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대법관 5년간 대법원 사건 수임 금지"…민주당, 법관 인사 외부위원회 전환 추진
사법행정 권한을 둘러싼 갈등이 법원 안팎에서 격돌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원행정처 폐지와 퇴직 대법관 사건 수임 제한을 골자로 한 사법행정 개혁 입법을 본격화하자, 법원 일각에서는 사법 독립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는 25일 입법공청회를 열고 퇴직 대법관의 대법원 사건 수임을 5년간 금지하고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사법행정 개혁안을 발표했다. TF는 대법원장 중심의 사법행정 구조를 견제하면서 전관예우 관행을 끊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TF 안에 따르면 변호사법 개정을 통해 퇴직 대법관은 대법원에서 처리되는 사건을 퇴직 후 5년 동안 수임할 수 없게 된다. TF는 전관예우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라고 강조하면서도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에 대한 위헌 논란을 피할 수 있도록 설계를 보완했다고 밝혔다.
TF 위원인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청회에서 "특정 직업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되, 직업의 수행 시기와 방법, 장소 등에 제한을 가하는 직업 수행의 자유 제한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웬만하면 합헌 판시를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퇴직 대법관 사건 수임 제한이 헌재 판단 기준에 비춰 수용 가능한 수준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법행정 구조 개편은 TF 안의 핵심이다. TF는 법원 인사와 행정, 예산을 총괄해온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장관급 위원장이 이끄는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을 내놨다. 사법행정위는 법관 인사와 징계, 예산, 회계 등 주요 사법행정 사무를 심의·의결하는 상설 기구로 설계됐다.
사법행정위는 위원장 1명과 상임위원 2명을 포함해 모두 13명으로 구성된다. 구성에는 법원 공무원 노동조합이 추천하는 비공무원·비변호사 1명, 인권 및 사회적 약자 분야에 경험이 풍부한 비공무원·비변호사 1명, 비법관 출신으로서 공무원 퇴직 2년 이상인 1명 등이 포함된다. TF는 비법조인과 외부 인사를 다수 포함해 사법행정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위원장 직위는 장관급 정무직으로, 국무위원과 동일한 수준의 대우를 받도록 했다. 위원장 선출 방식에 대해서는 사법부 외부 위원 가운데 추천을 받아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안과, 대법원장이 직접 사법행정위원장 직을 겸임하는 안 등 두 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최종안이 정해질 전망이다.
법관 인사권 배분 구조도 바뀐다. 법관 임명과 보직, 평정 등 인사 사항은 사법행정위의 심의·의결을 거쳐 대법원장이 최종 결정하도록 했다.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형식적으로는 유지되지만, 실질적 인사 검증과 기준 설정 기능은 다수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위원회로 넘어가는 구조다.
사법행정의 자문 창구 역할을 해온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대법원 규칙에서 법률로 상향된다. TF는 전국법관대표회의를 법률에 근거한 공식 기구로 격상해 법관 참여를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법관 징계와 감사 체계도 강화된다. 법관 징계의 최고 수위는 기존 정직 1년에서 2년으로 상향된다. 법관징계위원회 구성도 바뀐다. 기존에는 법관 4명, 외부 인사 3명으로 구성됐지만 TF 안은 법관 3명, 외부 인사 4명으로 조정해 외부 위원을 과반으로 설정했다. TF는 징계 과정에서의 폐쇄성을 줄이고 책임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감사 조직도 손질된다. 현행 윤리감사관은 감찰관으로 명칭을 바꾸고, 별도의 편제로 운영하는 안이 제시됐다. TF는 감찰관에는 법원 출신을 배제해 감사 기능의 독립성을 높였다고 밝혔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제기된 자기 식구 감싸기 논란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판사회의 기능 강화 역시 개혁안의 축으로 제시됐다. TF는 각급 법원 사법행정 자문기구인 판사회의를 해당 법원 소속 판사 전원으로 확대하고, 법률이 정한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판사회의 심의·의결을 반드시 거치도록 했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중심의 상명하복 구조를 완화하고, 일선 법관의 의견 반영을 제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각급 법원장 인선에 판사회의가 직접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이 주목된다. TF 안에 따르면 사법연수원장을 제외한 각급 법원장은 해당 법원 판사회의에서 선출한 후보 가운데서 임명하도록 했다. 후보가 1명뿐일 경우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다면 그 인물을 임명해야 하며, 법원장 자격 요건으로 법조 경력 15년 이상 기준은 유지된다.
판사의 보직 인사 역시 사법행정위 심의·의결을 거쳐 대법원장이 결정하는 구조로 재편된다. 사실상 사법행정위가 법관 인사와 조직 운영 전반에 관여하는 상설 통제기구로 기능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법원 안에서는 사법행정위 구성과 권한 배분을 두고 사법 독립 침해 우려가 적지 않게 제기됐다. 서울고등법원 이지영 고법판사이자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사법행정위에서 법관을 배제하는 것은 사법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넘어서 사법행정 자체가 법관이 아닌 외부인에 의해 결정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특히 법관 인사 권한이 외부 위원 다수로 구성된 위원회에 집중되는 구조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법관의 인사는 재판 독립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법 행정의 본질적 요소"라며 "비법관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위원회에 법관 인사의 모든 권한을 집중시킨다면 인사를 통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외부의 시도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퇴직 대법관의 대법원 사건 수임 제한 조항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이 판사는 3년간 대형 로펌 취업 제한과 함께 재직 시점이 겹친 대법관을 주심에서 배제하는 배당 내규 등 현행 제도를 언급하며 "추상적이고 막연한 위험성을 근거로 일률적으로 장기간 수임을 제한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고려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TF는 사법농단 사태를 계기로 불거진 사법부 불신과 전관예우 논란을 제도 개편으로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법원 내부에서는 비법관 다수 위원회가 인사와 예산, 징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정치·사회적 압력이 사법부에 직·간접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반론이 힘을 얻고 있다.
입법공청회를 계기로 사법행정 개혁안을 둘러싼 논쟁은 국회 차원의 법안 발의와 심사 과정에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회는 TF 안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법률안을 마련한 뒤 상임위원회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며, 사법부와 법조계 의견 수렴 절차도 병행해 나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