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동해의 바람이 머무는 길”…영덕, 흐린 날씨에도 느린 여행의 여유
라이프

“동해의 바람이 머무는 길”…영덕, 흐린 날씨에도 느린 여행의 여유

이도윤 기자
입력

요즘 영덕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멀게만 느껴졌던 동해안 시골의 항구와 숲이, 지금은 바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여유를 찾는 이들의 일상이 됐다. 흐린 하늘과 바다 내음, 바람이 스민 좁은 골목까지, 곳곳에 느린 여행의 기운이 감돈다.

 

흐림으로 시작한 9월 10일, 영덕의 기온은 낮 최고 28도, 최저 19도를 오르내렸다. 해안가엔 북북동풍이 불고, 습도 76%의 공기가 머무른다. 가을 문턱의 다정한 바람 속, 강구항을 걸어보면 신선한 해산물을 들고 분주히 오가는 어부들의 모습, 활기찬 어시장의 소리에 마음이 저절로 녹아든다. SNS엔 제철 생선을 맛본 후기를 남기는 글이 종종 보이고, 갓 잡은 대게를 앞에 둔 인증샷이 눈길을 끈다.

ㅇ

이런 변화는 발길이 이어지는 관광 명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영덕어촌민속전시관에선 동해 어민들의 삶과 오랜 전통, 바다와 사람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전한다. 3D 입체영상관의 ‘대게왕자’ 이야기를 아이와 함께 보고 나오는 가족, 옛 어로 도구 앞에서 잠깐 눈길을 멈추는 여행객. “푸른 바다와 그물, 해녀들의 숨결이 다 들어 있다”고 한 관람객의 소감처럼, 강구항과 전시관은 그 마을이 살아온 시간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숲을 걷고 싶다면 벌영리 메타세콰이어 숲이 기다린다. 한적한 나무길 끝에선 바람이 이파리마다 물결치고, 계절 따라 푸름과 짙은 녹색, 쓸쓸한 황금빛이 번진다. 9월 영덕의 숲은 유독 싱그런 기운이 감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부서질 때면, “걸음을 멈추고 싶어진다”는 말이 실감된다.

 

전문가들은 “최근 여행 트렌드는 이국적이거나 화려한 풍경보다 자연에 기대 편안함을 얻는 방향으로 달라졌다”고 말한다. 부산이나 강릉 대신 조용한 영덕 같은 소도시로 눈을 돌리는 것도, 이런 흐름 속 하나의 신호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강구항에서 회 한 접시에 마음이 풀린다”, “숲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니 도시 피로가 씻긴다” 등, 소소한 일상의 위로가 영덕 여행의 핵심 기억이 됐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느린 시간을 받아들이는 여행이, 삶을 조금 더 넉넉하게 만들어주는 순간임을 영덕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도윤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영덕군#강구항#벌영리메타세콰이어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