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 확보 위한 한미 별도 합의 검토 가능"…위성락, 워싱턴서 미측과 본격 협의 착수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 간 협상 구도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체제에서 핵잠 확보를 국방·외교 현안의 상단에 올린 가운데, 국가안보실이 미국과의 별도 협정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전면전에 나선 모양새다. 한반도 정세 관리와 남북·북미 대화 재가동 구상까지 맞물리면서 외교·안보 라인의 전략이 재정비되는 분위기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16일 미국 워싱턴 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취재진과 만나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한미 간 별도 협정 체결 가능성을 시사했다. 위 실장은 "호주의 경우를 상정해서 추론할 수 있다"며 "호주의 경우 미국의 원자력법 91조에 따른 예외를 부여했고, 그러려면 양자 간 합의가 따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한테도 그게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협의해보겠다"고 강조했다.

호주는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구성된 오커스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을 통해 핵추진 잠수함 확보를 추진해왔다. 미국 원자력법 91조는 미국 대통령이 군용 핵물질 이전을 허가할 수 있는 권한을 규정하고 있는데, 호주는 이 조항에 근거한 별도 협정을 미국과 체결해 기존 미·호주 원자력 협정의 제약을 우회했다. 위 실장의 발언은 한국도 핵잠 연료 확보를 위해 유사한 구조의 한미 양자 합의를 모색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현행 한미 원자력 협정은 한국이 제공받는 핵물질의 군사적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정부는 핵추진 잠수함 연료 도입을 위해선 이 협정을 정면으로 수정하기보다, 호주 사례처럼 특정 목적에 한정된 별도 양자 협정을 마련하는 방안이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위 실장은 "핵잠 건조를 위한 한미 협의체와 관련해 우리 쪽은 대비하고 있고, 미측 대비를 파악해보겠다"고 언급했다. 다만 "양쪽 협의체를 이슈별로 만드는 것까지 얘기가 돼 있지는 않지만, 협의를 촉진하는 방법을 강구해보겠다"고 말해 구체적인 협의 틀은 향후 조율 과제로 남겨뒀다.
위 실장은 18일까지 워싱턴 DC에 머물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등 미 행정부 핵심 인사들과 잇달아 접촉할 계획이다. 또 백악관과 국무부 실무진과도 회동한 뒤 뉴욕을 경유해 귀국할 예정이다. 그는 "한미정상회담 합의 이행에 정치적 비중을 실어주려면 고위급 대화가 있는 게 좋겠다 싶어 방미했다"며 "안보 사안도 대통령실과 백악관이 관여해야 진척이 빨라진다"고 설명했다.
이번 방미 협의의 핵심 의제는 지난 한미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 담긴 우라늄 농축,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핵잠 건조 관련 합의 사항의 이행 방안이다. 위 실장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와 관련해 "합의가 큰 틀에서 된 거니까 후속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후속절차를 어떻게 진행할지, 필요하면 규정도 조정하고 바꿀 필요가 있는 것도 있다"고 언급해 국내외 법·제도 정비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미 양측이 기술적·법적 세부 조항을 다듬어 나가는 후속 협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북한 비핵화 협상 재개와 남북 관계 전망도 방미 의제에 포함됐다. 위 실장은 남북·북미 대화 촉진 문제를 논의할지에 대한 질문에 "이 문제 전반에 대한 의견을 교환해보려고 한다"며 "유엔과도 접촉해보려고 한다"고 답했다. 그는 "미국의 여러 동맹 중 한미 동맹에 괜찮은 분위기가 형성된 건 사실이다. 기회라면 기회"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북한 관계도 잘 풀어나가야 하고, 그러려면 한미 간 조율·공조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내에서 북한 문제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정세, 미중 경쟁 등에 밀려 우선순위에서 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위 실장은 "꼭 밀려났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우리가 주력한 것은 한반도 주변 주요국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건데, 거기서 좀 진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에 비해 그동안 좀 충분치 않았던 게 남북 관계여서 거기에 대해서도 진전을 기해보겠다는 취지"라고 덧붙여, 주변국 외교 성과를 토대로 남북 대화 재개를 모색하겠다는 구상을 내비쳤다.
최근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외교부와 통일부가 주도권 갈등을 빚고 있다는 관측에 대해서는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한 조율 기능을 강조했다. 위 실장은 "정부 내 외교·안보 이슈를 놓고 견해가 조금 다를 수 있다. 건설적 이견이기도 한데, 그건 항상 NSC 국가안보회의를 통해 조율·정리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안의 경우에도 한미 협의 건에 대해서 NSC에서 논의가 있었다"며 "굉장히 긴 논의가 있었고 많은 토론을 거쳐 정리가 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 과정에 대한 아쉬움도 숨기지 않았다. 위 실장은 "정리된 대로 이행됐더라면 지금보다 나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와 통일부가 대북 정책 방향을 놓고 엇박자를 냈다는 해석이 나오자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는 않겠다. 논의를 했고, 조율이 됐었다"고만 답했다. 정부 내부 조율 라인이 작동했음에도 실무 집행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표출됐다는 인식이 읽히는 대목이다.
워싱턴에서 진행될 고위급 협의 결과에 따라 한국의 핵잠 추진 전략과 한반도 비핵화·평화프로세스 재가동 구상은 중대한 분기점을 맞게 된다. 특히 미 원자력법과 한미 원자력 협정 사이의 법적 틀을 어떻게 조정할지가 향후 수년간 동맹 운영 방식을 좌우할 전망이다. 정부는 위성락 실장의 방미 결과를 토대로 대통령실과 외교·안보 부처 간 후속 논의를 거쳐 정책 방향을 정교하게 다듬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한미 협의 진척 상황을 주시하며 국회 차원의 점검과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