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관세로 제조업 되살린다”…트럼프 상호관세 8개월, 미국 경기와 고용 모두 기대에 못 미쳐

장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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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4일, 미국(USA) 경제 전반을 평가한 월스트리트저널(WSJ) 분석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4월 전 세계를 상대로 도입한 상호관세 정책은 8개월이 지난 현재 경기침체도, 공약했던 제조업 부활도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평가는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성장 엔진으로 제시한 가운데, 관세 충격을 우려해 온 국제 사회의 전망과도 어긋난 결과로 주목받고 있다.  

 

WSJ는 각종 최신 경제 지표를 종합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이후 미국 경제에서 “실제 붕괴는 없었지만, 뚜렷한 부흥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은 상호관세가 미국 경제 호황과 고용 확대, 제조업 부활을 견인할 것이라고 강조해 왔지만, 다수 경제학자와 재계는 관세가 미국 내외 경기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정반대의 우려를 제기해 왔다. 8개월간의 지표 흐름은 이 같은 양측의 예측이 모두 현실과 맞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트럼프 상호관세 8개월…美 경기침체도 제조업 부활도 없었다
트럼프 상호관세 8개월…美 경기침체도 제조업 부활도 없었다

고용지표를 보면 상호관세가 미국 내 일자리 확대에 미친 긍정적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의 9월 실업률은 4.4%를 기록해 최근 4년 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특히 제조업 부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이후 일자리가 약 5만4천 개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WSJ는 관세 부과 이후 원자재와 부품 등 수입 가격이 상승하면서 제조업체의 비용 부담이 커졌고, 이 압박이 고용 축소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물가 측면에서도 관세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빗나가게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최근 몇 개월간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목표치인 2%를 웃도는 3%대 흐름을 이어갔다. 다만 관세 도입 직후 일부 경제학자들이 예상했던 수준의 고(高)인플레이션은 관측되지 않았다고 WSJ는 전했다. 경제학자들은 미국 제조업체들이 관세 부과 이전에 확보해 둔 재고가 점차 소진되고, 도매·소매업체와의 새 공급 계약이 본격화되면 추가적인 가격 상승 압력이 다시 불거질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WSJ는 공급망 조정과 수입 대체 움직임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향후 물가 흐름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제 성장률에서는 양 진영의 전망과 또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올해 2·3분기에 걸쳐 비교적 뚜렷한 성장세를 유지했다. WSJ는 이 같은 견조한 성장세가 관세 부정적 효과를 상쇄한 인공지능(AI) 투자 붐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AI 열풍이 미국 증시 전반의 투자 심리를 자극했고, 주가 상승이 소비와 투자 확대를 통해 경기 확장 흐름을 떠받쳤다는 평가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등 특정 국가를 상대로 예고했던 고율 관세의 실제 부과를 상당 부분 미루거나, 협상을 통해 관세율을 낮춘 점도 성장 둔화를 완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기업들은 관세 부담이 낮은 품목으로 수입 구조를 바꾸거나 수입국을 아예 대체하는 전략을 통해 비용을 줄이는 데 주력해 왔다. 이런 조정이 단기 충격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제조업 부흥이라는 핵심 목표와 관련해서는 상호관세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모습이다. 미국 내 공장 가동 실적은 최근 9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WSJ는 관세 정책의 방향과 수준이 자주 변경되면서 사업 환경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졌고, 이 때문에 제조업체들이 대규모 설비 투자와 고용 확대 결정을 미루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해외로 이전했던 공장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선 미국 내 생산품이 관세 덕분에 해외 제품보다 뚜렷한 가격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 수준까지 관세를 올릴 경우 필수 수입 자재 가격까지 급등해 단기적으로는 미국 제조업이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세수 측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관세 수입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4∼9월 사이 미국의 관세 수입은 월평균 250억 달러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 월평균 66억 달러와 비교하면 가파른 증가세다. 그러나 행정부가 관세 수입 확대를 통해 개인 소득세를 폐지할 수 있다고 주장해 온 부분에 대해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추계에 따르면 2025 회계연도 미국 정부의 관세 수입은 1천950억 달러 수준으로 예상되지만, 지난해 미국이 징수한 개인 소득세는 2조4천억 달러로 관세 수입 전망치의 12배를 넘어선다. WSJ는 관세 수입 증가만으로는 미국 재정에서 개인 소득세를 대체할 여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무역수지에서는 관세 도입 이후 변동성이 확대된 양상이 관찰됐다. 올해 3월, 상호관세 발표 직전 기업들이 관세 인상 전에 수입을 서둘러 늘리는 이른바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면서 상품수지 적자가 급등했다. 이어 4월에는 앞선 사재기 효과가 반영돼 적자 폭이 급락하는 롤러코스터 흐름이 연출됐다. 그럼에도 올해 연초부터 최근까지의 상품수지 적자 규모는 여전히 전년 동기 수준을 웃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의 핵심 목표로 제시한 대규모 무역적자 해소가 가시적인 구조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경제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적자를 경제에 해로운 요소로만 규정하는 접근 자체가 잘못된 전제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국 내 소비 확대에 따라 무역적자가 늘면 해외 기업과 국가들이 더 많은 대금을 벌어들이게 되지만, 이렇게 축적된 자금이 다시 미국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로 재투자되는 순환 구조를 함께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역적자를 단선적으로 축소해야 할 목표로만 보는 정책 방향이 관세 확대와 같은 처방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제조업과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만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WSJ는 이 같은 지표와 분석을 종합해 상호관세 시행 8개월이 지난 현재, 미국 경제가 관세로 인해 붕괴하지도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해 온 제조업 중심의 재도약도 실현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국제사회와 시장 참가자들은 상호관세가 중장기적으로 미국과 세계 경제에 어떤 방향의 구조 변화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장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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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트럼프#상호관세#월스트리트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