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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2 변이 겨냥한 폐암 신약…바이엘, FDA 가속 승인으로 정밀치료 속도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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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2 변이 비소세포폐암을 겨냥한 표적 항암제가 미국에서 새 치료 옵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바이엘이 개발한 경구용 표적치료제 세바버티닙이 미국 식품의약국 FDA로부터 가속 승인을 받으면서, 기존 치료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이었던 환자군에 정밀치료 전략이 본격 확산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HER2 변이 폐암을 둘러싼 글로벌 표적치료제 경쟁이 한층 가팔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바이엘은 11월 20일 미국 현지에서 HER2 변이를 가진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치료를 위한 경구용 티로신 키나아제 억제제 세바버티닙에 대해 FDA 가속 승인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승인은 기존에 한 차례 이상 전신 항암 치료를 받았음에도 질병이 진행된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제품 상표명은 하이르누오이며, HER2 변이를 가진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타깃으로 한 경구용 저분자 표적치료제라는 점에서 정밀의료 영역의 상징적 성과로 받아들여진다.

세바버티닙은 가역적 저분자 티로신 키나아제 억제제 TKI로, HER2와 EGFR 등 암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수용체와 그 하위 신호를 차단한다. HER2는 인간 표피 성장 인자 수용체 계열 단백질로, 세포 분열과 증식을 촉진하는 신호를 전달한다. 세바버티닙은 이 수용체에 결합해 티로신 키나아제라는 특정 효소의 작용을 억제하고, 종양 성장 신호 전달 경로를 차단하도록 설계됐다. 기존 세포독성 화학항암제와 달리 특정 분자 표적에 선택적으로 작용해, 효능과 안전성의 균형을 노린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FDA 가속 승인 근거가 된 것은 HER2 변이를 가진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다국가 임상 1·2상 SOHO-01 시험 결과다. 연구에서 HER2 표적 치료 경험이 없는 환자군의 객관적 반응률 ORR은 71퍼센트로 보고됐다. 이 가운데 2점9퍼센트는 영상학적 평가에서 종양이 완전히 사라진 완전반응에 도달했으며, 69퍼센트는 종양 크기가 유의미하게 감소한 부분반응을 보였다. 반응 지속기간 DOR 중앙값은 9점2개월로 나타나, 상당수 환자에서 장기간 반응이 유지되는 경향을 확인했다는 평가다.

 

안전성 측면에서는 치료 중단률이 3점7퍼센트에 머물러 관리 가능한 수준의 독성 프로파일을 확인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임상에서 가장 흔하게 보고된 이상반응은 설사, 발진, 구내염, 메스꺼움 등으로, 다수의 기존 EGFR·HER2 계열 TKI에서 관찰되는 클래스 효과와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 연구진은 용량 조절과 지지요법을 통해 상당수 환자에서 이상반응을 관리할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임상을 주도한 미국 텍사스대 MD앤더슨암센터 시우닝 리 박사는 세바버티닙 가속 승인에 대해 치료 옵션이 거의 없던 HER2 돌연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에게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특히 반응률과 반응 지속기간을 고려할 때, 재발·진행성 환자에게 실질적인 생존 연장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HER2 표적치료 경험이 없는 환자에서 더 높은 반응을 보인 점도 향후 치료 순서 전략 수립의 근거가 될 전망이다.

 

HER2 변이를 동반한 비소세포폐암은 전체 폐암의 일부에 해당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연간 최대 8만4천 명이 새로 진단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바이엘 연구개발총괄 크리스티안 롬멜 박사는 세바버티닙이 이 환자군을 겨냥한 정밀 표적치료를 제공해 실제 치료 성과 개선과 생존 연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HER2 단백질 과발현이 유방암, 위암에서 이미 검증된 치료 표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폐암 영역에서도 HER2 중심의 정밀 분류와 맞춤형 치료 전략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HER2를 표적하는 다양한 항체의약품과 항체약물접합체 ADC가 개발·승인되고 있다. 다만 정맥 주사 기반 치료가 많은 기존 제품과 달리, 세바버티닙은 경구 복용이 가능한 저분자 TKI라는 점에서 병용요법 설계와 장기 유지요법 전략 측면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업계에서는 향후 HER2 표적 항체·ADC와의 병용, 면역항암제와의 조합 등 후속 임상을 통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시나리오가 등장할 수 있다고 본다.

 

FDA 가속 승인 제도 특성상, 세바버티닙은 추후 확증적 임상 데이터를 통해 임상적 유익성을 재검증해야 한다. 만약 대규모 3상 연구에서 생존 이익이나 장기 안전성이 명확히 입증되면 정식 승인으로 전환될 수 있다. 반대로 기대만큼의 효과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적응증 축소나 승인 취소 가능성도 열려 있다. 미국 외 규제당국에서도 HER2 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에 대한 허가 심사가 이어지고 있어, 지역별 허가 전략과 보험 등재 여부가 시장 확산 속도를 가르는 변수로 꼽힌다.

 

정밀의료 확대 흐름 속에서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검사와 바이오마커 기반 치료 선택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세바버티닙처럼 특정 유전자 변이를 겨냥한 표적치료제는 진단 단계에서 HER2 변이 여부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확인하는 체계가 전제돼야 실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폐암 진단 초기부터 차세대염기서열분석 NGS 기반 패널 검사를 통해 HER2를 포함한 주요 돌연변이를 한 번에 확인하는 방향으로 의료 현장이 이동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업계에서는 세바버티닙이 미국 시장에서 실제 처방 데이터와 후속 연구 결과를 축적해 나가면서, HER2 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 패러다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하고 있다. 동시에 고가 표적항암제에 대한 급여 정책, 동반진단 인프라 확충, 장기 안전성 모니터링을 둘러싼 규제·제도 논의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기술과 치료 옵션이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정밀의료의 가치를 실제 환자 혜택으로 연결하기 위한 산업과 제도의 조율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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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엘#세바버티닙#f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