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약 GLP1 열풍에…일라이릴리, 제약 첫 1조달러 시총
비만 치료제 시장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판도를 다시 쓰고 있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주력 비만 치료제의 폭발적 수요를 앞세워 글로벌 제약사 가운데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어섰다. 대형 항암제가 장악해온 글로벌 의약품 매출 순위도 GLP1 계열 비만약이 뒤흔들기 시작하면서, 치료 패러다임과 제약사 가치 평가 기준이 동시에 재편되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이른바 비만약 빅사이클이 본격화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일라이릴리 시가총액은 11월 21일 미국 시간 기준 1조달러를 돌파했다. 같은 날 주가는 1.57퍼센트 오른 1059.70달러에 마감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집계 기준으로 이는 존슨앤드존슨 시가총액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준으로, 존슨앤드존슨의 시총은 약 4900억달러에 머물고 있다. 1조달러 클럽에는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닷컴, 브로드컴, 메타, 테슬라, 버크셔해서웨이 등 주로 기술주와 투자사가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전통 제약기업이 합류한 것은 처음이다.

시장의 관심은 일라이릴리 급부상의 동력인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에 쏠린다. GLP1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로 불리는 인크레틴 호르몬을 모방한 약물로, 혈당을 낮추고 식욕을 줄이는 효과를 유도한다. 당초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이 계열 약물은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되면서 비만 치료제로 적응증이 확대됐다. 기존 식욕억제제나 지방 흡수 억제제 대비 체중 감소 폭이 크고, 장기 복용 시 유지 효과가 상대적으로 뛰어나다고 평가되면서 시장 수요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헬스케어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는 30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성인 비만율이 3년 연속 소폭 하락세를 보이는 배경에도 GLP1 의약품 사용 증가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체중 감소뿐 아니라 심혈관 질환 위험 감소 가능성이 임상에서 부분적으로 확인되면서, 단순 체중 조절을 넘어 만성질환 예방 관리 수단으로 쓰일 여지도 부각되고 있다.
일라이릴리 실적에서 GLP1 비만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절대적이다. 회사가 지난 10월 말 발표한 3분기 실적에 따르면 터제파타이드 성분 비만약 마운자로와 젭바운드의 3분기 글로벌 합산 매출은 100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분기 기준 글로벌 블록버스터로 꼽히는 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매출을 앞지르며, 마운자로와 젭바운드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의약품 자리를 차지했다. 대형 항암제 중심이던 글로벌 톱 의약품 구도가 대사질환 치료제로 이동한 셈이다.
시장 확장 여지도 크다는 평가다. 일라이릴리는 주사제인 마운자로와 젭바운드에 더해 경구용 비만약 오포글리프론 개발을 진행 중이다. 업계 전망에 따르면 오포글리프론까지 규제 당국 승인을 획득해 비만 치료 라인업을 3개로 확대할 경우 이들 제품의 연간 합산 매출이 최대 1010억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사제 중심에서 알약 형태로 진입장벽이 낮아지면 비만 관리에 대한 대중 접근성이 크게 높아질 수 있어, 의료비 구조와 보험 재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 구도에서는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가 대표 경쟁자로 꼽힌다. 노보 노디스크 역시 세마글루티드 계열 비만약을 앞세워 기업가치를 빠르게 키우고 있으며, 양사가 사실상 GLP1 비만 치료제 양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의약품 생산 능력, 유통 병목, 보험 적용 범위 등을 둘러싼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중이다. 중국과 중동, 남미 시장에서도 로컬 제약사와 바이오텍들이 GLP1 복제약과 후속 기전을 앞세워 추격에 나서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가격과 접근성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규제와 정책 측면에서는 급성장에 따른 부작용 관리가 주요 과제가 되고 있다. 각국 규제 당국은 GLP1 계열 비만약의 장기 안전성, 정신건강 영향, 급격한 체중 감소에 따른 합병증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과 유럽 규제기관은 기존 당뇨 적응증에서 비만, 심혈관 위험 감소 등으로 적응증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임상 데이터 품질과 리얼월드 데이터 활용 기준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험 당국과 보건부는 비만을 만성질환으로 어디까지 인정하고 급여 범위를 설정할지에 대한 정책 논의를 병행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GLP1 비만약이 단기간 내 매출 상위권을 재편한 것 자체가 제약 산업 구조 변화의 신호라고 해석한다. 암, 희귀질환 중심에서 대사질환과 생활습관병 관리로 R&D 투자 축이 일부 이동할 가능성이 커졌고, 장기 복용이 전제되는 만성질환 치료제 특성상 환자 데이터와 디지털 헬스 도구를 연계한 맞춤형 관리 서비스 시장도 커질 수 있다. 반면 고가 치료제의 장기 사용이 의료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체중 관리 책임이 약물에 과도하게 전가될 수 있다는 윤리적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일라이릴리의 1조달러 시총 돌파가 비만 치료제 경쟁의 서막에 해당한다는 평가와 함께, 향후 먹는 비만약 상용화와 후속 기전 개발 속도가 글로벌 제약사 판도 변화를 좌우할 변수로 보고 있다. 동시에 각국 정부의 규제와 보험 제도가 얼마나 빠르게 정비되느냐에 따라 비만약 열풍이 지속 성장으로 이어질지 여부가 갈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산업계는 비만 치료제가 만들어낸 새로운 수요가 실제 의료 시스템과 사회적 합의 속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