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수사인력 절반 줄여라"…윤석열, 박정훈 체포·해병대 수사단 보복 지시 의혹
수사외압 논란의 정점에 선 윤석열 전 대통령과 특검팀이 맞붙었다.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외압 의혹은 한국 군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 논란과 맞물리며 정국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26일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특검팀이 작성한 윤 전 대통령의 공소장 내용이 연합뉴스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공소장에 따르면 2023년 8월 군검찰이 박정훈 대령에 대해 연달아 체포영장을 청구한 배경에는 윤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적시됐다. 박 대령이 수사외압을 언론에 폭로한 직후 대통령실과 국방부 라인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취지다.

공소장은 박정훈 대령에 대한 체포 시도가 윤 전 대통령의 지시에서 출발해 대통령실 이시원 전 공직기강비서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거쳐 김동혁 전 국방부 검찰단장에게까지 단계적으로 전달됐다고 밝혔다. 군검찰은 2023년 8월 14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박 대령 체포영장을 청구했으나, 군사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특검팀은 이 신병 확보 시도가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결과라고 판단했다.
첫 체포영장 청구일인 8월 14일은 박 대령이 언론을 통해 수사외압을 폭로한 지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외압 의혹이 급속도로 확산하던 때였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폭로 이튿날인 8월 12일부터 13일까지 이시원 전 비서관을 통해 관련 상황을 면밀히 보고받았다. 보고 과정에서 박 대령에 대해 징계 등 인사 조치를 신속히 취하기 어렵다는 점을 파악했고, 이에 체포영장을 청구하라는 취지의 지시가 내려졌다고 특검은 적시했다.
이시원 전 비서관은 8월 14일 오전 10시께 이종섭 전 장관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어 박 대령이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으니 체포영장을 청구하라는 대통령 지시를 전달했다. 이에 이 전 장관은 같은 날 오전 10시 30분께 김동혁 전 검찰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 이후 이 전 장관은 체포영장 청구와 발부 여부를 대통령실에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8월 14일 낮 12시께부터 밤 9시 30분께까지 김 전 단장과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을 통해 체포영장 청구 및 영장 발부 여부를 8차례나 확인했다. 또 낮 12시께부터 오후 6시 30분께까지 이 전 비서관에게 최소 5차례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첫 체포영장이 기각된 이후에는 박 대령의 항명 혐의 수사 진행 상황도 대통령실에 보고하기 시작했다.
수사 방향을 정당화하기 위한 법리 검토도 뒤따랐다. 공소장은 이 전 장관의 지시로 김 전 검찰단장이 작성한 법리 검토 보고서에 장관의 사건 이첩 보류가 정당한 명령에 해당하며 수사외압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취지가 담겼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이시원 전 비서관에게 전달돼 대통령실 판단의 근거 자료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 구성 과정에도 국방부 수뇌부의 개입 정황이 적시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박 대령 측이 신청한 수사심의위 위원 9명 명단을 보고받은 뒤 유재은 전 법무관리관에게 너무 박 대령에게만 유리한 구성이니 국방부 입장을 대변할 사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후 법무관리관실은 3명을 추가 위촉해 국방부 측 입장이 심의에 반영되도록 조정했다.
특검팀은 박 대령 개인에 대한 조치뿐 아니라 해병대 수사단을 포함한 군사경찰 조직 전반에 대한 인력 감축 시도도 윤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7월 31일 오전 11시 34분 대통령실 외교안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으로부터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이 피혐의자로 포함된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군사경찰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체 군 수사 인력을 절반 이상 줄이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공소장에 적시됐다. 이후 임 전 비서관은 같은 날 오후 2시께 유균혜 전 국방부 기획관리관에게 군사경찰 인원 감축 검토를 지시했다. 유 전 관리관이 군사경찰 정원을 30퍼센트 감축하는 안을 보고하자 임 전 비서관은 감축 폭이 작다며 50퍼센트 이상 줄이는 방안을 다시 가져오라고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 내부에서는 이런 감축안이 해병대 수사단에 대한 보복조치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소장에 따르면 기획관리관실은 2023년 8월 7일 각 군 수사단 인원을 799명에서 399명으로 절반가량 줄이는 내용을 뼈대로 한 군 수사조직 개편계획 문건을 작성해 보고했다. 이틀 뒤 이종섭 전 장관은 채상병 사망 사건을 경찰에 이첩한 뒤에야 감축안을 시행하라며 보안 유지를 당부했다.
국방부 지휘부 일부는 민감한 시점과의 연관성을 우려해 감축안 검토 중단을 주문하기도 했다.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유 전 관리관에게 검토를 중단하라고 지시했고, 임 전 비서관 역시 이 보고서 자체가 시점상 오해를 부를 수 있으니 일단 없던 것으로 하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 전 관리관은 이에 따라 감축안 검토 보고서를 삭제하고 폐기했다.
공소장은 총 106쪽 분량으로, 윤 전 대통령의 지시에서 출발해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단계적으로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과정이 구체적인 시각과 관계자 실명, 통화 횟수까지 언급되며 서술돼 있다. 특검팀은 이 구조를 조직적 수사외압으로 규정하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윤 전 대통령과 임성근 전 사단장 사이의 관계, 이른바 구명로비 의혹은 공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다. 특검팀은 임 전 사단장을 채상병 순직 책임에서 제외하려는 시도가 여러 경로로 이뤄졌다는 정황을 확보해 수사해왔다. 개신교계 인사를 통한 청탁, 멋쟁해병 단체대화방을 통한 접근 등이 알려졌고, 2023년 8월 윤 전 대통령의 휴가지였던 저도에서 임 전 사단장을 목격했다는 병사들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특검팀은 구명로비 의혹과 관련해 당사자들에게서 별도의 형사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국가수사본부 이첩 대신 재판 과정에서 증인 신문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추가로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법정에서의 진술과 증거 공방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의 책임 범위와 군 수사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치권은 공소장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책임 공방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여야는 군 사법제도 개편과 대통령 권한 통제 장치 논의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국회는 특검 수사 결과와 재판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채상병 순직 사건 처리 과정 전반에 대한 국정조사 및 제도 개선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