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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러관계 서두르면 유럽 불편"…위성락, CPTPP 가입추진·한미원전협정 의원외교 강조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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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는 가운데 러시아와의 외교적 접근을 둘러싸고 외교안보 라인과 국회가 다시 접점을 모색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대러 관계 관리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유럽 국가들의 시선을 의식한 신중한 행보를 주문했고, 동시에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CPTPP 가입 추진 필요성을 강조했다.

 

위 실장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선진 외교를 위한 초당적 포럼 조찬 간담회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러 관계 방향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한 의원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가 너무 밀착해 있으니 한국이 대러 외교를 통해 견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위 실장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시기와 방식에 주의를 당부했다.

그는 “당연히 앞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좋게 만들어가야 한다”면서도 “다만 지금 공개적으로 그런 것들을 하면 유럽의 여러 국가가 굉장히 불편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이어 유럽이 특히 관심을 갖는 한국 방위산업을 언급하며, “항공·무기 등 한국의 방위산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방산 수출 확대 국면에서 대러 접근 방식이 유럽 시장에 미칠 파장을 계산해야 한다는 취지다.

 

위 실장은 “국제적인 추세들을 조금 지켜보며 행보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도 “다만 민간 차원의 교류 등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차원의 노선 전환은 속도 조절을 하되, 학술·문화·경제 등 민간 교류는 유지·확대해 외교적 완충지대를 확보하자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경제안보와 관련해선 CPTPP 가입 필요성을 직접 거론했다. 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위 실장은 변화하는 세계 무역질서에 대응해야 한다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CPTPP 가입을 이제는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무역기구인 세계무역기구 WTO 체제가 약화하고 자국 우선주의가 확산되는 흐름을 짚으면서, CPTPP가 주요 무역국들의 대안적 경제 블록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위 실장은 한국과 일본이 협력을 통해 새로운 무역 환경에 더 긴밀히 대응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그 중요한 고리가 CPTPP”라고 설명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한일 양국이 같은 협정 틀 안에서 규범과 공급망을 정교하게 조율할 경우 경제안보 협력이 한층 구조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결성해 2018년 출범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 FTA다. 현재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칠레,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영국 등 12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국내 농어업과 산업계 이해관계 등을 이유로 가입 여부를 조율해 왔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중 경쟁 심화 속에 가입 필요성이 거듭 제기돼 왔다.

 

포럼에 참석한 한 의원은 내달 일본에서 추진 중인 한일 정상회담에서 CPTPP 문제가 의제로 오를 수 있다고 전했다. 여권에 따르면 대통령실과 외교당국은 이 대통령의 내달 중순 1박 2일 일본 방문을 조율 중이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양국 정상이 CPTPP를 포함한 경제안보 현안을 두루 논의할 경우, 한국의 CPTPP 접근 전략이 본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외전략과 관련해 위 실장은 미국 백악관이 최근 공개한 국가안보전략 NSS에서 북한과 북한 비핵화 언급이 빠진 것을 둘러싼 우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그는 ‘비핵화가 포기되거나 배제됐다’라고 볼 필요는 없다며 “우려할 것까지는 없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문서 문구 변화만으로 한미 대북 비핵화 공조의 근간이 흔들렸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논의와 관련해선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한 국회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위 실장은 미국 조야 일각에서 장기적으로 한국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을 언급하며, “미국의 그런 시선을 불식하기 위해 의원 외교가 굉장히 중요하다. 여야가 의원외교 과정에서 한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를 막론한 일관된 메시지가 나와야 미국의 우려를 줄이고 협정 개정 논의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취지다.

 

조찬 간담회에 참석한 의원들은 대러 관계의 방향성과 CPTPP 가입 문제, 한미 원자력 협정과 관련한 미국 의회의 시각 등을 놓고 위 실장과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안보 현안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국내 정치 쟁점으로 비화하는 양상까지 감안하면, 향후 국회 차원의 의원외교와 외교·통상 관련 법안 논의도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

 

국회는 향후 정기국회와 임시국회 일정을 통해 CPTPP 가입을 전제로 한 국내 제도 정비와 대러 외교 방향, 한미 원자력 협정 관련 대응 방안을 두고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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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cptpp#한미원자력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