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고즈넉한 선운사, 드넓은 농장길”…고창에서 느끼는 ‘가을의 고요한 호흡’

박다해 기자
입력

요즘 고창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지나치던 작은 고장에, 이제는 고요하게 물든 가을 풍경과 천년 고찰의 따뜻함을 찾으려는 발걸음이 모인다. 바삐 흘러가던 마음도 잠깐 멈춰 세울, 가을이 선물한 호흡이다.

 

전라북도 고창군은 흐린 하늘 아래로 한층 선선해진 공기를 내리고 있다. 체감온도 21.6도, 습도 83%의 포근함 속에서, 이곳 주민과 방문객들은 고즈넉한 풍경에 마음을 내려놓곤 한다. SNS에는 선운사에서의 산책, 드넓은 보리나라 농장에서 마주한 가을의 빛을 기록하는 사진이 연일 올라온다. 실제로 길게 뻗은 농원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객들이 속속 몰리고, 선운사 경내에서는 고요히 걷는 방문객들의 낮은 숨결이 이어진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선운사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선운사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고창 주요 관광지 방문자 수가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선운사의 대웅전과 보물문화재, 보리나라 학원농장 등 자연과 역사를 모두 품은 명소에 가족 단위, 솔로 여행객,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세대가 찾는다. 전문가들은 “일상과 멀어지지 않고, 짧은 여정 속에서 마음의 숨을 고를 공간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라 분석한다.

 

고창에 익숙한 여행자 김현진(38) 씨는 “가을만 되면 바쁜 마음에 숨이 막히던 때가 있었는데, 선운사와 농원길을 걸으면 평소와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고창 청농원에서는 라벤더와 핑크뮬리 사이로 산책을 즐긴다는 이야기가, 상하농원에서는 가족과 함께 체험을 하다 정갈한 농산물 한 상 가득 챙겨온다는 반응이 많다. “평온한 자연 덕분에 가족 대화가 많아졌다”는 한 학부모의 감상도 들린다.

 

심리학자 이수연 박사는 “멈춤과 쉼에 대한 현대인들의 거리감이 점차 줄면서, 자연과 역사 속에서 마음을 정화하려는 흐름이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그는 “특별한 액티비티가 없어도, 조용히 자연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이미 자기 돌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나도 이번 주말엔 선운사 걷고 싶다”, “농장길이 생각보다 넓어 아이들 데리러 다시 가기로 했어요”처럼, 일상의 피로를 벗어나려는 공감이 쌓이고 있다. 그만큼 누구에게나, 조용한 쉼표가 필요한 시기다.

 

고창의 가을은 단지 한철 스쳐 가는 풍경이 아니다. 천년 세월을 내려온 절, 광활한 농원의 들판, 계절을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남기는 길 위의 걸음들. 그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만난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박다해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고창군#선운사#상하농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