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공군에 새 전략자산·새 임무 부과"…김정은, 핵전쟁억제력 역할 강조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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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전력 운용 구상과 공군 현대화 전략이 맞물리며 한반도 안보 구도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공군에 새로운 전략자산과 임무를 부여하겠다고 선언하며 핵전쟁억제력에서 공군의 역할을 강조했다. 동시에 장거리 공대지미사일과 무인기,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 신형 전력을 대거 선보여 군사적 긴장 수위가 높아지는 양상이다.  

 

조선중앙통신은 3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8일 강원도 원산 인근 갈마비행장에서 열린 북한 공군 창설 80주년 행사에 참석해 공군의 임무와 역할을 규정하는 연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우리 공군에는 새로운 전략적 군사자산들과 함께 새로운 중대한 임무가 부과될 것"이라며 "핵전쟁억제력행사에서 일익을 담당하게 된 공군에 대한 당과 조국의 기대는 실로 크다"고 말했다. 공군을 기존 재래식 전력 보조 세력이 아니라 핵전쟁 억제 체계의 한 축으로 편입하겠다는 구상을 공식화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공군의 핵심 과제로 영공 방어와 정찰 대응을 제시했다. 그는 공군이 "공화국의 영공주권을 침해하려드는 적들의 각종 정탐행위들과 군사적도발 가능성들을 단호히 격퇴제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미 공군 연합훈련과 미 정찰자산 전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공군 전력을 동원해 직접적인 대치 국면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연설에서 언급된 '새로운 전략적 군사자산'의 구체적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 매체가 이날 함께 공개한 사진과 영상에는 우리 공군이 운용 중인 독일제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타우러스와 유사한 외형을 가진 미사일이 전투기 수호이 SU-25 하부에 장착된 모습이 처음 포착됐다. 군사전문기자 출신인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북한판 타우러스로 추정되는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첫 공개했다"며 "공대지 공격능력도 향상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그동안 취약한 분야로 꼽혀온 공군력 현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북한은 각종 무인기를 도입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전투기에서 발사하는 신형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실사격 훈련을 처음 공개했다. 또 3월에는 한국 공군이 운용 중인 공중조기경보통제기 피스아이와 유사한 기체를 공개하며 장거리 공중 감시능력 확보를 과시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이런 재래식 전력 강화 과정에서 러시아의 기술 지원과 장비 이전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양국 정상의 밀착 행보와 무기 거래 의혹이 겹치며, 일각에서는 북한이 향후 러시아제 첨단 전투기 도입까지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한 사진에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와 함께 미국의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를 연상시키는 샛별 4형, 미국 MQ-9 리퍼와 비슷한 공격용 무인기 샛별 9형으로 소개된 기체들이 비행장에 일렬로 배치된 장면도 담겼다. 북한이 공중 타격 수단뿐 아니라 정찰·감시·지휘통제 능력을 포괄하는 공군 전력 체계 구축을 과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행사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딸 김주애도 동행했다. 김주애의 등장은 9월 초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에 동행한 이후 3개월 만이다. 통신은 그를 지칭하며 존경하는 자제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김주애는 김 위원장과 같은 디자인의 검정색 가죽 롱코트를 착용하고 전 일정에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김주애는 2022년 첫 등장 당시와 비교해 한층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당시에는 어린 학생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이날은 선글라스를 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에어쇼를 지켜봤다. 또 여성 전투기 조종사와 절도 있게 악수하는 장면도 포착돼, 후계구도 상징과 더불어 군을 향한 권위적 이미지를 부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김주애 동행과 호칭 격상을 두고 북한이 장기적인 후계 정당성 확보 작업을 병행하는 흐름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행사에 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 공군 영웅으로 추앙받는 길영조의 반신상에 붉은 꽃 한 송이를 바치며 공군 전통을 강조했다. 길영조는 1993년 비행훈련 도중 기체 고장 상황에서 주민 밀집 지역을 피해 비행기를 몰고 나가다 추락해 사망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은 영웅 조종사를 기리는 이 장면을 통해 공군의 희생과 충성을 강조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갈마비행장 전망대에서 전투기와 폭격기가 참여한 시위비행을 참관했다. 그는 시위비행을 수행한 여성 비행사 안옥경, 손주향의 비행술을 높게 평가하며 "여성들의 존엄을 안고 임무수행에 충실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북한이 최근 여군 조종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군 내부 결속과 대외 선전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김 위원장은 사상 교육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하늘에서의 대결전은 무장장비의 대결이기 전에 사상과 신념의 대결"이라고 말한 뒤 "싸움의 승패는 첨단전투기가 아니라 불굴의 정신으로 무장한 비행사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첨단 무기 투입과 동시에 조종사들의 충성심과 이념 무장을 병행하는 북한식 군사 전략이 재확인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행사는 갈마비행장에서의 공중 시위비행과 지상 장비 전시에 이어 명사십리극장에서의 기념공연, 국방성 주최 연회까지 이어졌다. 조선중앙TV 영상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기념공연을 관람하던 중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도 담겼다.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이 공군의 노고를 치하하며 전력 강화를 독려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이날 행사에는 조용원, 박정천 당 비서와 노광철 국방상, 조춘룡 당 군수공업부장, 김정식 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리병철 당 중앙위원회 군수정책담당 총고문, 김광혁 공군사령관, 장창하 미사일 총국장 등 군·당 핵심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북한 군사·당·군수라인 수뇌부가 총출동한 만큼, 공군 창설 80주년 행사가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 향후 전략무기 개발과 운용 전략을 선포하는 계기로 활용됐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우리 군과 정부는 북한 공군력 변화와 신형 미사일, 무인기 전력의 성능과 실전 배치 여부를 정밀 분석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공중·미사일·무인기 전력을 입체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도발 수단을 다변화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는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북한의 재래식 및 비대칭 전력 증강에 대응하는 방안을 계속 점검해 나갈 방침이다. 국회와 정치권에서도 북한판 타우러스 추정 미사일과 무인기,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장에 대한 추가 정보 공유와 대비 태세 점검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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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북한공군#주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