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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합 탄저백신으로 백신주권 강화…GC녹십자 첫 출하 주목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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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합 단백질 기반 탄저백신이 국내에서 상용 생산 단계에 진입하며 백신 안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질병관리청과 GC녹십자가 공동 개발한 세계 최초 재조합 단백질 탄저백신이 8일 전남 화순 공장에서 첫 출하를 시작했다.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탄저백신을 국산화해 생물테러와 고위험 감염병 재난에 대비한 자급 체계를 갖추게 됐다는 점에서 방역과 바이오 산업 모두에 의미 있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성과가 국방·공중보건용 안전성 강화 백신 시장 확산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GC녹십자가 개발한 배리트락스주는 지난 4월 의약품 품목 허가를 획득했다. 주성분은 탄저균이 체내 감염과 독성 작용을 일으키는 핵심 요소인 방어항원 단백질이다. 기존 탄저백신이 불활화된 균체나 독소 성분을 활용한 데 비해, 특정 단백질만을 재조합 기술로 생산해 투여하는 방식이어서 생산 공정의 표준화가 용이하고 불필요한 성분 노출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비임상시험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면역원성과 안전성이 검증되며 고위험 병원체 대비용 백신으로서의 효용이 확인됐다.  

핵심 기술은 재조합 단백질 공정이다. 탄저균 유래 방어항원 유전자를 숙주 세포에 삽입해 단백질을 대량 생산한 뒤, 이를 정제해 백신으로 사용하는 구조다. 이 방식은 생산 배치 간 품질 편차를 줄이고, 불순물 제거 수준을 정밀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 일부 탄저백신이 접종 후 국소 통증이나 발열 등 부작용 우려가 상대적으로 컸던 것과 비교해, 불필요한 세포 성분과 잔류 독소를 제거해 안전성을 높이는 데 방점이 찍혔다. 전문가들은 같은 항원량으로도 보다 일관된 면역반응 유도가 가능해 군·경·보건 인력 등 대규모 접종에도 적합한 플랫폼이라고 본다.  

 

이번 첫 출하는 전략 물자 성격의 백신을 국내에서 상시 생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탄저는 자연 발생 사례는 드물지만, 낮은 감염량으로도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대표적인 생물테러 고위험 병원체로 분류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관련 백신을 전량 해외에서 조달해 왔기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나 지정학적 변수에 따라 방어체계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GC녹십자가 화순 공장에서 양산 체계를 갖추면서, 국가 비축용 물량을 계획적으로 축적하고 군과 응급대응 인력을 대상으로 한 접종 전략도 자국 공급에 기반해 설계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관점에서도 재조합 단백질 탄저백신 상용화는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미국 등 일부 국가는 이미 탄저백신을 전략 비축 체계에 포함해 운용하고 있지만, 대부분 기존 플랫폼에 기반해 개발된 제품들이다. 이번에 세계 최초로 재조합 단백질 형태로 허가·출하에 도달한 국가는 한국이어서, 고위험 병원체 대응 백신 분야에서 기술 리더십을 선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국제기구 조달 시장이나 개발도상국 공중보건 협력 프로젝트에서 국산 탄저백신이 포트폴리오로 편입될 경우, 방역 외교와 백신 수출 산업 측면의 파급력도 커질 수 있어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정책적 측면에서는 백신 주권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국가는 백신과 치료제의 국내 개발·생산 능력을 핵심 안보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질병관리청은 탄저백신을 포함한 필수 의약품의 국내 생산 기반을 확보해, 생물테러와 신종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해외 의존도를 줄이는 구조를 마련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향후에는 탄저 외에도 두창, 에볼라, 신종 호흡기 바이러스 등 고위험 병원체에 대한 백신 파이프라인을 국내 기업과 공동으로 확대하는 방향이 논의될 수 있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국산 탄저백신 첫 출하를 국가기관과 민간기업의 긴밀한 협력이 이룬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했다. 그는 이번 성과가 국내 백신 산업의 기술 역량과 생산 인프라 확충에 기여해, 국가 보건 안보와 바이오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국가 필수 백신 개발을 지속 추진하고, 안정적 자급 체계를 정착시키는 한편 감염병과 생물테러 위기에 대비한 비축 계획을 보다 정교하게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재조합 탄저백신의 상용 생산이 다른 고위험 병원체 백신 개발에도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실제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신속하게 공급망을 가동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다.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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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녹십자#질병관리청#배리트락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