로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기업 등의 규제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포함한 8개 법률 제정 및 개정안이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특별법은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CDMO 산업을 별도 법 체계 안에 포섭해 수출 중심 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규제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한다.

CDMO는 바이오의약품 후보물질의 공정 개발과 분석, 상업용 대량 생산까지를 하나의 통합된 서비스로 제공하는 위탁개발생산 사업 모델을 뜻한다. 글로벌 제약사가 파이프라인 개발과 마케팅에 집중하고, 복잡한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정은 전문 기업에 맡기는 구조가 확산되면서 CDMO는 바이오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부상한 상태다. 이번 특별법은 이러한 산업 구조 변화를 국내 법제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핵심 내용은 바이오의약품 수출제조업 등록제 신설과 CDMO 제조소에 대한 GMP 적합인증 법적 근거 마련이다. 기존 약사법과 첨단재생바이오법에는 수출 전용 제조업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어 통관 절차나 해외 규제당국 대응 과정에서 행정적 해석에 의존하는 측면이 적지 않았다. 앞으로는 수출제조업으로 등록된 기업을 대상으로 통관 절차를 간소화하고, 식약처가 GMP 기준에 맞는지 평가해 적합인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기술 자문과 규제 대응을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특히 이번 제정으로 국내 CDMO가 해외 의약품 규제기관과의 인허가 협의에서 국가 차원의 규제 지원을 공식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 글로벌 CDMO 시장에서는 이미 규제 전문 인력과 생산 인프라를 앞세운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선도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기술 경쟁력에 비해 법제·규제 체계의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제도화된 수출제조업 등록과 국가 인증은 해외 파트너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식약처는 이번 특별법을 통해 국내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분야가 국제 수준의 규제 환경을 갖추며 글로벌 생산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국내 CDMO 기업들은 공정 효율, 생산 수율, 품질 시스템에서 이미 글로벌 상위권과 경쟁 중인 만큼, 향후에는 입찰 참여나 장기 공급 계약 체결 과정에서 공공 규제기관이 인정한 GMP 적합성을 보다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가 조성된다.
바이오 CDMO법과 함께 식품위생법과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GMO 표시 제도도 크게 손질된다. 그동안은 유전자변형 DNA 또는 단백질이 최종 식품에 남아 있는 경우에만 GMO로 표시했지만, 앞으로는 제조나 가공 과정에서 유전자변형 DNA나 단백질이 남지 않더라도 식약처장이 정하는 범위의 유전자변형식품까지 GMO 표시 대상에 포함된다. 사실상 완전표시제 도입을 통해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이 한층 강화되는 구조다.
반대로 비유전자변형식품 NonGMO에 대한 표시 근거도 정비됐다. 식용으로 승인된 유전자변형품목이 존재하더라도 실제 제품 생산에 유전자변형이 되지 않은 원재료를 사용하고, 비의도적 혼입 비율 등 식약처장이 정하는 요건을 충족할 경우에는 제품에 유전자변형식품이 아님이라는 표시를 할 수 있다. 식품·건기식 업체 입장에서는 원재료 관리와 공급망 추적 시스템 고도화가 요구되지만, 차별화된 상품 전략 측면에서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화장품법 개정안도 통과되며 화장품책임판매업자의 안전성 입증 의무가 법률 차원에서 강화됐다. 유통·판매 책임을 지는 화장품책임판매업자는 판매하는 제품이 안전함을 증명할 수 있는 안전성 평가 자료를 갖춰야 한다. 다만 국내 화장품 산업 구조상 영세 업체 비중이 높은 점을 감안해 제도 시행은 2028년부터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이뤄지며, 중소·영세기업을 대상으로 한 11 컨설팅 등 행정·기술 지원도 병행될 예정이다. 기능성 화장품과 맞춤형 화장품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과학적 안전성 평가를 전제로 한 시장 경쟁 체계가 정착되는 방향으로 규제 환경이 바뀐다고 볼 수 있다.
의료기기법 개정은 심사기관의 전문성 관리에 초점을 맞췄다. 의료기기 품질관리심사기관과 기술문서심사기관 지정에 유효기간 4년을 부여하고, 만료 전 심사를 거쳐 연장할 수 있는 갱신 제도를 신설했다. 그동안 사실상 자동 연장에 가까운 구조에서 벗어나 심사기관의 인력과 시스템 수준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장치가 도입된 셈이다. 아울러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GMP에 대한 적합성 인정 제도가 법률로 상향되면서, 적합인정서를 발급하는 행위와 주체도 명확해졌다. 고위험 의료기기 수출 확대와 글로벌 상호 인증 협력을 고려하면, 심사기관 신뢰도는 곧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제도 정비의 파급력은 상당하다는 평가다.
위생용품 관리법 개정으로는 위생용품소분업과 위생용품소비자리필판매업이 신설됐다. 대용량 제품을 소용량으로 나누거나 리필 스테이션을 통해 소비자가 직접 충전하는 유통 형태가 늘어나는 현실을 제도권으로 편입한 것이다. 시설 기준과 영업자 준수사항 등 안전관리 규제도 소분·리필업의 특성에 맞게 조정돼, 자원 순환과 친환경 소비 트렌드에 대응하면서도 기본적인 위생·안전은 확보하는 방향의 타협점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축산물 위생관리법 개정은 생산 시설 효율성을 높이는 데 방점이 찍혔다. 축산물 가공·포장 또는 보관 공정 중 일부를 식품제조·가공업 시설에서도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영세 가공업자의 설비 부담을 줄였다. 동시에 식용란선별포장업자가 직접 달걀을 판매하는 경우에는 자가품질검사를 의무화해 안전 관리를 강화했다. 축산물 공급망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식중독과 위생 이슈에 대응하면서도 시설 투자 부담을 분산시키는 절충적 구조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는 5년 단위로 수립되는 마약류관리기본계획을 상황 변화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근거가 새로 생겼다. 합성 대마, 신종 향정신성 물질 등 시장에 빠르게 등장하는 마약류에 대응하려면 일단위, 월단위 정책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앞으로는 기본계획을 법적 근거 하에서 유연하게 수정할 수 있어, 수사·치료·재활·예방 정책을 통합적으로 조정하는 속도가 빨라질 여지가 생겼다.
업계에서는 이번 일괄 법제 정비를 바이오의약품 CDMO를 축으로 한 생산·수출 산업 육성과 소비자 안전 중심 규제 강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흐름으로 보고 있다. CDMO 특별법과 의료기기 심사기관 갱신제, GMO 완전표시제는 모두 국제 기준에 맞춘 규제 정합성을 높이는 방향이어서 향후 해외 규제기관과의 상호 인정, 데이터 교류, 공동 심사 등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식약처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사회 환경 변화를 반영한 법령 정비를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바이오의약품 생산 허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규제 지원과 안전 관리 수준이 국내 산업 도약과 글로벌 신뢰 확보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