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저속노화 연구자 이미지 타격…정희원 문자 파장에 업계 긴장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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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 콘셉트를 내세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온 정희원 저속노화연구소 대표가 스토킹 혐의로 고소한 전 여성 연구원 A씨에게 살려달라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며 산업 전반의 윤리성과 거버넌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건강 장수와 데이터 기반 라이프스타일 코칭을 앞세운 저속노화 비즈니스는 이용자의 신뢰와 전문가 권위에 크게 의존해 성장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과 개인 연구자 브랜드 전반에 대한 검증 강화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연구자 개인의 성희롱 및 권력형 관계 강요 논란이 의료·바이오 기술 신뢰를 직접 훼손할 수 있는 만큼, 플랫폼 차원의 윤리 규범과 내부 고발 보호 장치 구축이 향후 시장 확장에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법무법인 혜석은 26일, 정 대표로부터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한 A씨를 대리해 정 대표가 A씨에게 발송한 문자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혜석 측에 따르면 정 대표는 19일 오후 6시 56분부터 7시 26분 사이 A씨에게 다섯 차례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여기에는 선생님, 살려주세요, 저도 저속노화도 선생님도, 다시 일으켜 세우면 안 될까요, 10월 20일 일은 정말 후회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등 표현이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A씨가 이에 응답하지 않자 정 대표는 같은 날 오후 7시 28분께 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자에 언급된 10월 20일은 정 대표가 A씨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신고한 날짜다. 정 대표는 그동안 A씨가 자신의 저서 저속노화 마인드셋과 관련해 저작권과 금전적 요구를 하며 자택을 찾아왔고, 배우자의 직장 인근과 주거지 현관문 앞에 편지를 남기는 등 스토킹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다고 주장해 왔다. 저속노화 마인드셋은 노화 속도를 늦추는 생활습관과 정신적 태도를 강조하는 자기계발·헬스케어 콘텐츠로, 디지털 플랫폼과 강연, 콘텐츠 구독 모델을 통해 시장을 넓혀온 만큼 저작권과 수익 배분 구조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구조적인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혜석은 정 대표가 공개적으로 A씨를 범죄 가해자로 지목하는 한편, 이면에서는 직접 연락을 통해 협박과 회유를 병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정 대표가 과거 피해자에게 보냈던 성적 요구를 담은 메시지가 언론에 보도될 가능성을 인지한 뒤 A씨에게 연락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적 권력 관계 속에서 피해자를 압박하려 한 정황이라고 비판했다. 혜석 측은 불과 보름 전 정 대표 측과 통화에서 지금부터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다시 연락이 이뤄졌다며, 이런 연락 금지 요청을 무시한 행위 자체가 스토킹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가 주장하는 피해 구조와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전문가와 이용자 간 권력 비대칭 문제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혜석은 정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A씨가 스토킹이나 공갈미수의 가해자라 할지라도, 그런 상대에게 살려달라고 호소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며, 이번 사안은 권력 관계 속에서 발생한 성적·인격적 침해와 역할 강요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는 헬스케어 코칭, 라이프스타일 컨설팅과 같이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 또는 대표 연구자와 내부 연구진 사이에 심리적·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비즈니스 구조에서 권력형 관계 남용 위험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해석된다.

 

정밀의료나 디지털 치료제와 같은 규제 의료기기 소프트웨어와 달리, 저속노화와 웰니스 코칭 영역은 아직 제도권 규율이 느슨해 자격 요건, 연구윤리, 개인정보 활용 기준이 모호한 회색지대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개인 연구소, 1인 브랜드 중심으로 운영되는 저속노화·바이오 트렌트 사업은 임상시험 관리, 데이터 거버넌스, 성희롱 예방 교육 같은 병원·연구기관 수준의 통제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업계 일각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디지털 헬스케어·웰니스 사업자에 대해 내부 신고 채널 의무화, 임직원·연구원 대상 성인지 교육, 이해 상충 공시 등 기본적 거버넌스 기준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의료 및 바이오테크 분야에서 연구자 윤리 위반, 권력형 성폭력, 연구실 내 위계 갈등이 산업 신뢰도에 직격탄을 준 사례가 반복돼 왔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병원·연구기관은 권력형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희롱과 인권 침해를 연구윤리 규정, 고용 계약, 연구비 지원 조건과 연동해 관리하고 있다. 반면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과 개인 연구자 브랜드는 의료법, 생명윤리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직접 규율 대상에서 비켜 있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민사·형사 분쟁이 발생한 뒤에야 문제 구조가 드러나는 후행 대응이 반복되는 구조다.

 

법무법인 혜석은 A씨가 문제된 관계 전반과 관련해 카카오톡 메시지 외에도 다양한 객관적 자료와 정황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수사 과정에서 디지털 증거가 공개될 경우, 문제의 초점은 단순 스토킹 공방을 넘어 연구자와 연구원 사이의 권력 관계, 성적 요구와 역할 강요, 저작권과 수익 배분 구조로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저속노화와 같은 IT 기반 헬스케어 콘텐츠가 의료와 자기계발의 경계에서 성장해 온 만큼, 이번 사건은 산업 전반의 윤리 규범과 거버넌스 공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산업계는 저속노화 비즈니스가 쌓아온 대중적 신뢰가 이번 논란 이후에도 유지될 수 있을지, 그리고 디지털 헬스케어 전반의 윤리·제도 장치 논의가 본격화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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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저속노화연구소#저속노화마인드셋