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자유민주주의 위기"…YS 10주기 추모식서 계엄·사법 리스크 정면 비판

장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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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갈등 인식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우려가 고 김영삼 전 대통령 10주기 추모식에서 정면으로 부딪혔다. 여당과 야권 인사들은 비상계엄 사태와 사법 리스크를 거론하며 현 정국을 두고 각기 다른 책임론과 위기론을 제기했다.  

 

21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모식에는 차남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유족과 상도동계 원로 김덕룡 정병국 김무성 전 의원, 동교동계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 등이 함께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 국회 부의장 주호영 의원 등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정청래 대표가 조화를 보내는 방식으로 뜻을 전했다.  

 

정부 측에서는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상호 정무수석,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권오을 국가보훈처장이 자리했다.  

 

해외 순방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강훈식 비서실장이 대독한 추도사를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화 유산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어떠한 시련과 난관이 있더라도 김 전 대통령께서 보여주신 신념과 결단처럼 흔들림 없이 더욱 성숙한 민주국가,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김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출범과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등 개혁 조치를 상기하며 대도무문 정신을 공통 화두로 꺼냈다. 김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대도무문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으로, 현 정국의 기준이자 잣대로 거론됐다.  

 

그러나 추도식 발언은 곧바로 현 정권과 여야를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로 이어졌다.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께서 지켜온 개혁과 민주주의 가치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고 운을 뗐다.  

 

주 부의장은 "전직 대통령은 탄핵과 사법적 심판을 받고 있고 현직 대통령은 다수의 혐의에도 재판을 피하려는 행보를 보인다"며 "다수 의석을 앞세워 사법부 파괴를 일삼는 현 정권 행태를 보셨으면 대통령님께서 뭐라고 하셨을지 심히 자괴스럽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자유민주주의 위기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장 대표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평생 목숨 걸고 지켜낸 자유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서로 손을 맞잡고 국민이 하나로 뭉쳐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비바람과 폭풍을 이겨내겠다"고 강조하며 "올바른 길을 걸어가면 거칠 게 없다는 대통령의 대도무문 신념은 우리 이정표"라고 말했다.  

 

추모식에서는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비판도 집중됐다.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작년 겨울 비상계엄 당시 많은 국민이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치며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 싸우신 대통령님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이자 추모위원장을 맡은 김덕룡 전 의원은 윤석열 정권의 책임을 직접 겨냥했다. 김 이사장은 "윤석열 정권의 비상계엄 선포는 21세기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역사의 퇴행이었고, 그런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과감히 절연하지 못하는 지금의 야당 모습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여당을 향한 비판도 이어갔다. 김 이사장은 "전 정권의 반사이익으로 집권한 여당은 내란 청산을 명분으로 정치 보복에 몰두하고 사법부를 공격하며 법치주의를 허물고 있다"며 "이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의 결핍"이라고 주장했다. 민주화 세력의 원로 인사가 여야 모두를 향해 민주주의 이해 부족을 거론한 셈이다.  

 

이날 추모식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닭 모가지'와 '대도무문' 어록이 반복 언급되며 민주화 이후 정치권이 지켜야 할 기준으로 재소환됐다. 여야 인사들은 표현과 책임 소재를 달리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위기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노출했다.  

 

정치권은 김영삼 전 대통령 10주기를 계기로 비상계엄 사태와 사법 리스크, 여야 충돌 양상을 다시 꺼내들며 정국 주도권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는 향후 관련 상임위와 본회의 논의를 통해 계엄 책임 공방과 사법 개혁 논의를 병행할 것으로 보이며, 여야는 김 전 대통령이 강조한 대도무문 정신을 각자의 기준으로 내세우며 정면 충돌 양상을 이어갈 전망이다.

장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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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김영삼#김덕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