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론에 기술주 투매”…미국 증시 충격, 한국 코스피 3,800대로 급락
현지시각 기준 20일 미국(USA) 뉴욕 증시에서 인공지능(AI) 거품론 우려가 재점화되며 기술주 중심 투매가 확산된 여파가 한국(Korea) 증시에 직격탄을 날렸다. 21일 서울 증시에서 코스피는 장 초반 3% 넘게 급락하며 3,800대로 밀려났다. 전날 엔비디아 호실적에 힘입어 4,000선을 회복했던 지수는 하루 만에 랠리를 반납하며 글로벌 AI 투자 붐의 불안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1일 오전 9시 46분 기준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48.56포인트(3.71%) 떨어진 3,856.29를 기록했다. 개장 직후부터 매물이 쏟아지며 지수는 오전 9시 4분경 3,838.70까지 밀려 3,800선마저 위협받는 등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전날 1.92% 상승으로 사흘 만에 4,000선을 회복했던 기세는 미국발 악재에 하루 만에 꺾였다.

이번 급락의 직접적인 방아쇠는 뉴욕 증시에서 부각된 AI 버블 우려다. 20일(현지시각)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는 장중 매도 물량이 집중되며 3.15% 하락 마감했고, 마이크론은 10.87% 급락하는 등 반도체 업종 전반이 큰 폭의 조정을 받았다. AMD(-7.84%), 팔란티어(-5.85%), 인텔(-4.24%), 퀄컴(-3.93%) 등 주요 반도체·AI 관련주 주가도 일제히 하락했다.
AI와 반도체 비중이 높은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하루 만에 4.77% 급락해 기술주 전반의 투자 심리 위축을 상징했다. 엔비디아가 시장 기대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 채권이 크게 늘어난 점이 부각되며 밸류에이션에 대한 의문이 커진 것이 투자심리를 짓눌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적 자체보다 향후 수요 지속 가능성과 회수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부각된 셈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리사 쿡 이사가 최근 “고평가된 자산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증가했다”고 경고한 것도 AI 관련 자산에 대한 경계심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연준 고위 인사의 발언이 공개되면서 과열된 성장주와 신기술 테마 전반에 대한 차익 실현 심리를 자극했다는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시장의 불안은 구조적인 수급 요인과도 맞물렸다. 글로벌 증시 전반의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옵션 만기일을 앞두고 추세추종형(CTA) 펀드 등 프로그램 매매가 공격적으로 출회된 점이 낙폭을 키웠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CTA 펀드는 지난주부터 매도세가 이어져 온 가운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기준 지지선이던 6,725포인트를 하회하자 기계적인 매도 물량이 추가로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알고리즘 기반 자산 운용이 일정 수준 이하에서 일제히 매도에 나서며 하락장을 증폭시키는 전형적인 패턴이 반복됐다는 분석이다.
뉴욕발 조정세는 한국 증시에서도 가장 먼저 반도체 대형주를 덮쳤다. 국내장을 이끌어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동반 급락하면서 지수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삼성전자는 장중 4% 넘게 떨어지며 이른바 ‘10만 전자’ 주가 수준을 반납했고, SK하이닉스는 8%에 육박하는 하락률을 보이며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등 시가총액 상위 대형주들도 일제히 밀리며 코스피 전반에 하락 압력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AI와 반도체는 지난 2년간 가장 강한 상승 동력을 제공해온 섹터로 꼽힌다. 미국 빅테크와 함께 글로벌 지수를 견인해온 AI 밸류체인이 조정 국면에 들어갈 경우, 신흥국뿐 아니라 선진국 증시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미국 나스닥과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급락이 한국, 대만(Taiwan), 일본(Japan) 등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증시로 전이될 경우, 글로벌 위험자산 선호가 위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내 증권가에서는 이번 변동성이 단기 해프닝으로 끝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김지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 실적 발표 이후 미국 빅테크와 AI 밸류체인 관련주의 주가 회복 시도가 있었으나 아직 뚜렷한 반등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실적 발표로 산업 수요의 불확실성은 다소 완화됐지만, 투자 주체들의 자금 조달과 관련한 경계심이 여전히 남아 있어 12월 FOMC까지 여진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긴축 고금리 환경에서 레버리지 거래 비중이 높은 성장주 섹터는 작은 악재에도 큰 가격 조정을 겪을 수 있다는 경고다.
이성훈 키움증권 연구원도 “다음 주에도 AI 버블 우려를 해소할 만한 굵직한 이벤트가 부재하다는 점이 투자심리의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2월 FOMC 회의 전까지 관련 노이즈가 계속되고, 미국 증시는 차익 실현 매물 출회와 저가 매수 자금 유입이 맞부딪치면서 변동성 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연준의 향후 금리 경로와 유동성 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 AI 섹터를 포함한 위험자산 전반에 롤러코스터 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국제 금융시장은 이번 AI 버블 논쟁과 기술주 급락을 코로나19 이후 형성된 유동성 랠리의 분기점으로 주목하고 있다. AI가 여전히 장기 성장 동력이라는 평가 속에서도, 단기적으로는 실적과 밸류에이션의 괴리, 그리고 고금리 환경을 둘러싼 긴장감이 결합하며 급격한 가격 재조정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경고가 힘을 얻는 분위기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 빅테크와 AI 관련 종목 비중을 어떻게 조정할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증시에 어떤 파장이 이어질지 국제사회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