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허망한 죽음 반복되지 않게 해달라"…故 김도현 상병 1주기, 책임·징계 공백 논란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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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훈련 중 숨진 고 김도현 상병 사건을 둘러싸고 군 책임과 구조 지연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족과 군, 정치권이 한자리에 모여 추모비 제막식을 치르며 책임 규명과 제도 개선 요구가 다시 고조됐다.

 

24일 강원 홍천군 제3군단 제20여기갑여단에서는 지난해 아미산 산악훈련 중 사망한 김도현 상병의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김 상병의 1주기를 하루 앞둔 이날 행사에는 부모와 형제 등 가족과 군에서 목숨을 잃은 다른 장병 유가족, 제3군단장과 부대 지휘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 약 80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먼저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울려 퍼지자 행사장은 숙연해졌다. 그는 "도현이가 하늘나라에 간 지 1년이라는 시간이 다 돼 가는데 엄마는 아직도 도현이가 군대에 있는 것 같다"며 "더 많이 사랑해 줄 걸, 더 많이 안아주고 다독여 줄 걸…도현이를 생각하면 미안한 게 너무 많다"고 오열했다. 과거 갓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행복하게 부르던 영상 속 모습과, 현재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는 모습이 겹치며 참석자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흰 천으로 가려져 있던 김 상병의 흉상이 모습을 드러나자 가족 10여 명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부모와 형제들은 흉상 앞에서 얼굴을 오래 매만지거나 껴안으며 짧은 생을 마감한 아들과 동생을 떠올렸다. 흉상 옆에는 다섯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과 유족의 추모 메시지를 새긴 머릿돌이 자리해 김 상병을 지켰다.

 

삼촌은 추도사에서 "우리 가족의 보석 같은 존재, 항상 우리에게 밝은 에너지를 전해주는 존재였다"고 회상했다. 또 장애가 있는 김 상병의 친구가 부모와 함께 빈소를 찾았던 일을 언급하며 "도현이가 학교 다닐 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먼저 말을 잘 걸어준 친구였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집에서나 밖에서나 정말 바르고 착한 마음, 따뜻하고 큰 사람이었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됐다"며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웠다"고 울먹였다.

 

그는 나아가 군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했다. "대한의 건아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면서 고귀한 생명을 잃는 허망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군 책임자들은 보호자의 위치에서, 동료 전우들은 형·동생처럼 서로 아끼고 보살펴 가족 품으로 건강하게 보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감을 가져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고인의 동료 장병도 입을 열었다. 그는 "아직도 생생하기만 한 너의 모습이 떠오르고, 지금도 부르면 제일 먼저 달려와 뭐 도와드릴 일 없냐고 말할 것 같다"고 추모했다. 이어 "생활관 앞을 지날 때면 너의 빈자리에 가서 앉아 보곤 한다"며 "조금 더 잘해줄 걸, 조금 더 챙겨줄 걸 싶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군 생활과 삶을 사는 동안 도현이의 성실했던 모습을 가슴 깊게 새기고,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뜻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김 상병은 지난해 11월 25일 강원 홍천군 아미산 일대 대침투 종합훈련 중 사고를 당했다. 당시 운전병이 훈련에 예정에 없던 상태로 투입돼 전투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산을 오르다 다리를 삐끗했고, 김 상병이 자신의 25킬로그램 짐과 운전병의 12킬로그램 짐을 번갈아 지며 오르던 중 비탈면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발견 시각은 오후 2시 29분이었고, 원주 세브란스 기독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같은 날 오후 6시 29분께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김 상병은 경추 5번 골절과 왼쪽 콩팥 파열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등뼈 골절과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갈비뼈 골절도 함께 발견됐다.

 

유족은 이른바 4시간 공백을 문제 삼으며 군의 초기 대응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김 상병을 발견한 뒤 27분 동안 부대 보고에 시간을 쏟았고, 산악 지형상 지상 구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국군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에 1시간 뒤에야 신고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특히 센터 지령으로 출동한 군 헬기가 상공에서 대기하는 동안 소방헬기가 투입되지 못했고, 군 헬기가 구조에 실패하고 복귀한 뒤에야 소방헬기가 출동해 병원으로 옮겨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조 지연·실패 논란이 커졌다. 유족은 이 같은 지체와 혼선이 김 상병 사망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 당국은 올해 1월 김 상병을 순직 처리하고 1계급 특진으로 상병으로 추서했다. 같은 달 국립현충원에 안장했으며, 25일에는 국립현충원에서 1주기 추모식이 이어질 예정이다.

 

사건 수사는 강원경찰청이 진행 중이다. 경찰은 김 상병과 함께 훈련에 참여한 통신운용반장 A 중사, 통신지원반장 B 하사, 이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C 통신소대장 등 3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해 지난 6월 불구속 송치했다. 같은 달에는 소속 부대 대대장 D 중령과 포대장 E 중위를 같은 혐의로 추가 입건해 검찰에 넘겼다.

 

그러나 검찰은 혐의 판단이 충분치 않다며 보완 수사를 요구했다. 지난 7월 검찰 요구에 따라 사건을 다시 넘겨받은 경찰은 추가 조사를 거쳐 지난달 결과를 회신했으나, 검찰은 다시 한 차례 보완 수사를 요청했다. 검찰은 특히 D 중령과 E 중위가 사고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지휘 책임과 구호 의무 위반 여부를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달라는 취지로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경찰은 재보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유족이 바라는 진상 규명은 여전히 제자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상병의 아버지는 "1년 동안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왜 우리 아들이 등산로와 떨어진 곳에 누워 있었는지 등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구조 과정과 이동 경로, 최초 발견 상황 등 핵심 경위에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는 호소다.

 

안전관리 체계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그는 "국방부에서 모든 훈련에 앞서 안전진단을 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계획뿐"이라며 "도현이가 참여한 대침투 종합훈련이라는 큰 훈련에서도 안전진단을 하지 않는데 작은 훈련은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또 "직접 훈련 현장을 점검하고 조치해야 어떤 훈련을 하더라도 사고를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순직자 가족에 대한 제도 개선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 상병 아버지는 "아들을 군대에서 잃었는데 16살과 20살 아들을 마저 군대에 보낼 수 있겠느냐"며 "순직자의 형제 중 1명만 병역 혜택이 적용되는 점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방부와 국회가 나서 관련 법령을 수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병역 혜택 범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유족의 불안과 부담을 줄이는 방향의 입법과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요구다.

 

징계 절차 지연도 유족 분노를 키우고 있다. 김 상병 아버지는 "당시 인사처장이 여단장에게 징계위원회 회부 여부를 물었으나 여단장이 수사 결과에 따라 결정하자고 한 뒤 지난해 말 전역했고, 인사처장도 다른 부대로 전출 가면서 관련 논의가 붕 떠버렸다"고 말했다. 사고 책임 여부를 판단할 군 내부 절차가 사실상 멈춰 서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수사 결과에 따라 사건 관련자에 대한 징계위원회 회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구체적 시점과 범위, 징계 수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군 내 안전사고와 지휘 책임 문제는 그동안에도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지휘부 징계가 수사 결과에만 의존하거나, 관련자가 전역·전출하면서 책임 추궁이 흐지부지되는 관행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특히 김 상병 사건처럼 구조 과정과 보고 체계, 안전진단 미이행 등 복합적 요인이 얽힌 사안에서 제도 개선 없이는 유사 사고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다.

 

이날 추모비 제막식에서 유족과 참석자들은 흉상 앞에 꽃을 올리고 묵념을 하며 고인을 기렸다. 그러나 행사장은 추모를 넘어 안전한 군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채워졌다. 정치권과 군 당국이 수사 결과와 별개로 안전 진단 강화, 보고·구조 매뉴얼 재점검, 유가족 지원 확대 등 제도적 후속 조치를 얼마나 신속히 추진할지 주목된다.

 

군 당국과 수사기관은 김 상병 사망 경위와 책임 소재를 둘러싼 진실 규명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와 국방부는 관련 입법과 지침 정비 논의를 병행하며, 향후 각종 훈련과 작전에서 병사 안전 확보 방안을 구체화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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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상병#강원경찰청#국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